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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하일기 12 도강록 갑술일 04]

-법고창신의 문체 특징

by 백승호

1. 시냇가에서 요란스럽게 말다툼 소리가 난다. 말소리가 마치 새가 짹짹거리는 듯하여 한 마디도 알아들을 수가 없다. 급히 그쪽으로 보았더니, 득룡과 책문에서 일하는 되놈들이 우리 쪽에서 준비한 예물이 적다느니 많다느니 하면서 한참 싸우고 있었다. 예물의 품목과 양은 전례를 따라 그들에게 나누어주는데, 봉황성의 간사한 되놈들이 반드시 예물의 종류와 양을 더 달라고 억지를 부렸다. 책문에서 일어나는 예물의 분배 소동을 잘 처리하고 못하고는 전적으로 상판사上判事의 마두 능력에 달려 있었다. 만일 마두가 이런 일에 서투른 사람이거나 한어漢語에 능숙하지 못하면 그들과 말다툼도 할 수 없고,그냥 그들이 원하는 대로 다 들어줄 수밖에 없다. 만약 올해에 이렇게 해 주면 내년에는 그것이 전례가 되어 버리기 때문에 실랑이를 벌여서라도 예물의 양은 꼭 줄여야 했다. 사신들은 이런 연유도 모르고 매번 책문에 빨리 들어가기 위해 역관을 재촉했고, 역관은 다시 마두를 재촉했다. 이 폐단은 그 근원이 아주 오랜 것이었다.

溪邊有喧讙爭辨之聲, 而語音啁啾。 莫識一句, 急往觀之, 得龍方與群胡, 爭禮物多寡也。 禮單贈遺時, 攷例分給, 而鳳城姦胡, 必增名目, 加數要責。 其善否, 都係上判事馬頭。 若値生手, 不嫺漢語, 則不能爭詰, 都依所要。 今歲如此, 則明年已成前例, 故必爭之。 使臣不知此理, 常急於入柵, 必促任譯, 任譯又促馬頭, 其弊原久矣。


2. 상판사의 마두 상삼象三이 막 예단을 나눠 주려 하자, 되놈 백여 명이 그를 빙 둘러선다. 되놈 한 놈이 갑자기 큰소리로 상삼에게 욕을 했다. 득룡이 격분해서 눈을 부릅뜨면서 바로 달려가서 그놈의 멱살을 움켜쥐고 주먹을 휘둘러 때리려고 했다. 득룡은 되놈들을 뒤돌아보면서 큰소리쳤다.

“이 무례한 놈은 예의라고는 모르는구나, 예전에도 대담하게 이 어르신의 족제비털 목도리를 훔쳐 갔었지. 또 작년에는 주무시는 이 어르신을 업신여기고, 내 허리에 차고 있던 칼을 뽑아 이 어르신의 칼집에 달린 술을 끊어서 훔쳤지. 그리고 다시 내가 차고 있던 주머니를 잘라내려다가 내게 들켜서 내가 한 대 쥐어박으면서 내가 누구인지 너에게 잘 알려주었더니, 그때 이놈은 살려달라고 애걸복걸하면서 나를 되살아난 부모님으로 부른다고 하지 않았나? 이번에 오랜만에 왔더니 또다시 이 어른을 업신여기고, 내가 네 놈의 낯가죽을 몰라볼 줄 알았느냐? 겁 없이 함부로 큰소리 지르고 떠드는 것이냐? 이런 쥐새끼 같은 놈은 대가리를 잡아끌고 봉성장군에게 데려가야 해.”

여러 되놈들은 모두 한 목소리로 용서해 주라며 득룡을 달랬다. 그리고 멋스러운 수염에 산뜻하고 고운 옷을 입은 한 노인이 앞으로 나오더니, 득룡의 허리를 껴안으면서 달랬다.

"형님, 그만 화를 푸십시오."

득룡이 화를 풀고 빙그레 웃으면서 말했다.

" 내가 만일 아우님의 체면만 아니었다면, 이놈의 코빼기를 갈겨서 저 봉황산 밖으로 내던져 버렸을 거야."

그 말이나 행동거지는 정말 우스꽝스럽다. 판사判事 조달동趙達東이 마침내 곁에 와서 서기에 “조금 전에 본 그 광경은 정말 혼자 보기에는 아깝더라.”라고 이야기했더니 조 군이 웃으면서 말했다.

