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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비상계엄 이후 1년 즈음하여

정치인의 사회적 사건 ‘자산화’를 돌이켜 보며

by 다시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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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들이 사회적 사건을 ‘자산화’하는 현상은 단순한 전략을 넘어, 자신들의 정치적 정당성과 정체성을 확보하는 핵심 수단으로 기능합니다. 한국 현대사에서 벌어진 주요 시위·집회·민주화운동은 대개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이루어진 역사적 사건들이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특정 정치 세력의 상징적 자산으로 흡수되는 경향을 보여왔습니다. 정치인들은 대중의 집단기억과 감정을 활용해 자신들의 정치적 정통성을 강화하고 지지 기반을 넓히곤 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패턴은 여러 역사적 사례에서 반복되어 나타납니다.



1980년 5월 광주 민주화운동은 본래 군부 독재에 맞선 시민들의 자발적 저항과 희생으로 이루어진 사건입니다. 그러나 이후 일부 정치세력은 이 사건을 자신들의 정통성의 근거로 삼기 시작했습니다. 예를 들어, 민주화운동 경력을 내세운 정치인들은 자신을 “광주의 아들” 혹은 “민주화운동의 계승자” 등으로 칭하면서 5·18의 정신을 자신의 정치적 정체성과 연결지었습니다. 실제로 매년 5·18 기념식 때면 여야 정치인들이 광주에 모여 각자의 방식으로 ‘5월 광주 정신’을 해석하며 상대 진영을 비판하거나 자신들이 그 정신의 적통임을 강조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행보는 광주의 시민항쟁이 지닌 도덕적 권위를 정치인이 공유·차용함으로써, 자신의 권력 기반을 강화하는 전형적인 예시라 할 수 있습니다.



1987년 6월 민주항쟁 역시 국민들이 직접 독재 종식을 외치며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한 역사적 사건입니다. 군부 권위주의에 대한 전국적 시민항쟁의 성공으로 한국 민주주의는 큰 전환점을 맞았습니다. 이후 이 항쟁에 참여했거나 그 정신을 함께 했던 인물들이 정치권에서 두각을 나타내며, 소위 ‘민주화 세력’이라는 정체성이 정치권 내에 확립되었습니다. 1987년 이후 등장한 많은 정치인들이 학생 운동권·노동 운동 출신 등 민주화 운동 경력을 바탕으로 도덕적 우위와 정치적 자산을 얻었고, 자신들을 민주화운동의 연장선에 놓인 세력으로 포지셔닝하였습니다. 이렇듯 6월 항쟁의 시민 정신은 이후 정치권에서 한 진영의 역사적 정통성을 뒷받침하는 자산이 되었고, 반대로 다른 진영은 ‘민주화 운동의 적통이 아니다’라는 공격을 받는 등 정치 담론의 한 축이 되었습니다. 결국 6월 민주항쟁으로 형성된 민주화 성과 역시 시간이 지나며 정치적 브랜드화되어, 민주화 세력임을 자처하는 정치인들에게 힘을 실어주는 역할을 했습니다.



2016년 말부터 2017년 초까지 계속된 촛불집회는 순수한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로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을 이끌어낸 평화적 혁명이었습니다. 광장에 모인 시민들이 보여준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과 힘은 전 세계의 주목을 받았고, 국내적으로도 큰 정치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이후 출범한 문재인 정권은 스스로를 “촛불시민혁명으로 탄생한 정부”라고 규정하며 촛불집회의 국민 뜻을 계승하겠다고 천명했습니다. 실제로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연설과 주요 기념사에서 촛불혁명의 정신을 여러 차례 언급하며, 새 정부의 개혁 조치들이 촛불 민심에 부응하는 것임을 강조했습니다. 촛불집회로 표출된 민심이 새로운 정권의 정당성 자원으로 활용된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촛불시위의 주체였던 시민보다는 정치권의 지도력과 결단이 부각되는 서사가 재구성되기도 했습니다. 예컨대 적폐청산 등 정부 정책들을 추진하는 데 있어 “촛불이 부여한 사명”이라는 수사가 동원되면서, 시민 혁명의 본래 맥락이 정치적 정당화 도구로 쓰였습니다. 촛불집회라는 위대한 시민 행동도 결과적으로는 새로운 권력이 자신의 정치적 기반을 설명하고 강화하는 상징으로 소비된 셈입니다.



