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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실토실 토끼를 안았습니다』를 읽고

유기토끼가 나를 구조하다.

by 홍윤표

초등학교 때 애지중지하던 햄스터 2마리가 있었다. 수시로 당근을 건조해서 햄스터에게 주었고 틈만 나면 햄스터 사료를 문방구에서 구매하여 주는 것을 큰 재미로 알고 살았다. 아버지께서는 그런 나를 위해 햄스터가 가지고 놀 수 있는 쳇바퀴 등의 장난감을 직접 나무로 깎아 만들어 주시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께서 햄스터 우리를 살펴보시더니 별안간 나에게 잠시 멀리 떨어지라고 하셨다. 호기심에 햄스터 우리를 어깨너머로 힐끗 살펴보고 나는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그곳에는 햄스터 새끼들의 잔해가 있었고 그것들은 귀만 덩그러니 남아있는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그 뒤로 며칠 뒤 햄스터는 우리를 갉아먹고 집 밖으로 도망갔으며 그것이 내 인생의 마지막 반려동물이었다.

'반려동물 1천만 시대' , '펫티켓' '펫보험' 등의 신조어가 우후죽순으로 생겨날 정도로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반려동물 전성시대'가 된 지 꽤 오래되었다. 그로 인해 관련 사업이 확장되고 매스컴에서도 동물들의 귀엽고 앙증맞은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을 정도로 반려동물이 주는 파급효과는 여전히 상당하다. 그런데 그로 인한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연간 약 10만 마리의 유기동물이 발생하고 이로 인해 발생되는 민원과 사회적 지출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그보다도 더 큰 문제는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생명'이란 가치에 대한 존중감이 갈수록 소홀해진다는 것이다. 『토실토실 토끼를 안았습니다』의 작가 시안은 특히 유기토끼가 많이 발생하는 것에 주목, 그가 직접 보고 들은 유기토끼들과의 이야기를 고스란히 책에 담았다.

다소 생소하다. 유기견, 유기묘에 대한 이야기는 종종 들어왔지만 유기토끼에 대해서는 좀처럼 살펴볼 생각도, 기회도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책을 읽다 보니 생각보다 많은 토끼가 사회에 무분별하게 내몰리고 있었으며 이들은 개, 고양이보다도 더 하위 포식자이기에 잡아먹히거나 다치는 일도 빈번하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다. 작가는 동현이라는 짝꿍과 함께 서울시 중랑구 일대를 시작으로 마을 주변에 버려진 토끼들을 구조하며 입양할 가족들을 수소문하는 일을 수년간 해오고 있다. 그 과정에서 입양하지 않고 직접 기르고 있는 토끼들도 10마리가 족히 넘으며 그 행보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메추리알을 까먹으려다 그 안에서 메추리가 알을 깨고 나온 영상이 화제가 되었던 적이 있다. 예상치 못한 광경에 당황한 여자가 그 옆에서 함께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남자에게 이렇게 묻는다.


"야. 메추리 뭐 먹어?"


그렇다. 유기토끼에 관한 일반적인 통념과 달리 토끼는 당근, 배추가 주식이 아니다. 신생아도 태어나자마자 우유를 먹지 않는 것처럼 토끼에게도 생애 단계별 주식이 존재하였다. 만약 이 책을 읽지 않았더라면 토끼를 키워야 한다 가정할 때, 제일 먼저 마트에 가서 당근부터 샀을 것이다. 6개월 미만의 어린 토끼는 알팔파, 그 이후에는 티모시라는 건초를 먹여야 하며 이는 온라인에도 충분히 구매가 가능하다니 이 얼마나 놀라운 '알쓸 신잡'인가. 그 외에도 '분리 사육', '합사', '알레르기 반응' 등 마치 신생아를 대하듯이 세심한 정성과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도 더불어 알게 되었다.

유기 토끼를 여전히 사랑하고 현재도 그 아이들과의 이별이 늘 가슴 아픈 시안과 동현의 바람은 그저 토끼들의 안온한 행복이다. 갓난아기가 엄마 품을 파고들며 깊은 평온을 느끼듯 토끼들이 살아 있는 한 그렇게 살았으면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문득 나는 과연 교사로서 '생명 존중'에 대해 깊이 있는 고민을 해 보고 수업에 적용해 보았는지 돌이켜 보았다. 나름의 지식과 탐색을 바탕으로 수업을 고안하고 적용해 보긴 했지만 직접 현장에서 수많은 무고한 생명을 지켜 온 작가의 모습은 그야말로 '넘사벽'이었다.


'기르기 체험'에서 그치지 말고 '끝까지 책임지는 자세'에 집중할 필요가 있겠다.

생명 존중의 중요성은 해를 거듭할수록 강조되고 있다. 반려동물 문제를 해결하는 데 가장 필요한 덕목은 '책임 의식'이 아닐까 싶다. 우리 딸이 가장 좋아하는 동물이 '토끼'이고 아들은 친구들과 만나 동물 이야기를 하고 오더니 요즘 부쩍 집에서 기르고 싶다는 이야기를 한다. 물론 경험 삼아 반려동물을 식구로 들이는 일은 좋은 일이긴 하지만 그전에 아이들에게 '책임'이란 덕목의 무게감을 좀 더 스스로 느끼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이다. 이를 위해선 나부터 우선 생명 존중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오늘도 수도권 어딘가에서 열심히 토끼의 안위를 염려하며 고군분투하고 있을 시안과 동현에게 잔잔한 응원을 건넨다.


* 본 서평은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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