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혼자 여행을 다니면
여행자의 기록 8
1.
투르키예가 터키로 불렸던 2016년.
투르키예 여행에서 하루가 멀다하고 길을 걸을 때마다 가게에 들어설 때마다 식당에서 카페에서 듣는 말이 있었다.
"결혼했어요?"
아뇨. 하면 눈을 똥그랗게 뜨고
"왜?" 한다.
내가 묻고 싶다 그러는 너는 왜라니?
반면 했어요 그러면 깜짝 놀라며
"그런데 남편은 어디갔냐?" 란다.
투르키예뿐만이 아니다. 태국에서도 라오스에서도 캄보디아에서도 말레이지아에서도 인도네시아에서도 필리핀에서도 별반 다르진 않았다. (이런 질문을 안받는 곳은 북미와 유럽 호주 밖에 없었다.) 여자 혼자 여행길을 떠나거나 또는 여자들끼리 떠나도 비슷한 질문을 받게 되어있다. 그대가 단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고정관념과 편견의 대상이 된다. 남자라면 평생에 한 두번 들을까 말까한 소리를 오직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어딜가나 시도 때도 없이 듣는다. 호기심을 빙자한 무례한 오지랖과 참견은 기본이다.
혼자 여행 다니면 무섭지 않냐 어떻게 여자 혼자 다니냐 왜 여자끼리 다니냐 왜 남친이 없냐 왜 결혼 안 했냐 왜 애가 없냐. 한번 응답하면 질문이 끝도 없다. 그렇다고 남친이 있으면 질문이 없느냐 그것도 아니다. 애인이랑 떠난 여행. 그런데 손에 반지가 없으면 또 이렇게 묻는다. 애인이냐. 그렇다. 결혼했냐. 안 했다. 왜 안하냐. 그러면 난 반문한다. 왜 해야 하냐? 그러면 상대는 대답은 못하고 혼란스런 표정을 짓는다.
이런 경험도 있다. 태국 시골 마을. 식당에서 아침을 먹는데 한 현지 여인이 내게 물었다. 결혼했냐? 대답 않고 가만히 있었더니 나와 함께 밥먹던 배낭여행 길동무가 네 남친이냐고 묻는다. 아니라고 고개를 저었다. 그런데 둘이 함께 여행을 다닌다고? 여자는 깜짝 놀라더니 그럼 빨리 그 남자와 결혼하라고 재촉한다. 어처구니가 없어서 그저 웃었다.
즉 여자는 남자와 함께 길을 떠나지 않으면 아무리 멀쩡한들 이상한 존재인 것. 이들 나라를 여행할 때 남친 또는 남편 없이 제 혼자 스스로 다니는 여자는 정상이 아니다. 이들 머리 속에 여자는 남자 없이는 불완전한 존재이며 남자의 보호 없이 여자 스스로는 독립적일 수 없으며 결혼 제도 밖의 여자는 그 자체로 불온하며 여자 혼자 떠나는 여행길은 남성의 공격에 노출되어 있는 위험천만한 도박인 것이다.
2.
이스탄불의 숙소로 돌아와서 접수대 직원인 오마르와 이야기를 나눴다. 컴퓨터 전공으로 대학을 다니다 휴학하고 알바중인 오마르의 생각이 궁금해서 짐짓 알면서도 넌지시 운을 띠운다.
ㅡ여기선 어딜가나 내게 결혼 유무를 물어대는데 너는 왜 안 묻니?
오마르가 대답하길 외국인이 주로 묵는 호텔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상대에게 사생활 같은 개인적 질문을 하지 않아야 한다는 걸 그게 예의라는 걸 암묵적으로 인식하고 있단다.
다만 이슬람 문화에서는 타인인 여자를 어떻게 대해야할지 몰라서 또는 장사를 위해서 손님을 끌려면 말을 걸어야하는데 그냥 평소 하던대로 결혼했냐를 묻는거라고 관습일 뿐이라고. 투르키예 문화와 투르키예 남자에 대한 편견이 생길까 걱정하며 정말 열심히 해명하느라 진땀을 흘리는 오마르가 좀 귀엽다.
그래서 난 걱정말라 편견으로 재단하지 않는다고 답해주었다. 한국에서도 똑같단다. 하나 더. 한국에서는 낯선 이들끼리 처음 만났을 때 몇 살이냐까지 따지지라고 덧붙였다. 그랬더니 한국도 비슷해? 라며 급 화색이 도는 오마르. 이거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씁쓸하구먼.
3.
어딜가나 이 귀찮고 짜증나고 넌더리나는 질문에 대한 대답 목록을 준비했다. 더 이상의 질문을 일거에 차단하기 위한 쎈 농담을. 상황에 맞춰 골라 써야겠다.
나는 남편 없다. 왜냐고?
첫째. 남편 죽었다.
둘째. 남편 감옥에 있다.
셋째. 이혼했다.
넷째. 난 이성애자 중심의 가부장제 사회에서는 결혼 못 한다. 왜냐고. 레즈비언이다.
다섯째. 이 네가지 상황을 적절히 섞어 시나리오를 더 풍부하게.
예를 들어 내가 남편을 죽여서 감옥 갔다 나왔다 또는 남편이 감옥에 있어 이혼했다 또는 남편이 죽어서 다행히 여친이랑 산다 또는 레즈비언이라 남편에게 이혼당했다 등등.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