이러한 시민 운동의 정치 자산화 구조는 윤석열 정부 시기에도 반복되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 취임 이후 검찰 중심의 국정 운영, 언론과의 갈등, 노동 정책 변화, 야당 대표에 대한 수사 등으로 사회 갈등이 증폭되었고, 이에 대한 시민들의 견제와 저항이 곳곳에서 나타났습니다. 2023년에는 노동계의 총파업과 집회, 언론 자유를 요구하는 기자회견,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 촉구 집회, 야당 탄압 반대 시위 등 다양한 형태의 시민 집회가 벌어져 정부 정책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를 냈습니다. 이러한 움직임도 시간이 지나면서 특정 정치 세력에 의해 정치적 자산으로 흡수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특히 야당인 더불어민주당 및 범진보 진영은 이러한 시민 항의를 “촛불의 연장선”에 있는 것으로 해석하며, 자신들이 곧 시민 분노의 대변자라고 주장했습니다. 실제로 야당 정치인들은 집회 연단에 올라 시민들의 목소리를 대변한다며 정부를 비판하고, 윤석열 정부에 맞서는 민심의 대표자를 자처했습니다. 이는 시민운동의 상징과 에너지를 정치인이 흡수해 자신의 명분과 지지를 강화하는 전형적인 행태로, 결국 앞서 언급한 자산화 구조가 다시 한 번 확인된 것입니다.



특히 2024년 12월에는 이러한 양상이 극적으로 드러났습니다. 당시 윤석열 대통령이 전격적으로 비상계엄령을 선포하며 의회와 정당 활동을 정지시키려 하자, 이에 반발한 시민들의 긴급한 거리 시위가 촉발되었습니다. 계엄 선포 직후 당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비롯한 야당 정치권은 즉각 계엄 철폐를 위한 국회 소집과 더불어 시민들에게 “헌정을 수호하기 위해 거리로 나오라”고 호소했고, 국민들은 자정 무렵부터 국회 앞과 광화문 광장 등에 모여들기 시작했습니다. 전국 각지에서 촛불을 다시 든 시민들의 자발적 저항이 이어졌고, “제2의 촛불”로 불릴 정도로 대규모 집회가 전개되었습니다. 결국 국회는 군의 방해를 뚫고 새벽 1시경 계엄령 해제 결의안을 190명 만장일치로 통과시켰으며, 윤 대통령도 6시간 만에 계엄을 철회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처럼 위급한 상황을 넘기는 데에는 시민들과 정치권 전체의 즉각적인 대응이 결정적이었는데, 이 과정에서 야당 정치인들은 시민 저항의 최전선에 함께 서며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확고히 했습니다.



