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12.30.
'쿠쥬 리핏 뎃?' '쏘리?' '파든?'
오늘 처음으로 근처 Mall에 가서 매장별로 영문 이력서와 커버레터를 돌렸다. 시드니에서 못했던 일을 브리즈번에 오고 나서 해냈으니 스스로 기특하게 생각해도 충분할 것 같았는데 막상 기분은 헛헛하다. 오지잡*을 향한 갈망은 여전했지만, 내 떨림, 긴장감과 정확히 반비례했던 가게의 냉대에 놀랐고, 이력서를 낼 때마다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해서 '쿠쥬 리핏 뎃?' '쏘리?' '파든?'밖에 하지 못했던 내게 기회가 있을까 하는 회의감이 들었다. 도전 자체에 의의를 두자는 마음을 가졌었는데, 도전도 도전이라지만 결국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면 여기서 떠나야 하는데 도전 자체가 대체 무슨 소용일까 하는 생각까지 번졌다. 이력서를 내며 가장 아찔했던 순간은 "우린 아직 안 구해"라는 말에도 "땡큐, 땡큐!"거리면서 내 이력서를 건네었던 순간이었다. 그리고 눈앞에서 서랍장으로 직행하던 내 이력서 더미들.
*오지잡(Aussie job) : 호주인이 오너로 있고, 호주 최저시급이 보장되는 포지션.
단기로 들어간 셰어에서 방사람의 텃세가 싫어서 들어간 지 9시간 만에 새벽부터 짐 싸서 나온 나. 그 덕분에 수영장 딸린 아파트 셰어를 뒤로 하고, 렌트장의 또 다른 셰어인 시골 길가에 다 쓰러져가는 하우스로 온 건 남 탓을 하기엔 애매하고 물러 터진 게 죄라면 내 죄다.
달콤까지 바란 건 아니었지만 이 셰어도 시설만큼은 골머리를 썩였다. 첫인상인 외관부터 시설이 좋을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막상 예상했던 일이 실제가 되고 나니 그만큼 또 아쉬운 게 없었다. 옆 방 말소리가 들리는 건 당연했고, 벽에는 개코라는 도마뱀이- 노트북에는 개미떼가 지나다니기도 하고, 마지막으로 낮에는 바깥이 방 안보다 시원한 경험까지 하고 있자니 얼른 이곳을 탈출해야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그런데 모순적이게도 이곳이 싫으면서도 어떻게든 더 있으며 뽕을 뽑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자리도 못 구한 이 상황에 그나마 렌트비가 싼 이곳만 한 곳이 없다는 생각이 드는 게 아니던가? 돈이 없다는 생각(앞으로도) 앞에 땀이 뻘뻘 나던 이곳도 창문으로 드나들던 열풍이 잠시 시원한 바람처럼 느껴졌다.
_
다들 그런 걸까? 아니면 나만 그런 걸까?
SNS를 켜고서 '힘들다'라고 도배를 하려다가 힘들다는 표현이 나의 무능함만 비추는 일일까 싶어 쓰고 싶은 마음을 꾹꾹 내려 담았다. 그래도 마음속에는 지울 수가 없는지 자꾸 '나만 힘든 건가?'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오지잡을 구하려고 이력서를 돌리면서 '아직은 아니야'하고 되뇌었던 한인잡에 대한 생각을 달리하게 됐다. 줄어드는 돈이 가장 큰 이유겠지만, Mall 안에서 일하고 있는 동양인을 보니 다들 워홀러 같고, 돈을 벌 고 있다는 것 자체에 대한 경외심이랄까? 절대 호락호락할리 없을 한인잡을 그동안 무시 아닌 무시했던 나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호주를 오기 전, 다른 워홀러 블로그 글을 탐독하며 이렇게 저렇게 해야지 생각을 했는데, 막상 와보니 성공담은 성공담일 뿐이란 생각이 든다. 왠지 모르게 나도 그런 성공담이 이뤄지지 않을까 하는 근거 없는 자신감과 기대를 품기도 했지만, 이력서를 돌려보며 부푼 꿈의 가상현실 한 겹이 벗겨진 기분이 들었다.
지갑은 가벼워지고 힘듦은 반비례하며 커져만 가는데, 막상 절박함은 아직인 것 같아서 조금 걱정이 된다. 힘든 거 같긴 한데, 더 힘들어야 할 거 같고.. 더 힘들면 쪼끔 마음에 안들 것 같긴 한데 또 모르겠고.. 나 원참...
어느 쪽이든 뭔 상관이여? 어차피 헤쳐나갈 것 또한 모두 다 내 몫일 텐데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