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그녀에게>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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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그녀에게>는 발달장애 자녀를 키우는 류승연 작가의 에세이인 <사양합니다, 동네 바보 형이라는 말>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영화를 보는 내내 영화라기보다는 한 편의 다큐멘터리를 보는 느낌이었다. 시대적 배경은 2010년대지만, 2024년인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기에 지금도 어딘가에 발달장애 자녀를 둔 가족이 겪고 있을 이야기라서 영화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20년 동안 ‘장애’에 대해 고민하거나 관심을 가져보지 않은 내가 특수교육과에 진학했다는 이유로, 특수교육을 전공하고 특수교사가 되었다는 이유로 장애라는 세계에 입문했다고 말하는 건 염치없고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동안 만난 아이들과 부모님들 덕분에 조금은 장애라는 세계에 발끝 정도 디디고 있다고도 생각한다. 조심스러운 마음을 담아 다양한 시선으로 영화를 되돌아보려 한다.
1. 교사의 시선
“아이들은 순수해요. 하지만 순수해서 때로는 잔인하기도 해요.”
특수학급 학부모들이 직접 장애인식개선교육을 하면 좋겠다는 상연(김재화 역)의 제안을 거절하며 특수교사가 한 말이다. 처음에는 아이들을 위한 부모들의 제안을 단칼에 거절하는 교사가 너무하다고 생각했지만 이내 ‘아, 그렇지. 선생님도 수많은 고민을 했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면서 그 장면이 정말 가슴 아프다고 생각했다. 내 아이의 다름을 이해시키고 싶은 부모의 마음과 장애라는 낙인이 가져올 너무나 큰 고통이 어떤 것인지 아는 교사의 마음이 엇갈리는 순간이었다.
“선생님, 그러면 ○○이도 장애인이에요?”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장애인식개선교육을 하고 나면 돌아오는 순수하지만 너무나 잔인한 질문이다.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최대한 알아듣기 쉽게, 누구에게도 상처가 되지 않을 따뜻한 말만 골라서 대답해 주려 노력한다. 하지만 아무리 쥐어 짜내도 그 질문 이후에 벌어질 일들을 막을 수 있는 대답은 없다. 이미 ‘장애’라는 단어가 아이들 입에 오르내린 순간 ‘조금 특이한 친구, 말 안 하는 친구, 선생님 말씀을 안 듣는 친구’였던 ○○이는 ‘장애’라는 한 단어로 규정된다.
‘야, ○○이 장애인이야.’
‘선생님, ○○이는 무슨 장애인이에요?’
‘○○이는 장애라서 그래.’
이런 말들이 들릴 때마다 장애인식개선교육이 오히려 ‘장애’라는 단어를 사용하게 하는 교육이 되었나 싶어 괴롭다. 장애라는 단어의 의미를 알게 된 후 아이들이 말하는 장애는 단어로서만 존재한다. 아이들은 자기 나름대로 무어라 정의하기 어려웠던 ○○이의 말과 행동이 ‘장애’라는 단어로 규정되었기에 새로 익힌 단어를 ○○이의 여러 특성을 표현하는 단어로 사용할 뿐이다. 하지만 아이들의 세계에서 ‘장애’라는 단어는 점점 오염되어 간다. 비하와 혐오로 가득한 단어들이 장애라는 단어와 어깨를 나란히 하면서 어느새 아이들은 욕설의 하나로 ‘장애’를 사용한다. 진흙탕에 빠져 본래의 의미와 다르게 물들어가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장애인식개선교육이 무슨 소용이 있나 싶은 회의감에 빠지기도 한다.
그래서 많은 특수교사가 장애인식개선교육을 하기 전에 끝없이 고민한다. 아이들의 순수함 앞에 어떤 방법으로 ‘장애’라는 특성을 이해시켜야 할지, 내가 택한 방법이 오히려 새로운 문제를 안겨주지는 않을지 고민한다. 이런 고민이 모여 예전보다는 더 나은 방법의 장애인식개선교육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건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다. 지금도 이런저런 방법을 고민하고 있을 모든 특수교사에게 온 마음으로 응원을 보낸다.
아이들은 순수하지만 잔인하다는 말이 백 번이고 이해되지만, 아이들을 마치 잠재적인 죄인으로 만드는 것 같아 그 말을 이해한다는 사실이 한편으로 미안한 마음이 든다. 이런 마음을 달래려 김소영 작가의 <어린이라는 세계> 속 문장을 찾아 읽는다.
“어린이는 착하다. 착한 마음에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 어른인 내가 할 일은 ‘착한 어린이’가 마음 놓고 살아가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그러고는 착하다는 말을 바꾸어 쓴다.
“어린이는 순수하다. 순수한 마음에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 어른인 내가 할 일은 ‘순수한 어린이’의 순수한 마음이 변하지 않을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