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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식작가 Aug 14. 2022

내 주식이  치킨값 같았으면

외식과 나의 이야기

  우리는 이제 치킨에게

  지고 싶지 않다


  끝없이 추락하는 내 주식을 보면 한숨이 나온다. 주가표를 닫고 기사를 보니 치킨이 이제 삼만원이란다. 왜 오르지 않았으면 하는 것은 결국 오르고, 떨어지지 말아야 할 것은 떨어질까. 내 주식이 치킨값 같았으면. 끝없는 우상향을 그렸으면. 그랬다면 나는 부자가 되었을려나.


  모두가 예민하게 받아들였겠지만 기어코 치킨 한마리를 먹기위해 세종대왕 세 장을 내야하는 시대가 도래하고야 말았다.

  배달 음식의 최강자, 가볍게 맥주 한잔을 위한 최고의 안주, 기분 내기 적당한 서민의 음식. 이러한 수식어들은 치킨의 수요를 꾸준히 높혀 왔다. 수요가 높아진만큼, 공급량 역시 늘어났고 덩달아 가격도 인상되었다.

  하지만 문제는 이 가격 상승이 평균적인 물가 상승률에 대비한 적절한 인상이었냐는 것이다. 우리 모두가 인지할만큼, 이건 어색하고 또 불편한 일이었다.


  원래 치킨은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호불호 없이 누구나 좋아하는 음식이었다. 온가족이 마주앉아 티비를 보며 치킨을 뜯었다. 나의 가족은 일요일 밤마다 예능을 보며 식탁에 둘러 앉아 치킨을 먹었다. 치킨은 가족의 음식이자, 서민의 음식이었다.

  그런 치킨은 어느 순간 서민의 곁에서 멀어졌고, 우리를 망설이게 했다. 결국 그 맛 때문에 우리를 늘 굴복시키지만 도대체 언제까지 져줘야 하는걸까.




  정말 30,000원 치킨은 실존할까


  그렇다면 정말 30,000원짜리 치킨은 존재할까. 사실 치킨 값만 놓고 보면 아직 완벽한 삼만원에 도달했다고 보기는 힘들다. 하지만 배달비, 그것이 문제가 되었다.

  전단지를 보고 시키던 시대를 지나, 배달 어플이 도입되면서 배달의 전성시대가 도래했다. 배달 어플은 혁신적이었다. 외식업 전체가 배달 시장에 집중하게끔 만들었다. 

  이전까지 배달음식에서 '배달'은 서비스였다. 소비자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미끼였다. 하지만 주객이 전도되었다. 소비자들은 비용을 지불하면서까지 배달 서비스를 받고 싶어했다. 방구석에서 갖은 음식을 먹고 싶었던 소비다들은 기꺼이 배달비를 지불했다.


   외식업에서 배달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다. 소비자 입장에서 문제는 배달비였다. '서비스'의 개념으로 시행되었던 배달이 유료서비스로 전환되었다. 소비자들은 거리에 따라, 상권에 따라 심지어 기상상황에 따라 천차만별의 배달비를 과금해야했다.  

  그 값은 적잖이 부담스러웠다.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지면서 결론적으로 소비자가 지불하는 가격이 많게는 50% 가까이 뛰었다.

  치킨도 예외는 아니었다. 더욱 큰 문제는 배달 어플뿐만 아니라 치킨 브랜드들이 자체적으로 배달비를 부과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치킨 값에 배달비라는 명목의 금액이 추가되었다. 결국 우리는 순수한 치킨값 이외에도 배달비를 따로 지불해야 했으며 치킨값은 올라갔다.

  30,000원이라는 치킨값도 이런 공식에 따라 도출된 것이다. 닭값에 각종 비용이 붙고 마지막 화룡점정으로 배달비가 붙으면서 이 지경에 이르렀다.




  치킨의 원가가

  그 민낯을 드러냈던 때


  치킨 가격이 거침 없이 오르자 치킨의 원가를 계산했던 기사를 몇년 전에 봤던 적이 있다. 그 당시 물가로 마트에서 구입한 재료를 사용하여 치킨을 만들었을 때, 대략 5,000원 정도면 그럴듯한 치킨을 만들 수 있었다. 게다가 도매로 재료를 납품하는 프랜차이즈에서는 더욱 저렴하게 치킨 한마리를 만들 수 있으므로 식재료 원가는 더 낮아진다.


  커피에도 비슷한 논쟁이 붙었었다. 한 잔의 커피에 들어가는 원두의 원가가 500원도 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듣고 소비자들은 공분했었다.

  하지만 외식업에서 식재료 원가가 차지하는 비율은 '일부'에 불과하다. 임대료, 공과금, 인건비, 기타 비용, 가맹비, 재료비, 세금 등을 제하면 사장님 손에 떨어지는 마진은 소박해진다.

  치킨값이 이만원이었던 그 당시, 식재료 원가 5,000원과 그외의 각종 비용을 제외하면 우리의 생각만큼 치킨집 사장님들은 치킨을 팔아 부자가 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식재료비를 바탕으로 치킨값을 비난하던 기사를 보며 같이 분노한 소비자도 있었지만 이런 논지를 펼치며 오히려 기사를 비판한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우리의 관심은 치킨값이 삼만원에 도달한 지금에도 이런 외식업의 논리가 합당하냐는 것이다. 원재료 값의 상승폭과 치킨값의 상승폭이 도저히 맞지 않다는 것이다. 이만원에서 삼만원으로, 1.5배의 값이 상승하는 동안 생닭값이 그정도로 비싸졌냐는 것이다. 치킨 브랜드들이 일제히 가격을 올릴만큼 경영이 어려워졌고, 운영하기 팍팍해졌냐는 것이다.

