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랑예찬 Sep 20. 2024

‘나’에서 ‘네가 곧 나’가 되기까지

‘나’->‘나와 너’->‘우리’->‘네가 곧 나’&‘내가 곧 너’

명절연휴를 보내면서,

결혼이란 무엇인지 새삼 생각해 보았어요.


결혼 전, 혼자서도 씩씩하게 잘 살았고,

재미도 있었어요.

친구도 있고, 언니도 있고, 조카도 있어서

‘이렇게 많이 가졌으니, 배우자는 없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안정적으로 생활했어요.


부모님께서도 나이가 차고 넘쳐가는 저에게

단 한 번도 ‘결혼해야지’라고 말하신 적 없으셨고,

일하면서 ’이혼‘을 많이 접하니

더욱 겁을 먹기도 했어요.


그런데, 눈 깜빡할 사이,

배우자와 아이들이 손잡고 걷는 장면이 영화처럼 펼쳐지고 있어요.

언제, 이렇게 된 걸까요.




결혼을 결심했을 때,

“이제 ‘나’가 ‘나와 너’가 되는 구나.”라고 생각했어요.


어떤 것도 함께한다는 의미는

좋은 것도 나쁜 것도 포함하는 것이니,

만약 배우자가 어려움이 처하면

그 옆에서 부축해가면서 함께 헤쳐나가겠다는 각오도 했던 것 같아요.


그렇게 ‘나’혼자 잘 살다가

‘나와 너’가 되었어요.


그리고

‘나와 너’는

각종 ‘첫’ 행사들을 겪으며 ‘우리’가 되었어요.


결혼 후 첫 크리스마스, 첫 새해, 첫 설, 첫 생신, 첫 어버이날, 첫 여름휴가, 첫 김장, 첫 결혼기념일까지

많은 ‘첫’ 행사들을 어쩔 수 없이 ‘함께’ 부딪치며

‘아, 어차피 한 팀이다. 팀킬은 안 돼.’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첫 임신과 첫 유산,

그리고 다시 임신과 출산, 또 임신과 출산을 겪으며

‘우리’는 갈림길에 섰어요.


육아기, 특히 막내를 기준으로 아이가 18개월이 되기 전에는 ‘우리’가 다시 ‘나와 너’로 돌아갈 뻔했어요. 체력적으로 힘든 시기였거든요.


그러다 아이도 자라고,

배우자에게 건강 이슈가 생기면서

‘우리’는 ‘네가 곧 나’, ‘내가 곧 너’로 발전했어요.


내가 못 쉬어도, 배우자라도 쉴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면서

결혼 전의 내가 절대 알지 못하는 세계가 펼쳐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안정적인 결혼생활이 주는 충만함은

자극적이지 않고, 재미가 없어요.

내 생활이 불만족스러우면 질투만 나고요.

그래서 미디어는 좋은 결혼생활은 보여줄 이유가 없어요. 시청률이 안 나올 테니까요.


그런데요,

결혼이라는 결정을 하고 살아가며

시간이 흐를 수록 가정생활을 잘 영위해 나가는 사람들만이 갖고 있는 ‘멋’,

탐나지 않나요.


그 ‘멋’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진 않아요.


고통 없는 성과는 없기에,

그 ‘멋’을 내기 위해서 내가 감내해야 할 고통도 분명히 있어요.


힘든 노력? 힘드니까 안 하는 선택도 할 수 있고,

‘힘들지 않고 얻을 수 있는 건 없지.’ 마음 먹고 노력해 보는 선택도 할 수 있어요.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건,

노력해보겠다는 선택을 했다면

그 선택의 끝에는 분명히 나의 성장과 안정적인 가정, 그 가정이 주는 충만함과 풍기는 멋이 있을 거라는 거에요.





명절 연휴가 길었지요.

신혼 때는 ‘결혼 전 명절’을 그리워하며 슬퍼하기도 했어요.

그런데 어느 새, 명절의 분주함과 스트레스 속에서도 나름의 행복과 보람을 느끼게 되었어요.


이렇게 된 데에는

‘나’가 ‘나와 너’가 되고,

‘나와 너’가 ‘우리’가 되고,

‘우리’가 ‘네가 곧 나’, ‘내가 곧 너’가 된 것도 한 이유인 것 같아요.


이혼변호사 12년차, 결혼 8년차에

명절이 이렇게 다르게 다가올 지 몰랐기에

기록으로 남겨둡니다.

작가의 이전글 치유하는 결혼생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