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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재희 Hong Jaehee Nov 16. 2024

혼자 떠나는 여행

여행자의 기록 7


혼자 여행을 떠나면 가는 곳곳마다 초면에 똑같은 질문을 받는다.


"혼자 오셨어요?"


식당에 혼자 자리를 잡으면 어김없이 날아온다.


혼자 오셨어요? 그러면 나는 단답형으로 한 단어로만 대답한다. 네.


그러면 상대는 차마 더 묻지 못하고 비실비실 사라진다.



군산 여행길. 식당에 갔을 때도 게스트하우스에 짐을 풀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군산에..... 혼자 오셨어요? 내 대답은 하나다. 네.


(이런 된장! 아니, 도미토리를 예약했으니 당연히 혼자 아닌가! 그런데 나중에야 알았다. 국내의 여성 도미토리는 혼자 묵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것을. 친구끼리 가족끼리 도미토리를 묵는 사람이 다반사였다. )



게스트하우스의 카페에서 조식을 먹고 느긋하게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이틀이 지나 사흘째. 어느 정도 낯이 익자 주인장과 말문을 텄다.


주인장이 말하길 혼자 왔는데 내가 너무 당당해서 신기했다고.


당당하다? 그게 무슨 뜻이죠?


그가 덧붙였다.


나쁜 뜻이 아니라 다른 투숙객과는 달리 이런 환경이 익숙한 듯 자연스럽게 편안해 보여서라고. 허허허, 어이 없었지만...뭐 그럴 테지. 홀로 여행이 얼마나 자유로운 건지 몸소 체험한 사람 자기 자신이 된 사람만이 지닐 수 있는 여유로움이겠지.


궁금해졌다. 그런데 혼자 묵는 손님들이 대체 어떻길래? 그 날부터 도미토리에 묵는 여행자들을 살펴봤다.


여성용 도미토리에 묵는 혼자인 여행자들은  대개 이십대였다. 대학교 3학년이라는 한 여자는 난생 처음 게스트하우스에 혼자 묵는 거라 했다. 다른 날 스물 대여섯 살으로 보이는 여자도 태어나서 처음으로 혼자 여행을 하는 거라 했다. 3일 동안 만난 이십대 초 여행자가 모두 홀로 여행 홀로 외박 홀로 게스트하우스 초짜였다. 그런데 셋 다 딱 1박 뿐인 군산 홀로 여행. (아니, 하루 외박이 무슨 여행이야.....끄응!)


그 중 한 사람이 이런 말을 했던 게 기억에 남는다. 요즘은 혼밥 혼술 그리고 혼자 여행하는게 유행이잖아요. 그래서 저도 해보고 싶었어요. 흠.....혼자 여행마저 '트렌드'가 된건가. 하긴 여자 혼자서 가는 여행이라는 제목을 단 여행서도 쏟아지고 있으니 그럴 만도 하다.


그러나 그 여행이 친구 따라 강남가는 여행, 남들 다 하니 나도 한다라는 식의 따라하기라면, 미안하지만 오래 못갈 것이다. 젊은날 청춘의 치기로 어쩌다 한 번 나도 해봤어라는 생색내기로 그칠 것이다. 혼자가 익숙하지 않다면 홀로 있어도 편안하지 않다면 혼자 떠나는 여행은 어딘지 자신에게 맞지 않은 옷을 입은 것처럼 부자연스러울 것이다. 어딜가든 혼자라는 사실에 불현듯 놀라 밀려드는 외로움에 어쩔 줄 모를 것이다. 반면에 여성으로서 주체적인 여행자가 되고자 하는 거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앞으로 인생이 달라진다.






