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우리 학년에는 능력자 동료 선생님이 계시다. H선생님은 첫인상부터 단단하고 의지가 곧은 강인함이 느껴졌고, 함께 반년을 넘게 지내다 보니 속정이 깊고 솔직함까지 갖추신 그야말로 온유한 카리스마가 있는 분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나는 H선생님과 10살 이상의 나이 차이가 나지만 이상하게 선생님과 함께 있으면 마음이 편하고 좋다. 그 이유는 나와 H선생님 모두 거짓말을 하지 못하는 지극히 솔직한 사람들이라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선생님께서는 인생 선배로서 당신이 먼저 겪은 일들에 대해 꾸밈없이 말씀하시며 항상 스스로를 돌아보고, 성찰하려고 하는 훌륭한 분이셔서 나는 그런 부분이 굉장히 존경스럽다고 생각한다.
그동안 내가 보아온 50대 이상의 선배 선생님들께서는 보통 자식 자랑, 자기 자랑, 돈 자랑을 은근하게 하시는 분들이 많았는데 H선생님께서는 후배들 앞에서 항상 겸손하시고 자기를 낮추신다. 그런데 그 겸손이 꾸며낸 것이 아닌 지극히 솔직한 것이라 그 모습이 더 당당하고 멋지다. 자기 자신을 있는 그대로 마주하고 타인 앞에서 솔직할 수 있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는 큰 용기이기 때문이다.
H선생님께서는 사주와 타로카드를 공부하시는데, 나도 이 분야에 관심이 있어 우리는 시간 날 때마다 종종 사주나 타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사실 나보다 H선생님께서 훨씬 정통하고 해박하게 알고 계셔서 내가 선생님께 조언을 듣는 편이다.
오늘은 H선생님께서 나에게 부탁 하나를 하셨다.
"부장님, 내가 타로 공부하는 곳에서 숙제를 하나 받았는데 부탁 좀 해도 돼요? 인간관계에 대한 타로카드 임상실험을 해오라고 하네요."
나는 기뻐하면서 흔쾌히 답해드렸다.
"선생님, 너무 좋아요! 저는 선생님께서 타로카드를 봐주시면 너무나 위로가 되거든요."
그렇게 선생님께서는 나의 인간관계에 관한 타로카드를 봐주셨다. 먼저, 가장 궁금한 사람의 마음을 생각하며 기본 타로카드 12장을 뽑고, 로맨틱 타로카드 12장을 뽑으라고 하셨다.
"선생님, 이미 다 끝난 관계이긴 한데.. 두 명이 떠오르는데 두 번 뽑아도 괜찮아요?"
"그럼요~ 첫 번째 사람 거부터 뽑고 결과 본 후에 두 번째 사람 거 뽑을게요."
나는 최근 내 마음을 크게 아프게 했던 두 명을 생각하며 각각 24장씩 카드를 뽑았다.
첫 번째 타로카드
"첫 번째 사람은 호주 있을 때 호감이 있었던 사람인데요, 제가 다가가면 도망가는 그런 관계였던 것 같아요. 저도 마음이 끌리고 그분도 저한테 마음이 있는 것 같은 행동이 분명히 있었는데 물어보면 아니라고 하더라구요."
선생님께서는 카드를 찬찬히 살펴보시며 말씀하셨다.
"부장님이 주도하려고 했던 관계가 맞네요. 대화를 나누면 즐겁고, 마음이 잘 통했던 것 같은데.. 남자 쪽에서 엄청 계산하고 따지고 있네. 양쪽에 모두 전차 카드가 뜨는 걸로 봐서 한쪽이 급하게 다가갔고 다른 쪽은 그걸 부담스러워한 것 같아요. 그런데 결과 카드가 좋게 떠서.. 아마 두 분은 동료로서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잘 지낼 수는 있을 것 같아요."
나는 너무나도 정확한 상황에 대한 선생님의 말씀에 깜짝 놀랐다.
"와.. 선생님 너무 신기해요. 상황이 딱 그랬거든요. 그런데 동료로서 잘 지낼지는 모르겠어요. 직군이 다르기도 하고.. 일부러 연락하지 않으면 앞으로 만날 일이 없을 것 같거든요. 저는 그동안 후회 없이 다 해봐서 이제 먼저 연락하지는 않을 것 같아요."
"그래요. 나 좋다는 사람 만나야지, 부장님이 뭐가 부족해서 쫓아다니면서 만나. 조언카드를 보면 이 관계성은 여자가 쫓아다녀야 만나지는 관계거든. 그러지 마요."
선생님께서는 따뜻한 위로를 건네주시며 다음 타로카드를 봐주셨다.
두 번째 타로카드
"음.. 두 번째는 같이 오래 친구처럼 지내다가 갑자기 마음이 순식간에 확 커졌다가 금방 끝나버린 관계예요. 그런데 이 사람은 연결고리가 있어서 앞으로도 계속 봐야 하는 관계라 그 부분 때문에 더 힘든 것 같아요."
