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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곳곳이 빙판길이다.

내가 선 자리에서 내 스스로 눈을 치워야 한다.

by 다시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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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해야 할 때 멀리 떠나는 사람이 있다. 군복무 시절 행정보급관은 검열만 나오면 도망가는 사람이었다. 상급부대에서 지금 검열 갈 거라고 귀띔을 주면 부리나케 자차로 부대 밖을 나가는 사람. 지휘관이 없는 자리에 검열관이 오면 병사들만 줄창 깨지곤 했다. 검열관이 부대를 떠나면 그제서야 부대로 돌아와 "무슨 일 없었나?"라고 묻던 그 사람.



사회에 나와보니 그런 사람은 생각보다 많다. 제 자리에서 자기가 해야 할 몫을 하지 않는 사람들. 문제가 생겨도 남의 일인 것처럼 멀찍이 떨어져 입만 놀리는 사람들. 일찍이 안창호 선생은 말씀하셨다. "우리 가운데 인물이 없는 것은 인물이 되려고 마음먹고 힘쓰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인물이 없다고 한탄하는 그 사람이 인물이 될 공부를 하지 않잖는가. 그대는 나라를 사랑하는가. 그렇다면 먼저 그대가 건전한 인격자가 되라."



고등학교 선생님이 내게 장래희망이 뭐냐고 물었을 때. 나는 착한 어른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착한'이라는 말이 각자 생각하는 바가 다르고, '어른'이 된다는 건 나이만 먹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닫게 된 건 그로부터 한참 뒤였지만. 사회에서 어느 자리에 어떻게 있던 해야 할 몫을 하는 것이 어른이 아닐까. 착하고 나쁜 건 각자 서있는 자리에서 보는 방향에 따라 조금씩 다르더라도.



어제는 눈이 왔다. 쏟아지는 눈을 쓸고 또 쓸다가, 이렇게 쓴다고 뭐가 달라지겠나 싶다가도 한참을 쓸고 나니 눈길 위를 걷는 사람들이 보였다. 아이 손을 잡고 걷는 엄마와 한걸음 한걸음 조심스레 걷는 노인. 속도를 낮추고 배달을 가는 오토바이. 사람 사는 모습이 보였다. 짧은 시간에 많은 눈이 내린 까닭에 서울 곳곳은 교통이 마비되었다. 차도와 인도의 경계가 무너져 퇴근이 늦어진 사람들은 도로에 갇혀있다가 차를 버리고 걷는 일도 있었다.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사고는 속출했다. 한강버스도 운항을 중단했다. 지난 4일부터 베트남·말레이시아 출장 중인 오세훈 서울시장은 시민의 불편함이 없도록 지시했다. 어떤 시민들은 '따뜻한데서 잘 놀고 있나보네?'라며 비웃었다. 그가 언제 돌아오련가. 돌아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무슨 일 없었나?"라고 물으려나. 사회 곳곳이 빙판길이다. 누군가 넘어지지 않도록 내가 선 자리에서 내 스스로 눈을 치워야 한다.



최근 다시서점이 진행하는 펀딩은 지역재생 개념으로 진행하는 것이다. 지역이 중요하다면서 정작 지역 아이들에게 얼마나 관심이 있었나. 1년에 40여 학교가 문을 닫는 동안 '문제야 문제'라며 혀를 끌끌 찰 것이 아니라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지 고민해야 한다. 어른의 자리란 그런 것이라고 여긴다. 아마 펀딩 프로젝트가 끝나면 많은 사람이 내게 와서 말할 것이다. "무슨 일 없었나?"



곧 또 눈이 올 것이다. 치우는 사람이 될 것인가. 말만 많은 사람이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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