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자의 기록 11
난 공항이 좋다.
떠남과 돌아옴, 만남과 헤어짐, 시작과 끝이 끊임없이 반복되고 변주되는 이 공간을 몹시 사랑한다.
이 곳에만 오면 미묘한 설렘이 피로한 흥분과 교차한다.
전세계 공항은 모두 공통된 국제 규칙과 질서에 따라 움직이지만 그래도 공항마다 특유의 색깔과 냄새가 있다.
비행기를 갈아타느라고 장시간 터미널에서 대기할 때면 늦은 시각 도착해 긴 밤을 보낼 때면 난 공항의 냄새를 맡으러 이곳 저곳을 돌아다닌다.
어디든 어느 나라든 공항이 주는 이미지와 느낌은 이상하리만치 똑같다.막막하고 적적한 비실재적 공간.
최대의 편의성과 최적의 효율성으로 움직이면서도 말하지 않고 드러내지 않고 쓸쓸한 공간.
공항 터미널에서는 누구나 자신이 고독한 현대인이라는 사실을 실감한다.
나는 전세계에서 날아와 이 곳을 스쳐 지나가는 셀 수없이 많은 사람들을 지켜본다. 각자의 이야기를 안고 승객이라는 이름으로 잠들어 있거나 잠들지 못하는 또는 종착지를 기다리는 사람들을. 익명성이 고독이 유기체처럼 흐르는 이 공간. 공항은 현대인의 고독을 자양분 삼아 잠들지 않는 거대한 인큐베이터와 같다.
스마트폰을 손에 든 히잡 쓴 여인이 육중한 강철 비행기에 오르는 광경은 '해부대 위에서 우산과 재봉틀의 기이한 만남처럼 아름다운'(로트 레아몽 '말도로르의 노래') 장면이다. 나는 지구 하늘을 촘촘히 세포처럼 가로지르는 레이더 항공 노선을 상상한다. 마치 수만 마리 철새떼가 흐트러짐 없이 하늘을 유영하고 플랑크톤 수억마리가 바다 속을 바람처럼 가르듯 저마다 다른 이름을 달고 종착지를 향해 날아가는 수많은 비행기를.
공항에 홀로 앉아 비행기를 기다리는 시간.
이국의 여행자들이 오고 간다. 귓가에 스치는 낯선 외국어. 내가 모르는 이해할 수 없는 소리가 음악처럼 맴돈다. 공항에 머물다 보면 익숙한 곳이 아닌 낯선 곳에 있다는 실감이 난다.
어느 싯구절이 떠오른다.
'입안에서 꼬이는 두 개의 혀로 외국어를 배우는 연애의 시간'.
여기가 아닌 거기 익숙한 곳이 아닌 낯선 곳으로 향하는 모든 여행은 연애와 같다.
전광판에는 아직 가보지 못한 도시의 이름이 끊임없이 나타났다 사라진다.
글자로 점으로 환원된 도시의 이름은 앞으로 내가 사랑하게 될 사람의 이름이다.
알 수 없는 것에 대한 매혹으로 향하는 여행에 초대받은 순간, 설렘이 지속되는 기간은 낯섦과 익숙함 그 사이를 상상하는 동안에 달려있다.
삶의 끝에 죽음이라는 종착지가 있듯 여행에도 종착지가 있다.
하지만 사랑은 그 여정 사이 어드메에 있고 이제 난 그 사랑을 찾아 저 멀리 끝까지 날아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