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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윽고 슬픈 독서가 Jul 31. 2017

⎨COVER STORY⎬
당신의 캐리어는 안녕하신가요?

BOOKDIO COVER STORY


1. 

 직장인 A는 3개월 전, 비행기 표를 예약했다. 앞뒤로 주말을 붙이고 연차까지 이어붙인. 그야말로 영혼까지 끌어모은 휴가였다. 동료들은 극성수기에 뭐하러 그렇게 일정을 잡았냐 물었지만, 그는 되려 그들에게 묻는다. 


 "우리 같은 직장인이 극성수기가 아니면 갈 수 있는 날이 있기는 하냐고."

 A는 다음 주 8월의 시작과 함께 휴가를 떠난다. 말 그대로 극성수기라 불리는 기간이었다. 아직 공항행 지하철도 타보지 못했지만, 비행기 티켓값은 할부로 3번이나 갚았다. 물론 여행을 다녀와서도 세 번은 더 갚아야 한다는 사실은 구태여 상기하지 않으려 한다. A는 4년 전에 한 번 쓰고 장롱 위에 처박아두었던 캐리어를 꺼낸다. 8일의 휴가지만 얇은 여름옷을 넣기에 캐리어는 충분해 보였다. 여기에는 옷을, 저기에는 업무에 문제가 생길 때를 대비해 노트북을, 저 구석에는 한식이 그리울 때를 대비한 라면을. 또 다른 구석에는 보태준 거라고는 타박밖에 없는 주제에 선물을 사 오라며 떼를 쓸 동료들을 위한 선물 공간. 그리고 남은 공간에는….


 A가 이번 여행에서 꿈꾸고 있는 로망 중 하나는 유럽의 야외 테라스 카페에서 생맥주를 마시며 책을 읽는 것이었다. 딱히 독서에 취미가 있는 편은 아니었지만, 여행 프로그램에서 자주 봤던 그들의 여유로운 그 순간을 갖고 싶었다. 그런데 이런저런 짐을 다 싸고 나자 책 한 권 들어갈 공간이 없었다. 추가로 들고 갈 백팩에는 이미 카메라와 삼각대, 아이패드까지. 자리 잡은 물건들이 잔뜩이었다. 몰스킨 노트 한 권을 넣을 정도밖에 남은 공간이 없었다. 라면을 빼면 되련만. 아무렴 로망이 본능보다 중요할까. 그것만은 뺄 수 없었다. A는 8일 동안 읽으면 딱 맞을 것만 같은 400페이지의 양장본 책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2. 

 휴가와 여행. 이 두 단어는 여유라는 단어를 자석처럼 이어 붙여준다. 그래서일까? 휴가를 즐길 때면. 또 여행을 떠날 때면 바쁜 일상에서는 해보지 못했던 것에 도전할 용기가 생긴다. 낮에 여유롭게 맥주를 마신다거나, 목적지 없이 걸어보는 것. 혹은 평생 펼쳐보지 않았던 책을 읽는 것과 같은. 그런 일들을 해보고 싶어진다. 그래서 여행을 떠날 때 꽉 찬 캐리어의 한편에는 책이 담기곤 한다. 무겁게 가져간 책을 여행지에서 한 장도 못 읽을 수도 있다. 그것은 크게 문제가 아니다. 진짜 문제는 무겁다고 책을 가져가지 않았을 때다. 로망을 완성할 수 있는 순간, 가방에 책 한 권이 없다면 그것이 가장 큰 문제이다. 

 그래서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의 캐리어에는 책이 담긴다. 평소에 읽지 않던 책, 혹은 평소에 너무 읽고 싶었던 책, 혹은 여행지에서 보면 좋을 것 같은 책, 혹은 여행가이드북까지. 담을 만한 책은 너무나 많다. 그래서 한 권이 아닌 여러 권을 챙기는 여행자들도 있다. 그들은 캐리어에 짐을 꾸리며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차라리 전자책을 살까?" 

 전자책. 나온 지는 오래되었지만, 아직도 친숙하지 않은 물건. 어떤 원리인지는 모르지만, 종이를 볼 때처럼 눈이 부시지 않고 어두운 곳에서는 따로 조명을 켜지 않아도 밝게 읽을 수 있는 책. 게다가 수천 권의 책을 한 기기에 담을 수 있어 원하는 책을 모두 넣어갈 수 있으며 그럼에도 무게는 얇은 시집 한 권 정도밖에 되지 않는 물건. 그것이 바로 전자책 단말기다. 하지만 이런 장점에도 불구하고 전자책을 읽는 유저는 여전히 극소수이다. 물론 종이책을 읽는 독자도 늘어난 적이 없었으니 도서 시장의 전반적인 흐름이라고 볼 수도 있다. 종이책을 보는 독자들을 한정하고 질문을 던져보자. 왜 전자책을 사용하지 않을까? 답은 다양하지만, 대부분의 답을 차지하는 것은 하나다. 


