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져나오려 할수록 더 깊어진다.
우울하다. 는 말은 아마도 살면서 가장 많이 했던 말인 것 같다. 한때 가장 많이 했던 말이 현재는 가장 쓰지 않는 말이 되었다. 당시에는 그런 날이 올 수 없다고 생각했다. 생각은 언제나 그렇듯 현실과 다르다. 인생의 끝만을 생각하며 우울해하던 과거와 달리 지금은 우울이라는 늪에서 빠져나왔다. 솔직히 그렇게까지 적고 싶은 이야기는 아니다. 그래도 남겨놓고 싶다. 어딘가 늪에 빠져 잠기기만 기다리는 또 다른 과거의 나 같은 사람들을 위해서.
나는 우울증을 꽤 오래 앓아왔다. 그때 정신과에 가서 진단을 확실히 받아본 건 아니었지만, 지금 생각해 봐도 부정할 수 없는 우울증 환자였다. 왜 우울증에 걸리게 됐는지는 적고 싶지 않다. 그런 걸 이야기하며 내가 한때 그랬지, 같은 식의 말을 적고 싶은 게 아니다. 어차피 사람마다 이유는 다를 것이다. 분명히 객관적으로는 나보다 더 나은 사람도 있고, 더 심한 이유를 가진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 비교는 좋지 못하다고 느낀다. 같은 이유라도 개개인마다 받아들이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 굳이 비교거리로 삼고 싶지 않다. 이유는 다르지만 겪는 고통은 같다. 난 좀 더 고통의 측면에서 이야기를 하고 싶다.
어떻게 해야 우울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이 우울이라는 늪은 벗어나려고 하면 할수록 더 크게 다가온다. 마치 살아있는 것 같이, 내가 피하려고 하면 귀신같이 알아내 들러붙는다. 그럼 나는 움직이지도 못하고, 먹지도 못하고, 가만히 누워서 시간이 흐르기만을 기다린다. 그렇게 언젠가 끝났으면 하고 기다린다. 하지만 기다리기만 한다고 끝나지 않는다. 살아있으니까.
내가 처음 정신과를 가게 됐을 땐 우울증 때문은 아니었다. 사실 우울증을 진단받고 싶지 않아서 억지로 더 행복한 척 검사를 받았던 것 같다. 하지만 전문가를 속일 순 없다. 결국 상담을 하면서 우울은 드러났고, 그렇게 우울증 약을 먹게 되었다. 세로토닌이 모자라서, 신경전달물질이 불균형이라, 비타민D가 부족해서, 운동을 안 해서 등등. 우울의 원인을 과학적으로 분석하려고 하면 항상 나오는 이유들이다. 개인적으로 느끼기엔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라는 문제 같았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우울증 약을 먹는다고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어디까지나 부가적인 느낌이었다. 그렇다고 정신과 가지 마라, 약을 먹지 말라는 소리는 아니다. 약은 먹어야 하는 상태라면 당연히 먹어야 한다. 단지 약이 전부가 아니었을 뿐이다.
결국 나는 부작용 때문에 계속 약을 바꿔가며 시도하고, 최종적으로는 굉장히 적은 양의 약을 먹었다. 그래도 도움이 되었다. 약으로 제일 도움 받았던 부분은 무기력이었다. 이 쓸모없어 보이는 우울이라는 존재는 단순히 기분을 안 좋게 하는 덩어리가 아니라,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로 만든다. 그냥 일어나는 것도 힘들고, 이 닦는 것도 힘들고, 나중엔 말하는 것조차 힘들게 만든다. 평범한 사람은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는 일들이 해볼 엄두도 나지 않는 일이 되어버린다. 약은 그런 부분에서 도움이 많이 되었다. 일상생활을 유지할 수 있게 혹은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마음을 먹을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
그러면 그 외에 부분에서는 어떤 힘듦이 있었을까.