선생님께서는 신중하게 카드를 보시며 말씀하셨다.
"이 사람은 부장님을 여왕처럼 보고 있네요. 여기서도 부장님이 관계를 주도하려고 했던 것 같은데?"
"맞아요. 저는 확실한 게 좋아서 애매한걸 못 참고 제가 직접 물어봐야 해요."
내가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음.. 너무 신기한 게 왜 상반되는 카드가 계속 같이 뜨지? 이 사람도 부장님을 좋아하는 건 확실한 것 같은데 머리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네. 왜 그러지? 뭔가 상황을 계산을 하고 있는 것 같은데. 그런데 조언카드에서는 또 부장님이 다 이끌어줬으면 좋겠대요. 부장님도 참~ 자기 팔자 자기가 꼬는 것 같아. 왜 이런 애들을 좋아해요?"
선생님의 말씀에 나는 화들짝 놀랐다.
"네? 또요? 아니 저는 왜 만날 이렇게 제가 다해야 할까요? 하.. 저도 좀 누구한테 돌봄 받고 챙김 받고 싶은데 저는 항상 이렇게 제가 돌봐주고 이끌어주고 챙겨줘야 하는 남자만 들어오나 봐요. 저는 이제 너무 지쳐서 그런 거 그만하고 싶어요. 여기도 제가 솔직하게 표현할 만큼 다하고 끝난 거거든요. 제가 뭐 더 이상 할 수 있는 게 없어요.
둘 다 시작도 못해보고 하나씩 차례로 끝나긴 했지만 그 과정이 너무 힘들었거든요."
선생님께서는 나를 다독이며 말씀하셨다.
"그래요? 부장님 그럼 둘 다 하지 마요. 이제 미련은 훌훌 다 털어버리고 새로운 사람 만나. 더 좋은 사람이 다가올 거예요.
아니면, 남자 안 만나도 부장님은 크게 성공할 건데 뭐 하러 남자를 만나. 부장님 사주에서 이제부터 44살까지 운이 엄청 좋은데 그 운을 굳이 남자한테 쓸 필요가 있어요? 잠깐만, 다시 사주 한 번 보자. 부장님이 오시에 태어났다고 했나?"
"아니요, 저 술시에 태어났어요!"
"맞다, 이것 봐요. 나도 많은 사람들 사주를 봤지만 내 주변에서 이런 사주는 처음 봤어. 이 사주는 진짜 크게 성공할 사주예요. 뭔가 전문 분야를 하나 파서 책을 쓰거나 하면 다른 사람들 마음을 삭~ 끌어오면서 주목을 받게 되고 부장님 명예가 올라간다니까?"
"그래요? 너무 좋네요. 글을 계속 쓰고 유튜브도 놓지 말아야겠어요. 그런데.. 일과 남자를 병행할 수는 없나요? 운을 꼭 한쪽에만 다 써야 하는 건지 궁금해요."
"둘 다 병행할 수 있지~ 그런데 부장님 몸이 축날까 봐 그러죠. 일도 열심히 하고 남자도 만나려면 몸이 너무 힘들지 않겠어요? 그러니까 건강관리 잘해야 해요. 너무 축나지 않게."
"네, 선생님! 감사합니다~! 저는 일도 열심히 하고 이제 정말 좋은 사람 만나고 싶거든요."
선생님과 대화를 나눈 후, 마음에 큰 위로를 받았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타로카드는 나의 미래를 보여주는 게 아니라 과거의 경험을 반추하여 나의 마음을 명확하게 볼 수 있도록 도와준다.
그리고 오늘 H선생님 덕분에 그동안의 나의 상황과 내가 이성관계에서 가지고 있는 결핍이 무엇인지 알았다.
나는 연애를 시작할 때 '구원환상'이 있었다. 힘들어하는 이성을 보면 안쓰럽게 느껴 그를 내가 어둠 속에서 꺼내줘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연민에서 시작되는 사랑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안되지.. 전 남편과의 관계도 그렇게 시작했다가 결국은 모든 걸 다 희생하고 뒷바라지하고 나를 활활 불태워 그를 밝혀주다가 내가 더 불쌍하게 느껴져서 그만뒀는데. 또 그러려고 하고 있었다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리고 누군가를 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구원환상이야말로 오만한 생각 아닌가. 내가 나 스스로를 변화시키는 것도 이렇게 힘든데 누굴 변화시킨단 말인가.
나는 이제 스스로의 결핍을 알고, 다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구원환상에서 깨어나야겠다고 생각했다.
한쪽이 한쪽을 돌보고 보듬는 Care가 아니라, 누군가 없이도 혼자 온전하게 살 수 있는 두 사람이 만나서 함께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는 Love를 만들어가겠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