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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다이트붐은온다

[꼬문생각] 유진

나는 커서 대학원생이 될 거예요!


라고 했을 때 선배의 얼굴이 선명하게 기억난다. 엄마도 아빠도 선생님도 후배도. 다들 하나같이 똑같았다. 오백 살 먹은 뱀파이어가 갓난아기를 보듯, 나와 같은 수많은 인문학도들이 스쳐 지나가 결국 현실로 수렴하는 뻔한 내러티브를 되새기는 표정. 


나는 진짜로 대학원에 갈 줄 알았고, 인문학이 쇠락해 가는 포스트 아포칼립스 시대의 최전방에서 꿋꿋하게 소신을 지키는 배고픈 헤로도토스가 될 줄 알았다. 나를 향한 안쓰러운 표정을 볼 때면 비대한 자의식에서 비롯된 어줍잖은 허영심이 샘솟았다. 상경계 이중전공이니 대외활동이니 리트니 씨파니 행시니, 그런 현실적인 모든 가능성들을 일축하는 “나는 대학원 갈 거라서”라는 문장이 참 좋았다. 


그런데 나를 엄습하는 이 근거 있는 불안감. 생각해 보니까 내가 이 학문을 그렇게까지 좋아하나? 전공 발표할 때 교수님 표정이 그라데이션으로 썩어들어가는 걸 봤을 땐 그렇게 잘하는 것 같지도 않은 것 같고. 그리고 뭐야 다들 왜 갓생 살아, 휘몰아치는 헌내기 상념들. 따지고 보면 우리집이 내 대학원 학비를 모두 내줄 정도로 부자인가? (아니오) 그렇다고 대학원 졸업하면 바로 취업이 되나? (아니오) 바늘구멍 뚫고 취업해도 돈이 썩 벌리긴 하나? (아니오)


그럴 때면 엄마 품에 안겨 막내처럼 엉엉 울고 싶기도 하고 그냥 귀여운 표정을 지으며 트와이스마냥 “여자니까 이해해주길”을 연발하면서 현실에서 무한히 미끄러지고 싶었다. 솔직히 그냥 그렇게 살기도 했다. 

그리고 눈 떠보니 대학교 3학년. 이제는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 


꼴에 마이너 부심이 있어서 경영경제는 하기 싫고(재능도 없고) 묘하게 마이너하면서 취업도 보장됐으면 좋겠어. 근데 나는 수학을 잘하니까, 그래 그럼 통계학을 하자. 그래서 기초통계학을 수강했다. Z검정 카이제곱검정 T검정 F검정 회귀분석, 와 나 정말 유용한 실용 학문을 하네? 공학용 계산기를 두들기며 희망에 젖는 건 금세였다.


F검정을 처음 했을 때, 이게 맞나 몇십 분 끙끙거리다 아노바 테이블을 마침내 완성한 후의 그 환희가 영원할 줄만 알았다. 그렇게 생각하자마자 바로 다음 학기, 컴퓨터가 일 초도 안 되어서 더 정확한 값을 내놨을 때의 그 허탈감이란. 기초 중 기초, var.test나 PROC ANOVA 따위의 간단하기 그지없는 명령어로.


그때… 처음으로 살의를 느꼈다. 눈앞의 이 차갑고 딱딱하고 똑똑한 기계에게. 나는 관측치가 몇십 개만 돼도 숫자에 휩싸여 어찌할 바 모르는데, 이 기계는 몇백 개 몇천 개도 우습다는 듯 한 치의 오류 없이 답을 따박따박 내놓는다. 산업혁명기 노동자들은 천을 좍좍 뽑아내는 방직기가 얼마나 미웠을까, 백 번이고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마음만으로는 러다이트 운동처럼… 컴퓨터를 모조리 파괴하고 떵떵거리며 인간의 위용을 과시하고 싶었다.


어찌 됐건 다 때려치우고 모조리 파괴해 버릴 순 없으니 ‘아 이토록 기계가 위대하니, 적어도 기계를 잘 다루는 사람이 되자’ 결심했건만 사실 이 결심마저도 잘 모르겠다. 이렇게 결심한 2022년, 얄궂게도 대화형 인공지능인 Chat GPT가 도래했기 때문이다. 


이제 그 ‘기계를 잘 다루기’마저도 기계가 대체했다. 언제든 코드를 쭉쭉 짜준다는 이 기계를 애써 무시했다. 나는 자존심 센 마이너 부심 인문학도니까. 왜 인문학도는 다들 고집이 셀까? 고집이 센 인문학도만 살아남기 때문이거든. 그렇게 살아남은 나는 인공지능 따위는 절대 쓰지 않겠다고 결심했고…


어쨌든 이 결심도 무너졌다. 이유도 무척이나 간단하고 얼척없다. 프로그래밍 수업 과제를 도저히 못 하겠어서. 덕분에 일 분 만에 과제를 완성하고 만점을 받았다. 그렇게 나를 지탱하는 기둥이었던 결심들이 하나하나 무너지고, 최종적으로는 나까지 무너졌다. 인문학은 찾는 사람이 없고, 기계조차 기계보다 다루지 못한다면 내가 뭘까, 내 효용이 뭘까, 이 세상에 내 쓸모가 뭘까?


오랫동안 스펀지밥을 동경해 왔다. 훗날 어쩌면 맥도날드에서 패티를 수십장 구워내거나, 카운터에서 손님을 맞이하면서 값진 노동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믿음직스러운 대기업은 영원할 테니까. 땀 흘리며 일하는 순수한 노동은 결코 대체될 수도 없고 대체해서도 안 된다는 것이 내 굳은 믿음이었다. 전 세계에 포진한 맥도날드에서 일할 수 있다면, 나는 세계 어디든 쓸모 있는 사람일 테니까.


그리고 당도한 내 최후의 마지노선에도

차갑고

거대한

키오스크가 있었다. 


나는 순식간에 쓸모없는 사람이 되었다. 시장에 가면… 처럼, 내 어쭙잖은 인문학도 쓸모가 없고 기계를 다루는 솜씨도 쓸모가 없고 카운터에서 사람을 맞이하는 대응술도 쓸모가 없고 심지어는 키오스크에서 빅맥 세트를 주문하는 모양새도 가히 쓸모가 없었다. 나는 실패작이래 어쩌구저쩌구, 패배감에 젖어있다가도 문득문득 분노가 차올랐다.


사실 인문학 논쟁은 근본부터 잘못됐죠. 이 모든 문제의 원인이 뭡니까? 

바로 기계를 메워야


그러므로 다시,


#러다이트붐은온다


유진 | gamjabat_@kore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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