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은 재즈페스티벌이 열리는 날에 할 거고. 그날은 늘 날씨가 좋거든
우리의 결혼식은 2021년 5월 마지막 주 토요일. 한창 코로나바이러스가 창궐해 1단계니 2단계니 하던 시절이었다. 그 콧대 높은 예식장도 시시각각 변하는 팬더믹 상황에 따라 식 보증인원을 결혼식 직전까지 바꿀 수 있게 해 주었다면 믿을 수 있을까.
운 좋게(?) 1단계에 식을 치렀고, 평범한 직장인인 우린 해외여행은 꿈도 꿀 수 없었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나 맞이한 첫 번째 결혼기념일. 드디어 신혼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나는 신혼여행은 남프랑스로 가기로 남편을 알지도 못하던 그때 이미 마음속에 정해두었다. 이유는 없었다. 그리고 남편은 내 요청에 반대의견 없이 응해주었다.
인천에서 남프랑스 어딘가로 바로 가는 항공편은 없기에 인천-파리-니스-파리-인천 구간으로 항공편을 예매하고, 남프랑스에서 6박, 파리에서 5박을 하기로 결정했다.
남프랑스에서의 6박은 어떻게 할까. 니스에서만 6박을 할까. 고민하다 근교 도시인 앙티브라는 곳에서 2박, 니스에서 4박을 하기로 했다. 앙티브는 그때 처음 알게 된 도시이다.
인천-파리-니스 비행을 마치고, 니스에서 앙티브까지는 택시를 타고 이동했다. 그렇게 밤이 되어 드디어 남프랑스 작은 도시 어느 호텔에 짐을 풀었다. 21시 즈음이었지만 간단히 샤워를 마치고 늦은 저녁을 먹으러 길을 나섰다. 그날은 21-22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이 있던 날이었다. 나는 리버풀 팬이고 결승전에는 리버풀이 올라있었다.
동네 작은 이탈리안 레스토랑에 들어서니 이제 막 결승전이 시작하고 있었고, 노부부 그룹이 함께 식사하며 축구를 보고 있었다. 우리도 한편에 자리를 잡고 꾸벅꾸벅 졸며 파스타와 와인 한 잔을 했다. 전반전을 채 못 보고 식사를 마치고 호텔로 돌아갔다. 후반전을 켜놓은 채로 그대로 잠에 들었다. 집을 나선 지 거의 하루가 지나있었다. 리버풀은 준우승했다.
여행 가기 전 미리 공부를 하거나 계획을 짜거나 하지 않는 우리 부부의 여행스타일은 말 그대로 그냥 유람인 것 같다. 그저 걷고 아무 데나 들어가고 아무거나 본다.
시차 덕에 새벽같이 기상해 세수만 대충 하고 아침에 문을 연다는 시장 쪽으로 무작정 걸었다. 시장은 이제 막 열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이 날은 우리의 결혼기념일이었다. 한국 시간으로는 이미 결혼기념일이 잔뜩 무르익어가고 있었지만 여기선 아직 아침이다. 시장에서 아주 비싸게 주고 꽃 한 단을 샀다. 시장이라고 무조건 다 싼 건 아니다. 조촐하게 결혼 1주년을 기념했다. 그러고도 한참을 동네를 걸었다.
날씨가 아주 좋다. 좋다기보다는 뜨겁다는 말이 맞겠다. 호텔로 돌아와서 수영복을 챙겨 입고 다시 나섰다. 가는 길에 동네 자전거 대여점에 들러 자전거를 빌렸다.
대여점 직원이 종이 지도를 꺼내 자전거 타기 좋은 코스, 하이킹하기 좋은 장소를 색연필로 표시해 주었다. 그러지 않았다면 우린 또 아무 데로나 갔을 텐데, 직원이 알려준 코스로 그 큰 지도를 이리저리 접어가며 달렸다.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풍경들이 펼쳐진다. 바닷가를 따라 길게 뻗어있는 자전거 도로, 그 중간에 자전거를 세워두고 짧게 하이킹할 수 있는 산책로들, 유명한 비치를 지나 조금만 걸으면 여느 특급호텔의 프라이빗 비치 부럽지 않은 우리만의 바다.
자전거를 타고 달리다 더우면 바다에 뛰어든다.
왜인지 이곳은 소매치기는 없을 것 같다. 물건을 아무렇게나 보관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아무 걱정이 없다.
그렇게 한참을 자전거를 타고 달리다가 또 걷다가 수영하다가. 또 달리다가 어느 식당 앞에 자전거를 세워두고 들어가 햄버거와 샐러드를 먹었다. 그리고 그 바로 옆 가게에서 젤라또를 먹었다. 그리고 또 한참을 달렸다. 바람이 시원하다. 온몸은 새빨갛게 익었다.
그렇게 한낮의 야외활동을 마치고 호텔로 돌아와 한국에서 미리 챙겨간 컵라면을 끓여 먹었다. 야외활동 실컷 하고 먹는 컵라면은 글로는 감히 표현할 수 없으니 패스.
씻고 쉬다 결혼기념일 디너를 하러 나선다. 나는 한국에서는 결코 신지 않는 높은 구두를 꺼내 신었고, 남편도 재킷을 챙겨 입었다. 미리 예약해 둔 마을의 작은 프렌치 레스토랑으로 갔다. 코스요리에 와인도 한두 잔 먹었는데 한 사람당 80유로 정도면 충분하다. 다만 새벽에 일어나 하루 종일 원 없이 야외활동한 우리에게 저녁 7시에 시작된 식사가 10시에 끝나는 프렌치 코스요리는 쉽지 않았다.
사실 뒤엔 거의 잠들어 있었다. 무얼 먹었지?
식사를 마치고 울퉁불퉁한 길을 구두를 신고 삐그덕 거리며 돌아왔고 천천히 걷는 내내 손을 잡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공기가 따뜻했다. 우리의 1주년 결혼기념일이자 신혼여행 둘째 날이 저물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