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생각많은사람 Nov 21. 2024

04. 착각

나는 악마가 아니었다.

 오랜만에 글을 쓰고 싶어졌다. 글쓰기에 딱히 재능도 없고, 잘하지도 못하지만 이렇게 한 번씩 적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있다. 오늘은 조금은 어두운 과거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한다. 사실 꽤 예전에 적으려 했으나 회복이 덜 되어서 그런 걸까? 번번이 실패하다 겨우 결심을 했다. 다 적고 나면 당분간 여파가 있을지 모른다. 그래도 적고 싶었다.




 시작은 우연히 카카오톡에서 생활기록부를 볼 수 있다는 짝꿍의 가벼운 말이었다. 이때까지는 전혀 보고 싶지 않았다. 어떤 말이 적혀 있을지도 몰랐고, 내가 생각하는 그때의 내 모습은 정말 끔찍했기 때문이다. 그 당시에 나는 가정폭력에 시달려 정말이지 하루하루 죽고 싶단 생각밖에 하지 않았었다. 과장이 아니라 하루도 빠짐없이 초등학생인데도 매일 그 말을 할 정도였다. 이제 와서야 그게 우울증이었던 거구나 알았지, 그때엔 죽고 싶다는 그 말이 사실은 살려줘라는 뜻인걸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될 대로 돼라 식으로 살던 그때의 내 모습을 보는 것이 두려웠다. 얼마나 안 좋은 말이 쓰여있을까? 이 아이는 답이 없어요라고 적혀있을 것만 같았다. 그래서 망설였다.


마치 그때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에 사로잡혀 겁먹은 나에게 짝꿍의 생활기록부는 어쩌면 나도 봐도 괜찮겠다는 희망이 되었다. 짝꿍의 생활기록부는 말 그대로 거창한 내용도 아니었고 적당히 재밌고 적당히 웃기고 적당히 대견한 그런 내용이었는데도. 어쩌면 나에게도 하나쯤은 좋은 말이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어서 조심히 열어보았다.


결론부터 말하면 나는 악마가 아니었다. 태도가 별로고 말을 안 듣는다는 그런 별 볼 일 없는 내용만 적혀있을 줄 알았는데. 왜냐면 내 타고난 심성 같은 건 우울증이 심해질수록, 폭력적인 기억이 쌓일수록, 점점 가려졌다. 그래서 성장할수록 마치 인생을 포기한 사람처럼 예의 없이 막살았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순전히 내가 본 내 모습이었고, 제삼자 입장에선 전혀 그렇지 않았다는 거다. 물론 생활기록부는 안 좋게 쓰는 건 거의 없고 일부러 좋은 것만 쓴다는 것은 안다. 그래도 의외였던 게 내 단점이라고 생각하고 안 좋았던 시절이라 생각한 부분이 장점으로 쓰여있었다는 것이다.


초중고 상관없이 주로 적혀있었던 묘사는 성실함, 착함, 사려 깊음 같은 것들이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집 안에서의 나의 모습이 내 진짜 모습이라 생각하며 남들에게도 그렇게 대했다고 부정적으로 착각하면서 산 것 같다. 마냥 다 놓고 싶다고 생각하며 산 줄 알았는데 그래도 완전히 포기하고 싶진 않았구나 싶었다.

안 좋게 느낀 선생님도 분명 있었을 것이다. 그래도 위로가 되었다. 진위여부를 떠나서, 나는 내가 보낸 시간 중 가장 도려내고 싶은 시기인데... 다른 시각에서 그 끔찍한 상황을 그래도 좋게 봐줬던 시간이 있었다는 게 너무나도 위로가 되었다. 그 끔찍한 기억 안에서도 따뜻함이 있었구나.

덤으로 진로에 관해서도 지금은 많이 막막하고 힘들어하고 있는 상황인데 그곳엔 너무나도 확고하고 열정 가득한 모습들이 적혀있어서, 그땐 그랬었지 하고 다시 떠올리게 되었다.


뭐 누가 봐도 적을 게 없어서 괜히 있는 척 적어주신 내용도 많았으나(ㅋㅋ) 내가 보고 싶었던 건 그런 부분이 아니라 좀 더 인성에 관련된 이야기였다. 집에선 맞고 반항하고 소리 지르고 반강제적인 폭력적인 모습 때문에 더 어릴 때의 순수했던 내 모습이 없어졌다고 느꼈었다. 그래서 겉으로는 아닌 척 무심하고 무뚝뚝한 척, 방어적으로 하고 다녔다 생각했는데 내면에 있는 모습은 사라지지 않았나 보다.


번외로 가장 의외였던 것은 책을 굉장히 좋아했다는 것이다; 어릴 때 책을 많이 읽은 건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로 오래 좋아했는지는 몰랐다. 기껏해야 초등학교 저학년 때 많이 읽었다고 생각했는데 학창 시절 내내 책을 끼고 살았다. 적힌 내용으로만 봐선, 살기 싫은 현실에 책에서 도움을 얻었던 것 같다. 깨달음을 얻고 왜 살아야 하는지 왜 살고 싶은 건지 많이 찾아보았다. 그래서 버텨낼 수 있었던 걸까. 아마도 주변 어른이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은 해답을 얻고 싶었던 거였겠지. 지금은 어른이지만 이때의 모습을 돌아보고 다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성인이 되고 나선 정말 필요할 때만 읽었는데, 이제 꾸준히 책을 읽고 있다. 


부정적인 생각은 정말 부정적인 것만 보게 만든다. 아무리 부정적인 상황이어도, 그 안에서 아주 작은 긍정적인 게 있을 수 있는 게 세상인데. 내가 너무 안 좋은 것만 생각하고 기억하고 있었던 것 같다. 이건 아니다 싶어 한 번 덮어둔 것을, 다시 봐보는 게 나쁘지 않을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도 그때의 내가 얼마나 괴로웠는지 보여주는 건 있었다. 증명사진. 당장 뛰쳐나가 죽는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표정이었다. 고등학교로 갈수록 점차 나아졌지만, 나는 그게 체념이라는 것을 알았다. 화조차도 나지 않고 모든 걸 포기한듯한 공허한 눈. 지금의 내 모습과 너무나도 다른 모습에 충격적이었다. 특히 초등학교 때의 얼굴은... 정말 안아주고 싶었다. 그때 그런 사람이 한 명이라도 있었더라면, 인생이 달랐을까? 같은 무의미한 후회를 가끔 할 때도 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가정일 뿐, 일어나지 않은 일이다.

결국에는 지금 내가 나 스스로 해줘야 한다는 걸 안다. 

그저 그때의 나를 만날 있다면 견뎌줘서 고맙고, 살아있어 줘서 고맙다고 해주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 03. 우울의 늪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