“이것이 바로 상대의 기를 죽이는 십팔기 무술의 하나인 살위봉법殺威棒法이네요.”

그러고는 조 군이 득룡을 재촉하면서 말했다.

“사또께서 이제 곧 책문으로 들어가실 테니, 예단禮單을 얼른 나눠 주어라.”하니

득룡은 연신 “예에, 예이”라고 하면서 짐짓 바쁜 척 서둘렀다. 나는 거기서 일부러 오랫동안 서서 나눠주는 물건의 명세표를 자세히 살펴보았는데, 그 품목이 참으로 괴상하고 잡다했다.

象三, 上判事馬頭, 方分傳禮單, 群胡環立者百餘人。 衆中一胡, 忽高聲罵象三, 得龍奮髯張目, 直前揪其胸, 揮拳欲打。 顧謂衆胡曰, 「這個潑皮好無禮, 往年大膽, 偸老爺鼠皮項子, 又去歲, 欺老爺睡了, 拔俺腰刀, 割取了鞘綬, 又割了俺所佩的囊子。 爲俺所覺送, 與他一副老拳, 作知面禮。 這個萬端哀乞, 喚俺再生的爺孃, 今來年久, 還欺老爺。 不記面皮好大膽高聲大叫如此。 鼠子輩拿首了鳳城將軍。」 衆胡齊聲勸解, 有一老胡, 美鬚髯衣服鮮麗, 前抱得龍腰曰, 「請大哥息怒。 得龍回怒作哂曰, 「若不看賢弟面皮時這部, 截筒鼻一拳, 歪在鳳凰山外。」 其擧措恇攘可笑。 趙判事達東來立余傍, 余爲說俄間光景, 可惜獨觀。 趙君笑曰 「這是殺威棒法。」 趙君促得龍曰, 「使道今將入柵, 禮單 火速分給。」 得龍連聲唱喏, 故作遑遽之色。 余故久立詳觀所給物件名目, 極爲恠雜。


3. [예단 품목]

책문수직보고柵門守直甫古(책문 관리 서기)2명과 갑군甲軍(갑옷을 입은 군인) 8명에게는 각각 백면지白綿紙10권, 소연죽小煙竹(작은 담뱃대) 10개, 화도火刀(부싯돌 치는 쇳조각)10개, 봉초封草(잎담배)10봉. 봉성장군 2명, 주객점主客司(사신 접대 관원) 1명, 세관稅官 1명, 어사御史 1명,만주장경滿洲章京(만주족 출신 무관) 8명, 가출장경加出章京(임시로 동원된 무관) 2명, 몽고장경蒙古章京(몽골족 출신 무관) 2명, 영송관迎送官(사신 접대 담당) 3명, 대자帶子(병졸)8명, 박 씨博氏(만주어를 한자로 음역 하는 역관) 8명, 가출박씨加出博氏 1명,세관박씨稅官博氏 1명,외랑外郎(임시 관원) 1명, 아역衙譯(지방 관아의 통역관) 2명, 필첩식筆帖式2명, 보고甫古 17명, 가출보고加出甫古(파견 나온 서기) 7명, 세관보고稅官甫古(세관 서기) 2명, 분두보고分頭甫古(보고를 보조하는 군졸) 9명, 갑군 50명, 가출갑군加出甲軍36명, 세관갑군稅官甲軍16명 등 도합102명(180명의 착오)에게는 장지壯紙(공문서 기록용 종이)1백56권, 백면지469권, 청서피靑黍皮(담비 가죽)120장, 소갑초小匣草(작은 갑 담배)580갑, 봉초封草800봉, 세연죽細煙竹(가는 담뱃대)74개, 팔면은항연죽八面銀項煙竹(은테를 두른 팔각 담뱃대) 74자루, 석장도錫粧刀(놋쇠로 만든 노리개 칼) 37자루, 초도鞘刀(칼집이 있는 작은 칼) 284자루, 선자扇子(부채)288자루, 대구어大口魚(대구) 74마리, 월내月乃 (혁장니革障泥 말다래. 말안장에 다는 진흙 받기 원주) 7벌, 환도環刀(군복에 갖추어 차는 칼) 7자루, 은장도銀粧刀 7자루, 은연죽銀煙竹 7자루, 석장연죽錫長煙竹(놋쇠로 만든 긴 담뱃대)42자루, 붓 40자루, 먹 40정, 화도火刀2백62개,청청다래靑靑月乃(층층이 여러 겹으로 된 말다래) 2벌, 별연죽別煙竹(고급 담뱃대) 45개,유둔油芚(두꺼운 기름종이) 2벌을 주었다."

