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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말 정산은 기차 타서라도 해야지

내가 이날을 얼마나 손꼽아 기다리는데 말이야

by 홍윤표

"어, 그러고 보니 이번 주 일요일이 11월 마지막 일요일이네?"

첫째가 중요한 것을 잊었다는 듯이 화들짝 놀라며 말합니다.

"크으. 역시 다른 건 다 잊어도 월말 정산은 절대 안 까먹는다니까. 대단해 아주."

제가 첫째의 말에 맞장구를 치며 감탄하니 말하지 않아도 모두의 머릿속에 한 단어가 스쳐 지나갔을 것입니다.


'티니핑'

매달 마지막 주말에 장인어른께서 아이들 용돈을 주십니다. 그리고 그 용돈을 받아 아이들이 사고 싶었던 장난감을 사러 가는 게 이른바 '월말 정산'입니다. 보상 체계를 그렇게 선호하지는 않으나 월말 정산을 바탕으로 아이들이 기본 생활 습관도 올바르게 잡는 데 활용하고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한 구분도 용이해져 그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집 근처 지하철역이 기차 운행도 함께하는 경춘선이라 기차 체험도 덤으로 할 수 있어 좋습니다. 버스나 지하철로는 용산까지 좀 부담이 되었을 텐데 기차를 타니까 왕복 2만 원에 4 가족이 편하게 앉아서 다녀올 수 있어 좋더라고요.

기차 여행의 꽃은 매점인데 경춘선 열차는 매점이 없습니다. 그래서 나름 놀러 가는 기분을 내기 위해서 도시락 통에 간단한 빵과 과일을 담아 준비하였습니다. 손님들에게 이른바 냄새 공격을 방지하기 위해 냄새가 최대한 나지 않도록 샤인머스캣에 딸기잼 바른 모닝빵을 만들었는데 아이들이 오며 가며 엄청 잘 먹어서 뿌듯하더군요. 아이들도 각자 자기 좌석이 있다는 것을 인지했는지 플랫폼에서 그렇게 신나게 떠들던 아이들이 제자리에 앉자 나름 에티켓을 열심히 지키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40여분의 기차 여행을 마치고 우리는 늘 그렇듯 티니핑이 있는 '이모션 캐슬'로 향했습니다.

'이모션 캐슬'에 도착하자 아이들은 우선 아이쇼핑부터 시작합니다. 신상품은 어떤 것이 들어왔는지, 우리 집에 이미 있는 장난감들은 얼마나 인기가 있는지, 새로 시작한 시즌 6 '프린세스 티니핑'의 캐릭터들은 얼마나 많이 입고되어있는지를 꼼꼼하게 살핍니다. 에이스 캐릭터인 '하츄핑'은 이미 집에 인형, 피겨, 놀이터 세트 등으로 이미 익숙하기에 그 외 나머지 수십 개의 캐릭터를 꼼꼼히 분석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렇게 30여분을 차분히 비교 분석한 결과, 아이들이 집어 든 것은 피겨가 아닌 스티커 꾸미기 세트였네요. 다이애나핑이나 이클립스핑 등 꽤 굵직한 캐릭터를 고를 줄 알았는데 말이죠.


'이래서 애들 키우는 엄마 아빠는 P일 수밖에 없다니까.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게 많으니. 하하'

열심히 시장분석(?)하느라 힘들었을 아이들과 근처 카페에 가서 당 충전도 하고 자기들이 고른 꾸미기 세트도 잠시 살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알록달록한 가발 형태의 종이들과 화려한 액세서리 스티커가 아이들의 이목을 사로잡기에 충분했죠. 음료와 케이크, 마카롱을 먹으면서 자기만의 멋진 공주를 꾸미는 모습이 참으로 예뻤습니다. 무엇보다도 네 것, 내 것 티격태격 싸우지 않고 사이좋게 의견을 공유해 가며 남매가 각자의 꾸미기에 집중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습니다. 그렇게 20여분의 평화로운 시간을 보내고 마지막 미션인 안전한 귀가를 수행하기 위해 승강장으로 내려갔습니다.

돌아오는 기차에서 딸은 고단한지 곧바로 의자에 기대어 낮잠을 잤습니다. 첫째도 다소 고단하긴 하지만 기차를 타는 경험이 신기하고 재미있어서 그런지 좀처럼 잠을 청하지 않았습니다. 도착하는 역마다 계속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풍경을 감상하는데 집중하더니 급기야는 자리를 아예 옮겨 출입구 주변에 서서 차창 밖 모습을 멍하니 지켜보더군요. 늘 하던 월말 정산이긴 했지만 오늘 같은 경험은 처음이라 아이들도 저도 뜻깊은 시간이었습니다. 다음 월말정산은 연말 정산까지 겸하는 거라 어떻게 챙겨주면 좋을까라는 즐거운 고민도 하면서 말이죠.


두 자식 상팔자 이야기는 앞으로도 계속됩니다. 쭈욱.


p.s 왠지 다이애나핑이나 이클립스핑 둘 중 하나는 올해 안에 우리 집에 들어올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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