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부보다 중요한 게 있었어!
프리랜서 생활을 청산하고 K직장인이 되었다. 가계부를 쓰다 보니 어느 순간 내가 버는 수입도 금액이 일정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프리랜서로 생활을 하다 보니 매달 수입이나 지출이 조금씩 달라져서 예산을 짤 때도 저축을 계획할 때에도 번거로운 부분이 있었기 때문이다. 40대가 되어 이직을 한다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 감사하게도 때마침 기회가 생겼고, 아이가 초등 고학년이 되어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지니 회사 생활도 무리가 없겠다 싶어서 이직을 결정했다.
마치 끌어당김 법칙이 통한 것처럼 적기에 나타난 직장이지만 적응하느라 눈코 뜰 새가 없었다. 책도 못 읽고, 글도 못 쓰고, 당연히 가계부도 못쓰는 날이 많았다. 그러다 보니 조금씩 미루다 2주, 3주씩 몰아서 쓰게 되는 상황이 됐다. 책 못 읽고, 글 못 쓰는 거야 그러려니 했다. 어차피 나중에 적응되면 다 할 수 있는 일이고, 읽고 쓰는 즐거움 마음껏 누리려고(여가시간 확보를 위해) 이직한 것도 이유 중 하나였으니까. 그렇다고 가계부 쓰기가 해이해지는 건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렇게 미루면 어디에 썼는지 다 기억이나 할까..'
3주간 미루다가 가계부를 몰아서 쓸 때는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싶었다. 통장에 있는 내역을 고스란히 베껴쓰기 바쁜데, 이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기도 했고, 그냥 한 달 건너뛸까 싶은 마음도 들었다. 그런데 한 달 쓴 걸 기록해야 어디에서 부족했는지 감이 오고, 다음 달 계획도 세울 수 있으니 얼렁뚱땅 넘어갈 수도 없었다. 이렇게라도 쓰고 나면 또 알게 되는 게 있겠지 하면서 미뤘다 쓰기를 반복했고 그렇게 두 달이 지났다.
새로 배우는 일들이 익숙하지가 않아서 밤늦게 집에 오는 날이 많았고, 외식, 배달, 이것저것 급하게 인터넷 쇼핑을 하는 일도 잦았다. 점심도 매일 사 먹다 보니 지출이 많았다. 금액이 적어도 지출이 쌓이니 하루에 지출되는 금액은 금방 몇만 원이 됐고, 가계부를 몰아서 쓰다 보니 몇만 원씩 쌓이는 지출금액들이 조금 무섭기도 했다. 하지만 그래도 꾹꾹 참고 가계부를 쓰다 보니 알게 된 사실이 있었다.
'통장별로(예산별로) 거래내역을 열어서 옮겨 쓰고 있다는 것!'
예전에 신용카드로 대부분 결제를 했던 시절에는 가계부를 미루면 카드 사용 내역을 보고 기록할 때가 많았다. 그러다보니 정말 이걸 왜 적고 있나 싶은 마음이 들어서 결국 가계부 쓰기를 포기하고 말았는데 이 부분이 달라진 것이다. 이제는 목적에 맞게 나눠진 통장 내역들을 보고 옮겨적고 있으니까. 똑같이 미뤄서 쓰는 것 같지만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 걸 느꼈다. 카드는 '얼마나 상환해야 하나?' 하는 걱정으로 쓴다면, 통장 내역을 보고 쓰는 건 '얼마나 방어할 수 있나?' 하는 마음이기 때문이다.
만약, 한 통장에 돈을 보관하고 썼다면 어디에 얼마나 더 많이 쓰고 있는지 감이 없어서 예상보다 훨씬 더 많은 돈을 썼을 텐데 통장 쪼개기가 되어 있으니 가계부를 쓰는 걸 미뤄두고 있어도 크게 예산에 벗어나지 않았다. 물론 식비가 초과된다던지 돌발 지출도 있었지만 생활용품 항목은 줄이는 식으로 예산 범위 안에서 쓰려고 노력하게 됐다.
'아, 기록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시스템을 만들어두는 게 더 중요하구나'
가계부 좀 쓴다는 사람들이 그렇게 통장 쪼개기를 이야기해도 와닿지 않았는데 몇 주 몰아쓴다고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가계부를 쓰다 보니 돈 관리에 시스템이 얼마나 중요한지 확실히 느끼게 됐다. 욕심내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수준에서 꾸준하게 하다 보면 뭐가 중요한지 스스로 터득하게 되는구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