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의 기록9
일 때문에 호텔에 묵는 호사.
호텔 투숙이 먹고사니즘의 연장일 때는 여행이거나 관광과 자못 다르다.
흑백같은 공기.
공항에서 묵는 환승 호텔처럼
호텔 방은 현실을 떠난 그 너머 어딘가
일상과 여행의 중간지대 회색지대에 있는 것만 같다일상을 등지고 공기처럼 머물다 공기처럼 사라진다.
내가 짐을 챙겨 떠나면 내 흔적은 남김없이 지워질 것이다.
타인의 방이 내 방으로 변신하는 공간.
누군가 왔다 갔는지 알 수 없는 익명의 공간.
나는 이 방을 거쳐간 무수한 그들을 떠올린다.
눈을 뜨니 커튼 사이로 빛이 가득했다.
간밤에 일부러 암막커튼을 다 치지 않았다.
잠에서 깨어날 때 빛을 보고 싶어서다.
아침빛이 스며드는 실내 단촐하고 평온한 기쁨.
호텔방에서 죽을 때까지 살았다는 해외의 모 작가가 생각나는 순간
「명동 프린스 호텔 소설가의 방」이 떠올랐다.
글쓰기는 순수히 개인적이며 고독해야하는 일이나 그 행복과 충만감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그 행복을 추구할 공간으로 호텔방을 선택한 작가들.
헤밍웨이는 쿠바의 암보스 문도스 호텔에서 '누구를 위해 종은 울리나'를
F. 스콧 피츠제랄드는 플라자 호텔에서 '위대한 개츠비'를
애가서 크리스티는 페라 팰리스 호텔에서 '오리엔탈 특급 살인'을 쓰고
시몬느 보부와르와 장 폴 사르트르는 집 없이 호텔에서 살며 카페에서 글을 썼다.
호텔에서 장기투숙하며
자질구레한 일상과 살림과 관계에서 벗어나
글만 쓰는 삶을 살면 좋겠다.......만
먹고사니즘을 벗어날 수 없는 나는 그럴 수가 없으니
동네 카페와 도서관과 부엌 식탁을
내 사유와 자유의 공간으로 삼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