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년 전 내가 막 서른 즈음이 되었을 무렵, 앞으로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나 치열하게 고민하던 나에게 큰 도움을 준 동갑내기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모든 스포츠에 뛰어난 기량을 갖고 있었고 피아노 연주도 수준급으로 하는 친구였는데, 언제나 독서를 즐겨하고 퇴근 후에는 주 2회 레슨을 받으며 또 다른 악기를 배운다고 했다. 주말에는 사람들과 테니스 동호회에서 운동을 하면서 인생을 즐기며 살아가고 있었다.
당시의 나는 육아에 지쳐 일상이 단조로웠는데 동갑인 그 친구가 그토록 재미나게 이것저것 시도하는 모습을 보고 너무나 신기하고 부러웠다. 우리는 같은 직장 같은 소속이어서 이야기를 자주 나누게 되었는데, 그때 나는 이 친구에게서 삶을 대하는 태도에 있어 좋은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중에서도 가장 고마운 것은 나에게 악기 연주의 즐거움을 다시금 일깨워준 것이었는데, 그 친구가 유려하게 피아노 치는 모습을 보면서 나도 초등학교 저학년 때 배우다 그만둔 피아노에 대한 열정이 다시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그래서 집 근처 피아노학원 성인반에 등록해서 시간 날 때마다 틈틈이 피아노를 치고, 학교에서도 음악시간에 아이들에게 직접 쉬운 동요곡을 연주해 주며 함께 노래를 불렀다.
음악이 주는 행복은 실로 엄청났다. 불안하고 슬펐던 마음이 아름다운 선율을 따라 평온하고 잔잔해졌다. 마치 "괜찮아, 괜찮아." 하며 내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듯, 부드럽고 따스했다.
그렇게 피아노 연습을 하다 보니 집에서도 피아노를 연주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동갑내기 친구에게 어떤 피아노를 사야 하는지 조언을 구했다.
친구는 새벽에도 마음껏 감성을 느끼며 피아노를 연주하려면 전자피아노를 사는 것이 좋다고 했다. 자기는 야마하 피아노를 쓰는데 소리도 좋고 부드러워서 만족한다며 모델명을 알려주었다.
나는 그 모델명과 같은 전자피아노를 50만 원대에 바로 구입했다. 그리고 새벽 밤낮으로 헤드셋을 끼고 피아노를 연습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곡을 치고 싶어서였다.
새벽 피아노 연주는 정말 감성적이고 아름답다.
대학교 2학년 때, 나는 교대에서 무용수업을 들었는데 그때 친한 친구가 이루마의 '샤콘느'라는 피아노 곡으로 춤을 췄다.
그 친구가 어떤 춤을 췄었는지는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는데 이상하게 그 곡만은 나의 마음에 너무나 꽂혀서 나는 종종 그 음악을 찾아들었다. 그런데 피아노를 치게 되니 그 곡을 내가 직접 연주하고 싶어졌다.
동갑내기 친구는 나의 이야기를 듣더니 바로 샤콘느 악보와 클리어파일을 구매해서 나에게 선물해 줬다.
"그냥, 내 거 사는 김에 하나 더 샀어~"
하면서 무심하게 툭, 던져줬다.
나는 그날부터 매일 샤콘느 곡을 연습했다. 처음 일주일 동안은 악보를 따라가는 것조차 힘들어서 더듬더듬 한 음씩 치느라 아주 고생을 했다. 어른이 되니 손이 굳어서 그런가? 하면서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불쑥불쑥 올라왔다.
하지만 악보를 구해준 친구에 대한 고마움과 나 스스로 포기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인내하고 견디게 만들었다.
한 달 정도 연습하자, 완벽하진 않지만 곡을 처음부터 끝까지 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샤콘느 연주를 친구에게 들려주었다. 친구는,
"내가 피아노를 너보다 잘 치긴 하지만 이 곡만은 네가 나보다 훨씬 잘 칠 수밖에 없다. 네가 애정을 가지고 매일 연습한 곡이니까."
하고 이야기해 주었다.
그 친구는 나에게 다양한 음악을 추천해 주고, 평온한 삶을 사는 자신만의 방법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려주었다. 마치 소울메이트처럼, 그는 힘들었던 나에게 영적인 영감을 주는 사람이었다.
지금은 어디서 어떻게 사는 지도 알 수 없지만, 나에게 음악의 즐거움을 다시 일깨워준 것만으로도 그는 나에게 너무나 고마운 사람이다.
음악은 참 신기하다.
음악을 들으면 그 음악을 좋아하던 그때의 내 모습과, 내가 살던 집의 풍경과 냄새까지 떠오른다. 그리고 동시에 음악으로 마음을 단단하게 다잡으려 노력했던, 평온해지려 부단히 애쓰던 그때의 안쓰러운 내가 지금의 평안해진 나와 오버랩되면서 '애썼어.. 정말 열심히 잘 살았어. 00아.' 하고 스스로를 다독여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