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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후의 햇살 Oct 06. 2024

너무 좁은 세상

한 다리 건너면 다 아는 좁은 지역사회

 작년에 타지로 전입해 온 후, 내가 가장 힘들었던 것은 좁은 지역사회의 특징을 도드라지게 느낀 순간이었다. 원래 살던 곳보다 약간 더 작은 도시로 왔을 뿐인데 한 다리만 건너도 다 아는 사람이라 말과 행동이 더 조심스러워졌다.


 이번에 새로 들어간 배구 모임에서도 이 좁은 지역사회의 특징을 강하게 느낄 수 있었는데, 학교 이름만 대도 사람들은 "어? 거기 나 아는 사람 있는데?" 하면서 공감대 형성이 되었고, (이건 좋은 점이다.) 자기가 아는 사람한테 내 얘기를 좋게 들었다며 금방 친해지기도 했다.



 반면, 조심스럽고 무서운 부분도 있었는데 이 부분 때문에 내가 계속 배구 모임에 나갈 수 있을지 고민이 되기도 한다.


 그 부분이 어떤 점이냐 하면, 내가 호주 연수를 갔을 때 연수생들에게 성추행 비슷한 행동을 하고 모두를 힘들게 했던 A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작년에 같이 근무했던 배구 모임 K선생님께 했더니 K선생님이 화들짝 놀라면서 "어? 정말요? 아.. 어떡하죠?" 하면서 곤란한 표정을 짓는 것이었다.


 그래서 내가 불안해하며 "왜요..?" 하고 되물었더니 "그 A선생님이 가끔 이 모임에 나오거든요.. 혹시라도 마주치면 선생님이 너무 힘드실까 봐요. 아.. 안 되겠죠?"라고 하는 것이다.


 나는 너무 깜짝 놀라 몸을 잔뜩 움츠리며 두 손을 모아 내 입을 막았다. 14년 만에 처음으로 마음에 드는 배구 모임을 찾았는데.. 하필이면 호주에서 나에게 가장 고통스러운 기억을 주었던 사람이 그 모임에 종종 나온다니.. 너무 큰 충격이었다.



 아니 그래도 여기가 읍도 아니고 군도 아니고 '시'인데 이렇게 좁을 수가 있는 건가? 어떻게 이렇게까지 좁을 수가 있지?


 시무룩해하며 내가 극복할 수 있을지 생각해 보겠다고 말하고 나서 K선생님과 소소하게 대화를 나누는데 이야기하다가 문득, K선생님의 나이를 잊어버려서 몇 년생이냐고 물어보았더니 그는 91년생이라고 했다.


 91년생..? 혹시나 해서 S선생님을 아냐고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이번에도 K선생님은 "어! 알아요. 저 같은 고등학교 나왔는데..? 고등학생 때 저희 윗집에 살았었어요. 지금은 이사 갔지만. 선생님은 어떻게 아세요?" 하고 묻는 것이다.


 맙소사... 진짜 여기는 엄청 좁구나. 나는 또 한 번 깜짝 놀랐다. 그리고 감이라는 게 정말 무섭고 신기하다는 걸 느꼈다. 왠지 K선생님은 S선생님을 알 것 같다는 느낌에 혹시나 해서 물어본 건데 아는 사이라니..


 "너무 신기하네요. 진짜 세상이 좁은 것 같아요. 제가 호주에서 엄청 힘들었을 때 S선생님이 이야기를 잘 들어주셨거든요. 그때 큰 위로를 받았었어요. 지금은 연락하고 있진 않지만. 좋은 분 같다고 생각했어요."


 내가 대답하자 다행히 K선생님도 그와 그 이상의 친분은 없는지 "아.. 그러셨구나. 신기하네요." 하고 대화를 마무리했다.






 잠깐 사이에 다시 한번 내가 살고 있는 이 지역의 좁은 지역적 특성을 느끼며 왜 이곳 사람들이 자신의 속얘기를 잘하지 못하고, 뭔가 늘 숨기는 것처럼 느껴지는지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내가 이곳에 전입 와서 가장 힘들었던 이유가 사람들이 '의뭉스럽다'는 것이었는데 1년 반을 살면서 그 부분에 대해 100퍼센트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지역사회가 너무 좁아서, 내가 무슨 얘기를 하고 어디를 가서 누구를 만나고 무슨 말을 했는지가 너무 빨리 전달되기 때문에 늘 남의 눈치를 살피고 말을 조심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숨기는 걸 싫어하고 언제나 솔직하고 당당하게 살고 싶은 사람인데..

 이곳에는 나와 비슷한 성향의 사람들이 별로 없다.


 어쩌면 그래서 내가 이곳에 이사 온 지 1년 반이 되도록 아직도 잘 적응하지 못하고 때때로 외로움과 고립감을 느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지역 만기 제도가 있어서 어쩔 수 없이 고향을 떠나 타지로 왔고, 물론 이 곳의 아름다운 자연경관이나 힐링 스팟들을 찾고 또 좋은 사람들을 만나 그럭저럭 잘 지내고 있지만 이상하게 이 곳에서의 삶은 외롭다. 자꾸 나를 생각의 심연에 빠지게 한다.


 아무래도 이 곳은 나를 품기엔 너무 작은 도시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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