 "나는 종이책의 감을 좋아하기 때문에 전자책을 보지 않는다." 

 처음 전자책이 나왔을 때 사람들은 MP3플레이어가 CD 시장을 먹어치웠던 기억을 떠올렸다. 그리고 도서 시장도 그렇게 개편이 될 것이라 믿었다. 사람들의 예상이 맞아떨어지기라도 한 듯 미국에서는 '반스 앤 노블' 등 종이책을 판매하는 서점이 점차 문을 닫았고, '아마존'에서 전자책의 판매량은 고공행진을 벌였다. 서양의 도서 시장이 이렇게 변하는 것을 보고 국내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우리도 서둘러 세계 흐름에 맞게 전자책 시장을 활성화 시켜서 침체를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보기 좋은 실패였다. 초기 국내에서 출시된 전자책 단말기는 '아마존'의 전자책 단말기 '킨들'에 비해 성능이 극히 낮았고 어느 서점에서 구입하느냐도 신경 써야 했다. 제작자들은 표준화에 대한 인식을 크게 하지 않아 자연스레 파편화되었고, 독자들은 전자책이 가볍고 많이 넣어 다닐 수 있다는 장점은 있지만, 가격이 크게 낮지 않고, 헌책을 팔 수도 없다는 점에서 종이책을 더 선호했다. 


 이렇게 국내 시장에서 전자책이 더디게 흘러가고 있을 때 서양 도서 시장은 다시 한번 변화하기 시작했다. 종이책을 금세 제치고 쭉쭉 뻗어 나갈 것만 같았던 '아마존'에서 판매량의 변화가 생긴 것이다. 사람들은 다시 종이책을 사기 시작했다. 그 이유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


 "나는 종이책의 감을 좋아하기 때문에 전자책을 보지 않는다." 


3. 

 전자책 시장은 이렇게 그들만의 리그로 전락해 버리는 것일까? 이에 궁금증을 갖는 사람도 많지 않았다. 판매자들은 딱히 잘 팔리지도 않는 전자책에 신경을 쓰고 싶지 않았고, 독자들은 가격 논리에 더 집중했다. 전자책은 다시 팔 수도 없고, 물질적 가치도 없는데 왜 종이책에 비해 10~20%밖에 저렴하지 않는가? 하는 의문이 전자책 시장을 더욱 위축시켰다. 이에 대한 답은 답답하지만 하나뿐이다. 


 "책은 종잇값을 받는 매체가 아니다." 

 매우 고지식해 보이는 이 답밖에 말할 수 없는 것이 전자책 시장의 현실이고 이는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여기까지의 과정을 보면 전자책 시장은 이제 완전히 사그라들 것만 같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조금씩 다른 움직임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번 시작은 기기 개발자가 아닌, 창작자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이 차별점이었다.


 시작은 또 '아마존'이었다. '아마존'은 작가들이 직접 전자책을 등록하고 판매할 수 있는 방식의 서비스를 개발했다. 기존에 작가들은 자신의 작품이 출판사에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책을 내기 몹시 어려웠다. 한국에서는 출판사의 직접 투고보다는 문학상 등에 기대는 부분이 많기 때문에 출간의 어려움은 더 큰 편이다. 이런 상황에서 출판사와 문학상에 거절당한 작가들이 직접 작품을 올리기 시작했다. <마션>으로 데뷔 첫 타석 홈런을 쳐낸 앤디 위어는 자신의 블로그에 <마션>을 연재하다가 전자책으로라도 작품을 보고 싶다는 블로그 팬들의 요청에 '아마존'에 <마션>을 자비 출판했다. 작품은 입소문을 타고 인기를 끌었고 이에 주목한 출판사가 <마션>을 종이책으로 출간하자고 제안을 했고 <마션>은 미국을 시작으로 전 세계 독자들의 손에 얹혔다. 

