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의 기록 10
야밤 비행기 공항 터미널 노숙 이젠 이골이 난다.
가난한 여행자는 몸이 재산인데
공항에서 밤을 새도 끄덕없던 시절은 영영 갔구나....
졸음이 폭포수처럼 쏟아진다.
여기저기 결리고 쑤신다.
피로에 쩔은 몸뚱이를 좁은 좌석에 구겨넣고 밤을 향해 날아간다.
Better airport experiance is coming to you soon. Really? Too tired to stay all night. Depends on your feeling.......
이 공항을 전에는 둘이 지금은 나 홀로.
낯설지만 편안하다. 외롭지만 자유롭다.
아아, 돌고 돌아 다시 온 이 곳.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도 있고 떠남이 있으면 돌아옴도 있다.
물길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떼처럼 흐르는 강물처럼
세월이 흘러 흘러 다시 이 곳으로 회귀한다.
쿠알라 룸푸르 국제 공항의 빛깔은 연푸른 바다색 출렁출렁~~
심해 바닷 속을 비추는 한줄기 파릇파릇 햇살.
빛 사이를 넘실대는 살랑살랑 물고기 승객들.
낯설음보다 낯익음으로 다가오는 쿠알라 룸푸르 국제공항에서 동 트는 아침을 맞이한다.
공항에서 비행기를 기다리고 앉아 있노라면 공항을 배경으로 한 온갖 영화가 떠오른다.
그 중에서 크리스찬 베일이 주인공인 영화 < 기계공 (Machinist)>
밤마다 불면증에 시달리는 주인공은 잠 못 이루는 밤에 차를 몰고 공항에 간다. 그리고 공항 터미널 카페에 홀로 앉아 비행기가 뜨고 내리는 풍경을 바라본다.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 그저 바라보고 또 바라본다.
내가 딱.... 더도 말고 딱 그 기분이다.
검색대를 통과하며 셀카 한 장을 남긴다. 공항을 오고 갈때 예전엔 카메라를 들고 다니면서 사진을 찍었다. 지금은 꼬딱지만한 스마트폰이 장난감이댜. 기다리고 통과하고 다시 기다리는 긴긴 시간 동안 카메라가 있어서 심심한 줄 모른다.
전세계에서 날아든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여 다시 어딘가로 떠날 채비를 하는 곳.
낯설음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유일한 곳.
내가 현대인이자 도시인이라는 자각을 하게 만드는 공간.
홀로 떠나는 시간 익명의 고독을 사랑하게 하는 공간.
이방인이 자연스럽게 빛처럼 스며들고 서로 다른 수많은 얼굴이 풍경 속으로 녹아드는 공간에 공항만한 곳은 또 없다.
공항 여기저기 오가는 사람들과 빛과 그림자가 만들어내는 풍경은 언제나 내 시선을 잡아끈다.
공항 터미널을 오고가는 승객들을 지켜본다.
모두들 적당히 쓸쓸하고 적당히 피로하다.
어디로 가는지 어디를 향하는지 서로의 길은 몰라도 모두는 각자 제 길을 알고 있다.
결국 그 길은 같은 길.
저마다 짐을 이고 들고 끌고 삶을 향해 나아간다.
반짝이는 지느러미를 이리저리 흔들며 삶의 풍랑 속을 헤엄쳐 흘러간다.
종착지를 향해 고독한 향해를 떠난 연어떼가 유영하는 곳.
공항.
공항에 가면 탑승을 마치고 지정된 자리에 앉을 때까지 공항 터미널 여기저기에서 마주치는 공항 사람들 공항에서 일하는 직원들 스탭들을 유심히 관찰하는 버릇이 있다. 저 카트를 운반하는 사람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이동할까. 화장실을 청소하는 사람은 들고 있는 물걸레와 청소도구를 어디에 보관할까. 저 노란 옷을 입은 사람은 활주로에서 어떤 일을 담당하고 있을까. 세관을 지키는 그 또는 그녀는 오늘 아침 식사를 어디에서 했을까. 새벽에 일하는 스탭은 몇 교대로 일을 할까. 승무원은 밤샘 비행을 마치면 새로운 도시 어디에서 잠을 청할까.
팔 번쩍 치켜들고 화이팅! 하라지만 밤샘 근무에 저는 그저 너무 피곤할 뿐이에요.
비행기 이륙 전까지 잠시 쉬겠습니다.
공항은 살아있는 유기체다. 공항이 숨을 쉬고 피가 돌수 있도록 밤낮으로 쉴새없이 움직이는 일개미같은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공항에 피를 공급하고 산소를 운반하는 헤모글로빈. 그러나 공항에 가면 언제 어디에나 있으나 눈에 띄지 않고 누구도 주목하지 않는 존재들. 이들을 남몰래 바라보면서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편다. 저 사람은 무슨 상념에 빠져 있을까. 간밤에 어디서 뭘 하고 있었을까. 이름은 뭐고 어디서 살고 있을까. 혼자 몽상에 빠져있을 때 마지막 탑승을 알리는 방송이 나온다.
이제 곧 문을 닫습니다.
승객 여러분은 서둘러 탑승해 주시기 바랍니다.
비행기가 활주로를 미끄러지듯 우아하게 스텝을 밟는다.
탑승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