여행길에서 '혼자 왔냐'라는 말을 듣는 건 절대적(!)으로 여자다. 정말이지 한국 어디를 가나 이처럼 성가시고 짜증나는 말을 숱하게 듣는다. 게다가 나이어린 젊은 여자라면 아니 나이와 무관하게  혼자 여행하는 여자는 배려를 가장한 무례와 오지랖, 불유쾌한 관심의  안테나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남자라면 사사건건 혼자 왔냐는 질문을 받을까? 나이가 어리건 많건 간에 남성이라면 왜 혼자 다니냐, 애인 있냐 없냐, 옆에 왜 여자가 여친이 아내가 없냐라는 말을 질리도록 들을까. 글쎄다. 쓴웃음이 나온다.



동남아 배낭여행을 혼자 다닐 때, 어디를 가던 너 왜 혼자야?라는 질문을 귀에 딱지가 내려앉을 정도로 들었다. 터키에서도 마찬가지. 남편 남친 애인은 어디있냐라는 질문이 내가 버튼을 누르지도 않았는데 튀어나왔다. 그나마 유럽이나 북미에서는 이런 성가시고 무례한 질문을 받진 않았다. 하지만 곰곰히  따져보면 매한가지다. 안면을 트고 말을 섞으면 역시나 여지없이 날아온다.



라오스 깡촌에서 만난 서양남자들 배낭여행자들조차 서먹함이 사라지니 나에게 이렇게 물었다. 그런데 너 왜 혼자 왔어? 지겹다 못해 염오가 일었다. 오지랖은. 내가 혼자든 둘이든 짝이 있든 없든 님들이 뭔 상관? 지랄도 풍년일세. 왜? 라니! 그럼 너는 왜 혼자인데? 이렇게 반문하면 다들 조용히 입을 닫는다. 그나마 예전보다 나아진 건 이제는 나도 요령이 생겨서 능구렁이처럼 농담으로 멍청이들을 잘근잘근 씹어주고 밟아줄 여유가 생겼다는 것. 세상이 변화해서가 아니다. 단지 내가 바뀐 것뿐이다.



여자 혼자서 자유롭게 마음껏 세상을 돌아다니는 것은 여전히 이상하고 유별나며 특이하고 희한하다고 여겨지는 현실. 21세기에 살면서도 정작 여성의 자유에 대한 고정관념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느리고 더디고 짜증나고 화나는 상황이다. 군산의 게스트하우스에 묵었던 여성들도 내가 받은 성가신 질문을 아마 살면서 한 번씩은 들었을 텐데. 그럴 때마다 이들은 어떻게 대처했을까나. 도미토리에 묵은 이십대 여자들의 불안과 두려움, 이 세상 어디를 가던 혼자라는 자유와 밤을 즐길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여성의 현실. 배우자, 동반자, 애인 즉 남자가 없이는 불완전한 반쪽 취급을 받는 여성들의 사회적 지위. 원치 않은 사적인 질문에 시달리며 타인들 남성들의 시선에 저울질당하고 평가받아야하는 불유쾌한 일상.







어렸을 때부터 나는 남자 여자를 가르고 성별에 따라 다르게 행동해야한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누군가 나를 그 틀에 맞추어 따르라고 지시하고 명령할 때마다 엄청난 거부감을 느꼈다. 집에서나 학교에서나 부모와 선생들에게 죽기 삻기로 반항했다.



지금도 말끝마다  여자가  말이야, 남자가 말이야-를 들먹이거나 여자는 이래야지, 남자라면 이래야지-라는 말이 튀어나오는 인간들을 만나면 본능적으로 경계한다. 이런 사람들을 마주칠 때마다 뱃속 깊숙한 곳에서부터 ‘싫다’라는 감정이 쑤욱 올라온다. 가까이 곁을 주고 싶지 않은, 되도록 멀리 하고 싶은 사람들이다.



세상은 우리에게 여자 아니면 남자로만 살라고 강요한다. 이 사회는 여자에게 바깥 세상은 위험하고 조심해야하는 곳이라 가르친다. 여자가 혼자서 여행 다니는 건 위험하다 밤길 무서운 줄 알아야한다고. 부모에게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피가 거꾸로 솟았다.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아서 항상 반기를 들었다. 내가 나쁜 짓을 한 것도 아니고 위험한 인간도 아닌데 왜 내가 조심해야 하는가. 단지 여행을 떠나고 밤길을 걷고 싶을 뿐인데 왜? 우물가에서 숭늉찾는 격이 아닌가. 위험한 짓거리를 하는 우매한 남자들을 교육시키고 그들을 단속할 일이지. 위험한 새끼들 놈들의 문제이지 그게 왜 내 탓 여자 탓인가.  더럽게 짜증나고 화나고 성질나는 일이다.