 비슷한 예는 최근에도 있었다. B. A 패리스 작가의 <비하인드 도어>도 시작은 '아마존' 자비 출간이었다. 쉰이 넘어 처음 쓴 소설이 출판사에 거절을 당하자 B. A 패리스는 '아마존' 자비 출간으로 작품을 등록했고 이 작품은 3일 만에 10만 부가 팔려나갔다. 작품이 인기를 끌자 일찍이 그녀의 작품을 거절했던 출판사들이 다시 그녀를 찾아왔다. 그렇게 출간된 종이책은 3개월 만에 50만 부가 팔렸고 영미권뿐 아니라 다른 언어로도 번역되어 판매되고 있다. 


 

이렇게 '아마존'을 중심으로 창작자들은 기존의 출판문화를 바꾸기 시작했다. 출판사 투고를 제외하면 딱히 방법이 없던 작품 발표를 돈이 많이 들지 않는 전자책을 이용해 극복한 것이다. 국내에서도 셀프 출판, 1인 출판 등의 사례가 심심치 않게 발견되고 있지만, 대부분은 종이책 시장을 활용하고 있다. 물론 '교보문고' 등에서 '아마존'과 비슷한 전자책 셀프 출판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해외 사례와 비슷한 성공 사례는 쉽게 찾아보기 어렵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아직 '아마존'의 출간 시스템처럼 소위 '쓸만한' 셀프출간 서비스가 등장하지 않았다는 점, 그리고 전자책 유저가 아직 많지 않다는 점이 가장 큰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대신 한국에서는 최근 다른 형태의 재미있는 시도가 나타나고 있다. 바로 인터넷 서점 '알라딘'이 시작한 기획 '전자책, 독립출판을 말하다'가 그 주인공이다. 이 기획은 독립출판을 하는 작은 출판사들과 알라딘이 협업으로 전자책을 출간하고 다양한 이벤트와 함께 독자들에게 제공하는 기획이다. 첫 번째 출판사로는 '하우위아'가 선정이 되었는데 '하우위아' 출판사는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방식으로, 가늘고 길지만 나선형으로 이어갑니다."라는 깃발을 내걸고 출발한 독립출판사다. '알라딘'의 이 기획은 '아마존'처럼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는 것과는 다른 방향에서 시도되는 일종의 이벤트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목적 자체도 상당한 부분에서 차이를 보인다. '아마존'의 셀프 출간의 경우 갖춰진 시스템 아래서 창작자와 독자를 자유롭게 연결하는. 다시 말해 전자책이라는 매체를 통해 도서 시장의 또 다른 방을 만들어 보려는 시도라고 한다면, '알라딘'의 이번 시도는 앞서 말했듯 일종의 이벤트로써 이런 시장도 가능하다는 것을 창작자와 독자 모두에게 소리치는 시도일 것이다. 모양에서 다소 다른 점이 있지만, 지향점은 둘 다 동일하다는 점이 재밌는데 이들의 향하는 곳에는 "전자책이 만드는 새로운 공간"이 어렴풋이 보이고 있다.



4. 

 전자책 시장이 짧은 시간 동안 굴곡 있는 변화를 겪어온 이유. 그것은 어쩌면 전자책을 물성 적인 장점이나 가격경쟁력의 시각으로만 바라봐서 인지도 모른다. 전자책을 더 낮은 가격과 가방의 무게를 덜어준다는 것으로 포장하자 독자들은 전자책보다 그것을 감싸고 있는 포장지의 무늬부터 따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때 독자들은 알게 되었을 것이다. 전자책은 특별히 더 값싸질 수 없으며, 책은 음악처럼 한 번에 여러 작품을 가지고 다닐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이렇게 되자 전자책의 포장지를 강조하던 이들은 더이상 답이 보이지 않았다. 그들을 대신해 답을 찾은 이들은 전자의 그릇에 담길 '책'과 '작품'을 만드는 창작자와 창작품을 존중할 줄 아는 시장이었다. 창작자들은 늘 그랬듯 '작품'에 신경을 쓰기로 했고, 그것을 가능케 해주는 기술 '전자책'을 활용했다. 독자들 역시 아무런 포장 없이 책으로 찾아온 날 것 그대로의 '전자책'을 기계가 아닌 작품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이 시작점을 놓쳐서는 안 될 것이다. 화려한 가짜 포장지가 아닌 꾸밈없는 모습으로 서로 마주한 지금의 시작점. 이 시작점에 경쟁은 없다. 종이책과 전자책이 전쟁을 벌일 필요도 없다. 책이 살고 있는 집에는 여전히 비어있는 방이 많으니까. 독자들은 교체가 아닌 선택을 원하고 있으니까.


Written by 최동민
1984romaingary@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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