  치킨 브랜드들은 묵묵히 원가 상승으로 인한 합당한 가격인상이었다고 주장하면서 가맹점주들을 방패막이로 세웠지만 소비자들은 점점 속이 끓기 시작했다.




  우리는 왜 치킨에 관대했을까


  우리는 왜 치킨에 관대했을까? 사실 이 질문은 생각보다 바보같은 질문이다. 우리가 치킨에 관대한 이유는 대체품이 없고 맛이 있었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은 불평했지만 그들의 식욕은 치킨을 불평하지 못했다.

  우리는 치킨값이 15,000원에서 30,000원에 도달하기까지 가격 상승을 스스로가 용인해주었다. 우리는 꾸준히 구매를 했으며, 그 구매에 응답하듯 치킨집의 수가 늘어나고, 매출이 증가했다.

  기업은 똑똑하다. 수많은 지식이 모인 기업 집단은 대단히 머리가 좋다. 이들은 가격 인상에 대한 소비자의 반발을 당연히 예상했을 것이다. 예상을 품에 안고 가격을 인상했다는 것은 소비자가 결국은 구매하리란 굳은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의 고모 부부는 오래 전 치킨집을 운영했다. 치킨집보다는 옛날 동네 호프집이라는 표현이 어울렸지만 역시나 주력 메뉴는 치킨이었다. 고모네 가게에 놀러가면 늘 고소한 기름냄새가 진동했고 나는 치킨을 먹고, 항상 가게 앞에 세워져 있는 오토바이를 타는 시늉을 하며 놀았다.

  고모네 부부는 생계형 창업자였다. 치킨은 조리법이 간단하고, 프랜차이즈 시스템이 체계적으로 갖춰져 있어서 매년 많은 은퇴자들이 뛰어드는 업종이었다. 이는 IMF 이후로 가속화 되었고 치킨집 사장님은 언제부턴가 은퇴한 부모님이자 서민의 상징이 되었다.

  게다가 구매하는 소비자 역시 서민이었기 때문에 '치킨'이라는 음식과 그것을 파는 음식점은 배려의 대상이었고 이해의 대상이었다.


  몇 해 전 대형마트에서 PB 브랜드 치킨을 선보였을 때 골목 상권 보호를 위해 판매가 중지되었던 것도 치킨집 사장님들이 소상공인이기 때문이었다.

  대형마트 치킨은 대기업의 횡포이자, 서민의 밥그릇을 빼앗는 악덕 재벌의 기만 행위였다. 치킨 업계는 대대적으로 반발했다. 그리고 그 반발에 돛을 달아주는 언론의 집중포화와 그것을 보며 치킨 업계의 정당한 권리 되찾기라는 생각을 했던 소비자로 인해 대형마트 치킨은 자취를 감췄다.  




'먹지 않고, 사지 않는'

불매의 대상이 될 줄은 몰랐겠지


  소비자가 직접 발벗고 나서 보호해주던 치킨집은 이제 내다놓은 자식이 되었다. 치킨 프랜차이즈 가맹점주들은 서민이이지만 그 체계를 운영하는 본사는 그동안 몸집을 불려가며 중견기업으로 성장했다.

  생계형 창업이 대다수였던 가맹점주들 역시 그와 반대되는 사례가 속속 등장하면서 마냥 동정의 대상이 되지는 않았다.

  점주들 스스로 선택한 프랜차이즈였고 그들 역시 그런 본사의 후광을 톡톡히 보았다.  노후 자금으로 차린 까막눈의 사장님이라는 이미지는 점점 벗겨지고 있었다.   


  서민과는 거리감이 느껴지는 치킨을 보며 소비자들은 그들의 다소 억지스러운 주장을 받아들이기 힘들어 했다. 심지어 대대적으로 프랜차이즈 치킨을 보이콧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몇 해 전, 치킨 업계의 질타를 받고 한발 물러선 대형마트 치킨들이 소비자의 찬양받고 있다. 치킨 업계의 강한 반발과 그것을 은근히 동조한 소비자들로인해 판매 중지를 당했던 그때와 상황이 바뀌었다.

  치킨 업계는 당연히 몇 년전과 같은 논리로 반대하고 읍소했지만 이전의 양상과는 많이 달랐다. 언론은 등을 돌렸고 소비자들은 적극적으로 대형마트 치킨을 지지하기 시작했다. 저렴한 가격과 훌륭한 맛으로 소비자들의 인정을 받았다. 일시적인 바람일 것만 같았던 프랜차이즈 치킨 불매는 생각보다 길어지기 시작했다.


  치킨값을 삼만원으로 인상하면서 치킨 브랜드들은 이런 반발을 예상하지 못했을까. 예상은 했지만 이정도의 반발일줄 알았을까. 이 모든 것을 예상했지만 일련의 모든 반응이 일시적이라고 생각했을까.

  우리는 아직도 치킨 자체의 대체품을 찾지 못했다. 맥주의 단짝이며, 배달의 왕, 기분 전환을 위한 외식 메뉴라는 지위는 아직도 공고하다.

  나는 아르바이트가 끝나고 너무 힘든날이면 집 가는 길에 치킨을 배달시켰고, 캔 맥주와 함께 피로, 스트레스를 날려버리곤 했다.

  하지만 서민이 가장 잘 어울렸던 음식이지만 이제 서민과 멀어지려고 한다. 외식 물가가 치솟는 와중에 치킨은 우리를 위로해주지 못했다.

  어쩌면 우리도 치킨을 위로해주지 못할 순간이 올 수도 있다. 우리를 배신한 치킨을 위로해주고 싶지 않다. 서민과 가족을 등진 치킨에게 서운함을 느낀다.


가 치킨값 같았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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