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2.29.
땀범벅이 된 채 들어선 셰어하우스, 시골 출신인 나로서는 뭔가 낯이 익은 건물 외관에 잠깐 움찔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이제 와서 새벽부터 부리나케 빠져나온 아파트로 돌아갈 수도 없고, 가고 싶지도 않고,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어떻게든 해보자는 마음으로 집에 들어섰다. 불행 중 다행인 점은 어제처럼 보자마자 주의사항을 읊는 사람이 있는 게 아니라 인사치레라지만 더위를 뚫고 온 내게 냉수를 권하는 사람이 있다는 점이었다.
시원하게 냉수를 들이켜고 나서야 인사를 나눴다. 청년과 주인아저씨, 곧이어 주인아주머니도 오셔서 간밤의 자초지종을 이야기하는데, 처음에 인사를 나눠준 청년이 어떻게 그런 사람들이 있냐며 내 편을 들어주니 그간 설움도 더위도 싹 가시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역시.. 사람이 전부야..)
주인아주머니는 전화에서 설명한 것처럼 미니멈 스테이가 있으니 당장 받은 돈의 환불은 어려우니 거기와 이곳에 비용 차이가 있어서 좀 더 오래 묵을 수 있으니 그동안 다른 숙소나 일자리를 찾아보는 게 어떻겠냐고 물어봐주셨다. 그리고 안내받은 방... 내가 소문으로만 듣던 닭장셰어에 들어왔음을 직감했다.
키친으로 이어진 마룻바닥을 지날 때 들리던 끼기긱 소리도 그러했고, 아까 지나쳐온 방을 힐끔 봤을 때도 이미 알고 있었다. 어두침침한 방 안에 이층 침대가 3-4개가 든 그곳, 커튼 사이로 바깥 햇살이 비추긴 했지만 여전히 어둑어둑한 그곳... 아파트를 나와놓고선 아파트를 바란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이런 곳을 원한 건 또 아니었다. 하지만 현실은 현실인 법. 받아들이지 못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기에 최대한 가볍게 생각하기로 했다.
아주머니께서는 이층 침대가 3-4개 든 다인실과 이층 침대 하나와 매트하나가 놓인 2-3인실 중에 어떤 곳에서 살지 물었다. 고민할 거리도 없이 가격은 더 나갔지만 2-3인실을 골랐다. 다인실은 이미 Sydney railway square YHA에서 겪어봤지만, 이곳 시설을 보니 거긴 호텔이 다름없었다. 그래도 사는 데는 지장이 없다는 생각이 든 게, 키친도 있고, 누워 잘 곳도 있고, 화장실도 있으니 없는 것만 없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뭐 시설이 좀 부실하긴 했지만 어디 무를 수도 없으니 내가 할 건 적응하는 수밖에. 게다가 시골출신에 푸세식 화장실, 군대까지 겪어온 나로서는 딱히 거릴 것은 없었다. (지금 생각해 봐도 샤워실은 진짜 좀 아쉽긴 했다.)
일단은 샤워를 하고 나서 와이파이도 연결하고 방에 가서 동산이에게 Indooroopilly에 왔다고 숙소도 잘 도착했다고 연락을 했다. 막막함, 여기까지 와서 이러고 있자니 순간적으로 그냥 시드니에서 있을 걸 그랬나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뭘 해야 될까? 뭘 하긴 해야 하는데 딱히 무언가가 짚이진 않았다. 여기만 오면 해결될 줄 알았는데, 이어진 현실은 보니 그렇게 녹록지 않았다. 나 잘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