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저기 그렇게 집을 보러 다녔다.
따지고 보면 이사비도 많이 들고 집을 알아본다는 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닌데
왜 그렇게 집을 옮겨 다니는 건지....시어머니가 그러셨다.
나도 동생도 한 자리에서 오래 잊지를 못하고 그렇게 이사를 다닌다.
누가 쫓아내기라도 하는 마냥 이 동네 저 동네..
자금이 부족한 나는 태어나 자란 부산 시내를 돌고, 돌고
자금이 많은 동생은 국내를 돌다 이제 해외로 나가 버렸다.
떠돌이 근성이 있는 건지...
실제로 우리 집에서 늘 말썽만 부리시던 ....사실 차라리 엄마가 이혼이라도 해 버렸으면 인연을 끊고 싶었던......
아버지가 간암으로 돌아가시고 난후 우리 가족은 그냥 멀어져 버린 것 같다.
분명 있으나 없으나 오히려 있어서 더 문제만 만들던 아버지였는데 신기 하게도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나는 그냥 이젠 떠나 버려도 좋겠다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좀 떨어져서 사는 게 더 좋겠다 싶었던...
아버지가 원인이라고 무슨 문제만 생기면 모든게 아버지 때문이라고 생각 했는데 정작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에도 궁극적인 문제는 딱히 해결 되지 않은 것 같다.
어머니가 더 미워지고 관계 회복은 더 힘들었다.
어머니도 병들고 늙어서 예전처럼 총명하게 잔소리를 하지도 못하는데 그런데도 나는 그 오래된 미움이 쉬 사라지지 않았다.
정말 1시간만 같이 있어도 숨이 막히고 짜증이 났다.
그냥 구구절절 뭣 때문이라고 따져보고 싶지도 않은 짜증...
나에게 왜 그랬어? 이젠 물어보고 싶지도 이유를 알고 싶지도 않게 되었지만 그냥 짜증이 난다. 안보면 그만인데 가족이라고 꼭 가까이 살면서 늘 들여다보아야 하나
그놈의 도리도리 그 소리가 제일 싫다.
나만 하는 도리
밥을 주고 단지 같이 살고.....
아버지에게서 시작된 가정 파탄의 피해는 나 그리고 동생 그리고 어머니까지 똑같이 받았다.
그런데 본인이 가장 큰 피해자인척 나에게 온갖 화풀이를 하던 어머니의 화풀이의 목적지가 나였던 것에 대한 너무 큰 피해의식이 나를 더 이상 어머니를 좋게 볼 수 없게 만들었다.
언어폭력은 쉽사리 지워지지 않는 상처가 되었다.
온전한 가정에서 잘 자란 나였다면 아무렇지 않게 그 모든 엄마의 화풀이를 다 받아내고 감내할 수 있었을까?
어차피 그랬다면 어머니도 나한테 그렇게 하지 않았을 테지...
첫째라 칭찬한번 없이 전 과목에서 하나를 틀려서 간 날 올백을 맞지 못했다고 아쉬운 소리를 들으면서 나는 그냥 포기 했었던 듯하다
더 이상 딱히 열심히 할 필요는 없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