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순간에 있다
행복을 이야기하지 않고서는 넘어갈 수 없을 것 같다. 꽤 많은 사람들이 나에게 행복하다는 게 무엇인지 물어보았었다. 그럼 나는 항상 생각해왔던 행복에 대한 정의를 말해주었다. 우울증이 심해 죽고 싶다고 느꼈을 때도, 지금도 똑같이 생각한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내 대답에서 의미를 찾지 못했다. 그 질문을 한다는 것 자체가 행복하지 않다는 의미였으니. 아무리 말해줘도 직접 깨닫기 전까지 알 수 없는 게 행복이었다.
행복이란 상대적이다. 어떤 사람에겐 퇴근 후 소파에 앉아서 시원한 맥주 한잔하는 것이 어느 것보다도 행복한 일일 수 있다. 어떤 사람에겐 공모전에 나가 1등을 해 상을 탔을 때 최고로 행복한 순간이라 느낄 수 있다. 모두 맞는 말이다. 사람마다 가치관이 다르니까. 억지로 느낄 수도 없는 것이 행복이다.
나에게 행복이란 소소한 행복에 가깝다. 아마도 성취주의자들은 내가 행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할 것 같다. 나는 그런 성취주의자들에게 말하고 싶다. 당신도 자각하지 못했을 뿐, 그런 소소한 순간에 분명 행복했을 거라고.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사람이 살면서 기쁜 일, 슬픈 일, 황당한 일, 짜증 나는 일, 짜릿한 일 등등 여러 가지 경험을 할 것이다. 감정은 그때마다 롤러코스터처럼 오르락내리락 할 것이고, 아래로 내려갈 땐 행복하지 않다고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순간에, 현재에. 지금을 느낄 때 그게 행복이라고 말하고 싶다.
'나'라는 사람이 존재하고, 무언가를 먹고 무언가를 보고 무언가를 느낄 수 있는 현실. 이것 자체가 행복이다. 내가 숨을 쉬고 엄연히 생명체로 살아있어 모든 감각을 느끼며 시간의 흐름을 느낄 수 있는 상태. 내가 살아있는 이 상태가 행복 그 자체다. 길면 길고 짧으면 짧다고 말할 수 있는 인생 안에서 위아래로 넘나드는 굴곡 자체가 행복이다. 그런 게 살아있다는 느낌이다.
우울하고, 약을 먹고, 술을 먹더라도 살아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살고 있어서 그런 감정들을 느끼고 힘들어한다. 오직 살아있는 사람만 느낄 수 있는 종류다. 그래서 값지고, 그래서 행복하다.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이해한다. 패배자가, 어떻게든 합리화하고 싶어서 저런 말을 하는 거라고 느낄 수 있다. 하지만 모든 것이 완벽해 보이는 그 사람도 어딘가에선 슬퍼하고 있고, 어딘가에선 기댈 곳을 찾고 있을 것이다. 희로애락을 느낄 수 있는 지금 이 순간. 이걸 알고 있는 것만으로 충분히 행복하다는 증거다. 마냥 모든 걸 좋게 보기엔 세상은 썩고 안 좋은 부분이 많지만, 그렇다고 좋은 부분만 있는 세상에서 무조건 행복하진 않을 것이다.
게임을 예로 들어보자. 게임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게임은 현실보다 성취하기가 쉽다. 얻기가 쉽고, 인정받기가 쉽다. 보상이 바로바로 들어온다. 하지만 게임에서조차 너무 보상을 얻는 게 쉬우면 금방 질리고 재미가 반감된다. 오히려 목표에 도달하기까지 우여곡절이 있고, 죽을뻔하고, 동료들과 힘들게 협력해서 이루어냈을 때 그때가 가장 짜릿하다. 그 감정을 같이 깬 모두가 느끼고 있다. 타인과 공감하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가슴이 뛰고 기분이 좋아진다. 어려움을 같이 이겨냈다는 게 오히려 큰 성취가 되고 행복이 된다.
물론, 이겨내지 못했다 하더라도 다 같이 최선을 다했다면 져도 기분이 좋다. 후회하지 않는다. 무조건 이겨야 한다는 소리가 아니다. 현실도 똑같다.
내가 살아있기 때문에 게임 속에서 다른 사람과 만나고 고난을 겪고 보상을 얻는 것이다. 그런 행동을 하고 느낄 수 있다는 것 자체가 행복이다. 화나고, 답답한 경험을 하더라도 오직 살아있어야만 느낄 수 있다.
당장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삶에 빠져 우울하고 괴로워도 고통 또한 살아있어서 가능한 일이다.
인생은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 지금 당장 끝내고 싶은 지옥 같은 삶이어도 어떻게 치고 올라와 기하학적인 그래프가 만들어질지 아무도 모른다. 생명은, 존재하는 것만으로 소중하고 행복하다.
개인적으로 내가 행복을 느끼는 순간은, 맛있는 걸 먹으며 짝꿍과 티비를 보고 웃을 때, 반려견과 산책을 하며 쨍한 햇빛을 받을 때. 자연의 공기를 맡는 반려견의 미소를 볼 때. 신난 엉덩이로 꼬리를 흔들며 같이 뛸 때. 그런 사소한 일상들이 인생의 큰 굴곡을 만나도 행복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이겨내든 못 이겨내든 현재를 살 수 있게 해준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행복은 항상 우리 곁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