柵門守直甫古二名, 甲軍八名, 各白紙十卷, 小烟竹十箇, 火刀十箇, 封草十封。 鳳城將軍二員, 主客司一員, 稅官一員, 御史一員, 滿洲章京八人, 加出章京二人, 蒙古章京二人, 迎送官三人, 帶子八人, 博氏八人, 加出博氏一人, 稅官博氏一人, 外郞一人, 衙譯二人, 筆帖式二人, 甫古十七人, 加出甫古七人, 稅官甫古二人, 分頭甫古九人, 甲軍五十名, 加出甲軍三十六名, 稅官甲軍十六名, 合一百二人, 分給壯紙一百五十六卷, 白紙四百六十九卷, 靑黍皮一百四十張, 小匣草五百八十匣, 封草八百封, 細烟竹七十四箇, 八面銀項烟竹七十四箇, 錫粧刀三十七柄, 鞘刀二百八十四柄, 扇子二百八十八柄, 大口魚七十四尾, 月乃, 革障泥七部, 環刀七把, 銀粧刀七柄, 銀烟竹七箇, 錫長烟竹四十二箇, 筆四十枝, 墨四十丁, 火刀二百六十二箇, 靑靑月乃二部, 別烟竹三十五箇, 油芚二部。


4. 되놈들은 찍소리 하지 않고 예물을 주는 대로 받아 갔다.

조 군이 말했다.

"득룡은 정말 능수능란하네요. 아까 득룡이가 지난해에 잃어버렸다고 한 털목도리, 칼, 짐 보따리는 원래 잃어버린 적이 없어요. 공연히 트집 잡아 분위기를 요란스럽게 만들어 그중 한 놈의 기를 꺾어놓으면, 나머지 놈들은 저절로 기가 죽어 서로 멀뚱히 쳐다보다 물러서게 되는 법이지요. 만약 이렇게 하지 않으면 사흘이 지나도 일 처리가 되지 않을 것이고, 그러면 책문을 언제 통과할지도 모르지요.

"얼마 있다가 군뢰가 와서 엎드려 아뢰었다.

"관청 부역 관리 감찰관 문상어사門上御史와 봉성장군이 세관에 나와 앉아 계십니다."

머지않아 삼사三使가 차례로 책문으로 들어간다. 임금에게 올리는 장계狀啓는 관례대로 의주의 창군鎗軍에게 부쳐서 돌려보낸다.

群胡不做一聲, 肅然受去。 趙君曰 「得龍能則能矣。 彼往歲元無失, 揮項刀囊等事。 公然惹閙, 罵折一人, 衆人自沮。 皆面面相顧, 無聊卻立。 若不如此, 雖三日不决, 無入柵之期矣。」 已而, 軍牢跪告曰 「門上御史, 鳳城將軍出坐收稅廳。」 於是三使次第入柵 狀啓例付義州鎗軍而回矣。


[해설]

열하일기에 드러나는 법고창신 문학관

1. 『열하일기』와 문체 혁신

『열하일기』는 조선 후기 대문호이자 북학파 대표 인물인 연암 박지원을 대표하는 걸작이다. 연암의 시선과 비판 의식이 잘 드러나는 이 작품은 단순한 여행 기록에 그치지 않고, 인물 묘사와 사건 전개에서 뛰어난 생동감을 보여주며 독자의 몰입을 유도한다. 이러한 문학적 효과는 『사기』의 생생한 인물 서술, 『수호전』의 구어적 대화체 등 고전 문학의 기법을 창의적으로 수용하고 변형한 데서 비롯된다. 특히 「도강록」 6월 27일 기사에 등장하는 마두 득룡과 중국인 간의 충돌 장면은 연암이 『수호전』의 소설적 기법을 어떻게 흡수하고 재창조했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로 주목된다. 『열하일기』에서 연암은 중국인과 대화하는 장면을 백화체白話體로 표현하여 생생한 현장감을 준다. 이러한 연암의 표현은 여행중 현지의 언어를 그대로 표현함으로써 이국적인 여행 체험을 독자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한다.


