온갖 글이나 영상에서 심리학자들이 이런 사람 가까이 두고 저런 사람 손절하라는 이야기를 듣다 보면, '혹시 나도...?' 하고 훅 낚인다. 그 언어가 단정적이어서 의심의 여지없이 꽤 분명해 보이지만, 막상 나와 가족이나 지인들에게 그들의 잣대를 적용하려면 그 경계가 몹시 애매해서, 괜히 불안하다. 게다가 그 말을 들은 이후에는 이 사람도 이상해 보이고, 저 사람도 얄미워 보이면서, 없던 불만과 원망도 생긴다. 그래서 마음속으로 이 사람저 사람 빼니까, 부모도 빠지고, 배우자도 빠지고, 애도 빠지고, 형제자매도 빠지고, 친구도 빠지고, 동료도 빠지고, 그리고 나도 빠지고, 남는 사람이 없다.
겉으로 보이는 몸 상태를 살필 때는 키나 몸무게를 측정하거나 피검사를 해서 여기까지 정상이고 저기부터는 치료가 필요하다는 등 기준이 비교적 분명한 편이다. 하지만, 정확하게 정의하기 어려운 사람의 행동이나 정신의 영역에 이르면, '선을 넘는다', '기 빨린다'는 등 어지러운 표현이 난무해서 혼란 그 자체다. 특히 나처럼 수학적 정의로 시작해서 데이터를 봐야 수긍하는 사람에게는 이런 단어가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처럼 들린다. 내가 허용하는 선 너머 영역과 기준은 다른 사람과 다르고, 그 차이를 측정할 수도 없다. 사람들과 어울리면 당연히 에너지가 소모되기 마련일 텐데, 측정도 불가능한 기빨림은 공정한 기준이기 어렵다.
사람이 다른 사람을 만나는 건 뭐든 서로 얻는 게 있기 때문이며, 일방적으로 주기만 하거나 일방적으로 받기만 하는 관계는 드물다. 심지어 한자의 '사람 인'을 보면, 두사람이 반듯하게 서있지 않고, 삐딱한 큰 사람이 삐딱한 작은 사람한테 더 많이 기대고 있다.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 하는 말이 나오도록 희생하는 부모도 자식에게 주기만 하는 것 같지만, 잘 따져보면 자식에게 받는 게 많다. 부모는 자식을 키우고 가르치며 보호하지만, 자식은 부모의 유전자를 대대손손 이어가며 돈으로 살 수 없는 희망을 부모에게 준다. 부부나친구도 마찬가지여서, 그들 없이 혼자 보내는 세월은 길고 지루할지도 모른다. 더 많이 희생하고 주는 것처럼 보여도, 알고보면 거꾸로일 때도 많다.
물론 보통 사람의 평균에서 뚝 떨어진 아웃라이어(outlier)는 이상해보일 수 있지만, 동서고금 어디에나 늘 이상한 사람들이 존재한다. 통계의 관점에서 볼 때, 모두 평균 주변에만 빠글거리며 몰려있는 분포는 오히려 이상하다. 좀 평균에 모여있고 점점 흩어져서 나홀로 삐딱이가 나타나는 건 정상적인 통계 분포다. 모든 사람이 도덕적이고, 모든 사람이 자기 거를 아낌없이 남에게 나눠주고, 모든 사람이 남을 배려하는 그런 사회는 사람들의 생각으로 만들어진 '이상적인 사회'이지만, 현실이 아니다. 평범한 사회에서는 욕심꾸러기 사람들이 자기도 모르게 남을 이용하고 또 이용당하고, 온갖 말과 행동으로 상처를 주고받는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나도 그렇고, 너도 그렇다.
당연히 해코지하는 거짓말쟁이와 폭력을 일삼는 사람들을 조심해서 잘 피해야겠지만, 대체로 다 살짝 삐딱해서, 빈정상하고 자잘한 다툼이 있는 대부분의 인간 관계는 과거나 지금이나 그저 평범하다. 준만큼 못 받아서 억울하고 속상한 사람들도 그 이유를 살펴보면, 남에게 잘 보이고 싶거나, 인정받고 싶은 욕심이 있을 수 있다. 그러니까 좋다 싫다 말하고, 너무 손해보지 말고줄 만큼 주고 받을 만큼 받고, 자연스럽게 가까워지거나 멀어지는 게 낫다. 통계 분포의 관점에서는 평균에서 뚝 떨어진 삐딱이도자기 손발로 먹고 살면 대충 다 멀쩡하니까, 괜히 엉뚱한 잣대로 따지지말자. 세상의 기준이 틀리거나 변할 수도 있고, 삐딱이에게도 사연이 있을 수 있고, 긴 세월 살다보면 시절이 바뀌어서 어쩌다 그 삐딱이가 도움이 될지도 모르고, 알고보면 내가 삐딱일 수도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