계엄령 철회 직후인 12월 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계단에서는 야당이 주도한 대규모 “윤석열 대통령 퇴진 촉구 비상시국대회”가 열렸습니다. 이 자리에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박찬대 원내대표, 조국 전 장관 등 야권 인사들이 대거 참여해 시민들과 함께 윤석열 대통령을 강하게 규탄했습니다. 이들은 윤 대통령의 계엄 선포를 “불법 쿠데타”로 규정하고 내란죄 수사를 촉구했으며, 이재명 대표는 마이크를 잡고 “윤 대통령은 상황이 되면 다시 계엄을 시도할 것”이라고 경고하면서 시민들의 지지와 결집을 호소했습니다. 야당 정치인이 시민들의 자발적 저항 운동을 공식 정치 무대로 끌어올려 주도권을 행사한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이후 전개된 정국에서도 이러한 정치적 자산화는 계속되었습니다. 계엄 사태 직후 민주당 등 야권은 자신들을 ‘민주수호 세력’으로 내세우며 윤석열 대통령 탄핵안을 발의했고, 나아가 여권 인사들에 대한 각종 특별수사와 청문회 등을 추진하며 정치적 우위를 확보하고자 힘썼습니다. 예컨대, 야당은 계엄령 사태로 높아진 국민적 지지를 바탕으로 대통령 부인 등에 대한 특검법을 밀어붙이고, 헌법재판소 재판관 임명에도 영향력을 행사하려 시도했습니다. 이는 계엄 저지 국면에서 형성된 시민들의 민주 수호 열기를 야당이 정치적 추진력으로 전환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광주, 6월 항쟁, 촛불집회, 2024년 계엄 반대 시위에 이르기까지, 대한민국 현대사의 굵직한 시민 운동들은 반복적으로 정치인의 자산화 구조 속에 편입되었습니다. 정치인은 끊임없이 자신을 시대정신과 연결하고자 하며, 대중이 기억하는 고통과 투쟁의 서사를 자신의 정치적 서사에 끌어들여 권력을 형성·유지하는 데 활용합니다. 이러한 전략은 대중의 감정을 동원하고 역사적 정당성을 주장하는 데 효과적일 수 있지만, 동시에 운동의 본질을 흐리거나 왜곡할 위험성을 내포합니다. 시민이 만들어낸 변화의 성과가 특정 정치인의 업적으로 포장되거나,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 역사적 사건이 정치적 이익에 따라 일원화된 내러티브로 소비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분명 시민의 정치 참여는 민주주의 발전을 위한 필수 동력이며, 그 희생과 노력은 존중받아 마땅합니다. 그러나 그 참여의 결과물이 정치인의 상징적 소유물이 되는 현재의 구조에는 비판적 고찰이 필요합니다. 진정한 민주주의의 성숙은 시민 운동을 단지 정치적 상징으로 소비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정신을 실질적인 제도와 정책으로 구현하며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존중하는 데 있습니다. 역사 속 시민들의 목소리를 누가 어떻게 해석하고 대표하는가에 따라 정치적 의미는 크게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항상 유념해야 합니다. 결국, 다양한 시민의 함의와 요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정책화함으로써만 정치인은 그들의 정당성을 온전히 증명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시민 항쟁의 기억을 권력 유지 수단이 아닌 사회 발전의 자양분으로 삼을 때, 비로써 민주주의는 한층 깊어지고 역사의 다양한 목소리도 온전히 보존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반복적 구조 속에서 항상 함께 싸웠던 시민들의 자리는 점점 흐릿해집니다. 거대한 사회적 변화를 이끈 주체였던 시민은 시간이 흐를수록 기념되고 호명되지만, 실제 정치적 장면과 결정의 자리에선 배제되는 일이 잦습니다. 투쟁의 현장에서는 주체였지만, 이후의 정치적 서사에서는 배경화된 존재로 남거나, 정치인의 정당성을 뒷받침하는 상징물로 전환되곤 합니다. 시민들이 거리에서 외쳤던 목소리는 종종 정치인의 입을 통해 다시 전해지지만, 그 내용은 조정되고 재구성된 형태로 정치권의 이해관계에 맞게 전유됩니다. 특히, 정권의 성립이나 정당 재편, 선거 국면에서 시민 운동의 가치는 정치적 전략 자원으로 편입되며, 정작 시민의 구체적 요구나 참여의 연속성은 제도 속에서 뿌리 내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결국 민주주의의 성숙은 시민의 목소리를 단지 수사나 정당성 확보의 수단으로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실질적인 정치 참여와 제도적 반영으로 이어질 때 비로소 완성됩니다. 광장에 나섰던 이름 없는 수많은 시민들이 정치의 언어 안에서 사라지지 않도록, 그리고 그들이 외친 정신이 정치적 유산이 아닌 공적 책임으로 이어지도록 하는 것이 정치인의 과제이자 사회 전체의 책임입니다. 항상 함께 싸웠던 시민들의 자리가 비어 있다는 이 씁쓸한 자각은, 우리가 진정한 민주주의로 나아가기 위해 결코 외면해서는 안 될 현실입니다. 민주주의가 진정 시민의 것이라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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