군산 부둣가는 밤에 특히 아름답다. 밤 산책에 나섰다. 진포 해향 테마 공원에서 뜬다리를 거쳐 군산내항까지 그리고 미술관과 근대 박물관 사이를 호젓하게 걷는다. 아름드리 나무에 걸린 조명이 빛을 발한다. 별이 내리는 풍경. 포근하다. 깜깜한 밤바다를 바라보며 형형색색으로 바뀌는 조명빛 아래 바닷바람을 맞으며 서 있을 때, 벤치에 앉아 사색에 잠기거나 멍하니 넋을 놓고 있을 때, 나는 홀로 세상과 대적하는 기분이 든다. 그리고 그 세상이 바로 내 안에 있다.



나는 자유다.



주변을 둘러봐도 군산 주민들 가족끼리 나온 사람들 아니면 남녀 커플 뿐이다. 어딜봐도 여행자들은 뭣보다 홀로 온 여행자들은 보이지 않는다. 이 순간 나는 그들을 생각한다. 친구든 애인이든 가족이든 동반자가 없이는 낯선 타지에서 밤길을 혼자 걷지 못하는 여성들, 밤을 자유롭게 즐기지 못하는 수많은 이름 모를 여성들을.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온갖 시덥잖은 질문과 시선에 시달리며 부글부글 속을 끓일 세상의 모든 여성들을 생각한다. 한편으로 그럼에도 온갖 편견과 차별에 맞서 자신만의 여행을 자유를 찾아 용기를 낸 여성들을 동지들을 떠올린다.




떠날 채비를 하는데 게하 주인이 슬쩍 말을 던졌다.


- 그런데 오노 요코 닮았어요. 그런 소리 많이 듣지 않았어요?


존경하는 예술가와 외모가 비슷하다는 소릴 듣다니 그야말로 무한대 영광이지만 그와 내가 닮은 게 오직 그것뿐이니 멋쩍어 내가 한 술 더 떴다.


-사실 선글라스 끼면 존 레논도 닮았습니다. 둘 다죠. 그니까 자웅동체죠.


뻘쭘한 표정을 짓는 주인장에게 빙긋 웃어주었다.



거짓말이 아니라 나는 내 안의 아니무스와 아니마를 둘 다 사랑한다. 이 둘은 나의 내면에 조화롭게 자리한다. 결핍에 시달리는 모자란 인간일지라도 나는 나로서 완전하다. 나는 나다. 나는 우리는 모두 나이고 싶다. 누구의 기대와 시선에 맞추어 살고 싶지 않다. 우리는 세상의 표준과 기준으로 만들어진 누군가가 아니라 그저 자신으로 살아야 한다.



그리하여 자유롭게 밤공기를 만끽하며 숲 속을 홀로 산책할 수 있는 자유, 밤길에 배낭을 메고 항구 부둣가를 거닐며 콧노래를 부를 수 있는 자유를 여성이 마음껏 누리는 세상, 단지 여자로서가 아니라 사람으로서 여행하는 세상,  그 자유가 성별과 젠더에 따라 다르게 주어지지 않는 세상이 어서 찾아 오기를.




고교 시절. 책방에서 찾아낸 시인 실비아 플라스.


그녀가 써내려간 문장 하나 하나가 화살처럼 날아와 심장에 꽂혔다.


사무치게 절절했다.


그녀의 마음이 내 마음이었다.


실비아 플라스의 외침은 지금도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이제 그 글을 혼자서 길을 떠난 젊은 여성 여행자들에게 들려주고 싶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그 길 끝에 자유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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