내가 아무리 현실에 맞설 준비가 되어도, 나에게 주어진 현실이 그렇지 못했다. 그 환경을 탈출해야 하는데, 그건 약으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었다. 간단하게 예로 들자면,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아이가 과연 우울증 약을 먹는다고 해결이 될까. 그렇지 않다. 가장 필요한 건 그 집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이후에 아이의 상태에 관해 약으로 도움을 받을 순 있어도 제일 먼저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시작을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굉장히 괴로웠다. 짐작하겠지만, 보통 그렇게 남한테 트라우마를 안겨주는 사람들은 반성을 하려 하지 않는다. 마주 보고 싶지 않은 것이라 생각한다. 본인도 인정하면 괴로우니까. 떳떳하게 인정하고 사과를 건네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럼 고통받는 사람은 그런 상대에게 사과 한마디 들으면 해결될 아픔인데도, 스스로 다독이고 스스로 일어서고 스스로 괜찮다고 해주어야 한다. 우울증은 덤이다. 그래서 몇 배로 힘들다. 우울을 이겨내는 것만이 끝이 아니었다. 그 우울을 만들어냈던 상처를 치유해야 끝이 나는 것이다.
정신과 선생님은 나에게 행복해지려면 좋은 일들 추억들을 많이 쌓아서 과거를 흐려지게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공감했다. 충분히 그런 것도 도움이 되었다. 반려견을 키우고 웃음이 많아졌다. 하지만 부족했다.
성향차이인지, 회피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나는 오히려 정면돌파가 도움이 되었다. 반강제적으로 사과를 받아내고, 우울이 올라오면 미친 듯이 울었다. 하염없이 울다 보면 나 같은 사람들이 보이고, 나와 똑같은 상처로 인해 괴로워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공감하고 울고 웃었다. 그렇게 하다 보면 후련하고 어느샌가 그런 과거 때문에, 남 때문에 이렇게 내 시간을 허비하며 아파하는 게 바보 같아졌다. 바보 같은 상처 때문에 이래야 하는 내가 아까웠다. 아무래도 점차적으로 나를 싫어하진 않게 된 걸까. 과거의 내 모습이라면 생각지도 못할 이야기였다. 그렇게 다시 일어났다. 그리고 또다시 우울이 올라온다. 그럼 또 미친 사람처럼 울고 괴로워한다. 그리고 다시 일어난다. 그렇게 반복적인 상황에 놓이다 보니, 어느새 다시 일어나는 주기가 짧아졌다. 더 탈탈 털고 일어날 수 있게 되었다. 약은 이 과정에서 다시 일어날 수 있게 해주는 힘을 주었다. 하지만 아픔을 받아들이고 하고 싶은 만큼 울고 괴로워하며 상처를 마주하는 노력은 내가 해야 하는 일이었다. 물론 말이 쉽지 실제 시간으로는 몇 년이 소비되었다. 그래도 아깝지 않은 시간이었다. 내가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았던 10년이라는 세월이, 단 몇 년만으로 아물게 되었다. 언젠가는 또 터져서 늪에 빠질지 모른다. 그래도 괜찮다, 다시 빠져나올 거라는 믿음만 있다면 늪에 있는 동안 얼마든지 허우적대고 잠기고 괴로워해도 된다. 그렇게 내 인생에서 뗄 수 없었을 것 같았던 우울증이 끝났다.
*중간에 비타민D, 운동 얘기를 했는데 이건 과장이 아니고 정말이다. 집청소, 낮에 하는 산책 두 가지는 필수이다. 나는 시작할 때 너무 힘들어서 10분 타이머를 맞추고 하루에 10분 동안만 쓰레기를 버렸다. 습관은 잘게 쪼개서 시작해야 한다. 10분도 힘들다면 5분으로 시작해 보라.
우울증이 심했을 땐 밤에만 깨있고 불도 끄고 있는 걸 좋아했는데 지금은 햇빛이 들어오는 창문 앞에 가만히 서있을 때도 있다. 신기하게도 햇빛 아래 있는데 멀미가 나지 않는다. 그게 체질이 아니라 우울이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