2.1. 대화 중심 묘사를 통한 사건 전개

「도강록」 해당 대목에서 연암은 득룡과 중국인 사이의 갈등을 대화와 행동 위주로 서술함으로써 극적 긴장과 유머를 동시에 이끌어낸다. 예단 분배 문제를 놓고 충돌하는 장면에서, 연암은 “得龍奮髥張目,直前揪其胸,揮拳欲打...”와 같은 묘사를 통해 득룡의 격한 반응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이와 같은 극적이고 동적인 묘사는 단순한 사건 전달을 넘어서 인물의 성격과 현장의 긴박함을 입체적으로 전달하며, 『열하일기』의 사실성과 문학성을 동시에 강화한다.


2.2. 『수호전』의 언어와 표현 방식 수용

이 장면에 사용된 표현들은 『수호전』에서 익숙하게 접할 수 있는 구어체 어휘를 연상시킨다. “潑皮(무뢰배)”, “一副老拳(두 주먹)”, “爺孃(부모)”, “面皮(체면)”, “大哥(형님)”, “賢弟(아우님)” 등의 말은 모두 『수호전』의 대화에서 자주 쓰이는 구어적 표현이다. 이러한 어휘는 『열하일기』 원문에서 백화문으로 표기되어, 당시 필담의 현장성과 현실감을 한층 부각한다. 또한 “請···息怒(화 풀어주십시오)”, “若不看···面皮時(체면을 보지 않았다면)” 같은 문장 구조 역시 『수호전』 특유의 대화 관습을 충실히 반영하고 있으며, 이는 연암이 당대 청국 사회의 실상을 생생하게 그리기 위한 전략적 언어 선택임을 보여준다.


2.3. ‘살위봉법’의 활용과 문학적 패러디

조달동이 득룡의 행동을 ‘살위봉법’이라 평가하는 장면은 연암이 『수호전』의 특정 서사 기법을 의도적으로 패러디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살위봉법(殺威棒法)’은 『수호전』에서 감옥 간수가 새로 들어온 죄수를 초장에 몽둥이로 기를 꺾는 방식으로 자주 등장하는데, 이는 득룡이 예단 문제로 시비를 거는 중국인을 향해 기세등등하게 몰아붙이는 장면과 평행을 이룬다. 연암은 이와 같은 『수호전』의 장치를 단순히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조선 사행의 현실과 맞물리는 상황에 재맥락 화하여 풍자적 효과를 극대화하고 있다. 이로써 그는 고전 서사의 틀을 빌려 현실 비판의 도구로 전환하는 데 성공한다.


2.4. ‘법고창신’ 문학론의 실천

이처럼 연암은 자신이 주창한 ‘법고창신(法古創新)’의 문학론을 『열하일기』의 서사 방식 속에서 능동적으로 실천하고 있다. 『사기』의 인물 중심 서사와 『수호전』의 구어체 대화 기법은 연암에 의해 단순히 차용되는 것이 아니라, 청조 사회의 실상과 조선 사행원의 처세술, 북학적 문제의식을 드러내기 위한 창조적 장치로 탈바꿈된다. 그 결과 연암은 기존 고전 문학의 형식미를 활용하면서도 조선 사회의 구조적 모순과 현실을 사실적이고도 풍자적으로 형상화하는 데 성공한다. 이러한 문체 전략은 연암이 단순한 계몽적 실학자에 머물지 않고, 문학적 실험과 표현의 자유를 추구한 작가였음을 보여준다.


3. 『열하일기』의 문학적 가치와 창조적 전통 계승

『열하일기』는 단지 기행문이나 실학적 제언의 기록이 아니라, 고전 서사의 형식을 창조적으로 계승하고 재구성한 문학적 실험의 산물이다. 연암은 『사기』의 정통적 역사 서사와 『수호전』의 대화 중심 소설 기법을 능수능란하게 통합하여, 당대 청조 사회와 조선 사행의 복합적인 현실을 실감 있게 재현해 낸다. 특히 「도강록」의 득룡 장면은 연암 문체의 정수를 보여주는 대표 사례로, 소설적 형상화와 현실 풍자의 조화를 통해 독자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다. 이는 연암이 고전을 답습하는 데 그치지 않고, 내용과 표현 모두에서 새로움을 창출함으로써 ‘법고창신’의 문학 정신을 실천한 전형적 사례로 평가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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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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