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으로 다시 돌아가는 길. 수현은 벌겋게 달아오르는 얼굴을 바람으로 연신 식혔다. 오랜만의 술기운에 취해서일까. 열기는 좀처럼 식지 않았다. 수현은 사장의 얼굴을 떠올렸다. 검은 머리카락, 넓은 어깨. 사연 있어 보이는 표정. 강인해 보이지만 어딘가 지켜주고, 더 다가가고 싶은..
집에 돌아오니 자정을 넘긴 시각이었다. 아직 부모님은 오시지 않았지만, 민재는 이미 도착해 있었다. 현관 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민재가 수현을 반겨 수현을 깜짝 놀라게 했다. "아니, 원래 일찍 자는 애가. 왜 아직까지 안 자고 있었어." "썰, 들을려고. 빨리 얘기, 좀, 해봐. 내가 자리까지 비켜줬는데." 민재가 수현의 표정을 살폈다. 수현은 민재의 눈을 빠르게 피했다. "뭐야, 형, 왜 피하지? 뭐 다른 수확 없어?" "아, 하나 했다. 나 형 연락처 받았다!" 민재가 뿌듯한 표정으로 수현을 바라보았다. "오~ 역시, 좌동 탑게이~" 민재는 수줍어하는 수현을 놀리며 말했다. "이 새끼, 언제 이렇게 말빨이 세졌대? 너 진짜 죽을래?" "이름이 뭐였지, 그 형?" 민재가 형의 주먹을 피하며 말했다. "뭐였더라.." "아니, 형, 그 사람 이름도 몰라? 좋아하는 거, 마.. 맞아?" "아, 기억났다. 영태. 영태 형."
형제가 티격대는 사이, 현관문이 열렸고 수현과 민재 부모님은 지친 몰골을 하고서는 신발을 막 벗었다. "아고, 힘들어..." 어머니가 말했다. "니들, 아직까지 안 자고 뭐해? 얼른 가서 자." "네, 엄마. 이제 자려고 했어요. 민재, 너도 가서 자." "잘 자, 형." "잘 자, 엄마."
'좋아. 이제 두 군데는 해결했네. 숙제가 가게 네 개 대상으로 인터뷰하는 거니까. 이제 두 가게 하면 되는데.. 어디서 하지..' 수현은 생각했다. '근데 내가 같이 안 가줘도 될 것 같긴 한데.. 내가 꼭 같이 가야 하려나. 어제 보니깐 말도 잘하던데.' 돌아누우며 수현은 다시 생각했다. '아냐. 그래도 열네살 짜리가 혼자 가는 건 무리겠지.' 그때, 수현의 방문을 민재가 열었다. "형, 지금 오후 1시인데. 아직도 집이야?" 시간이 벌써 그렇게 됐나. 어제 술 조금 마셨다고 이렇게 뻗어버리다니. 정말 우스운 꼴이었다. "졸려 죽겠어. 오늘 그냥 밥 천천히 먹을래?" "형, 오늘, 그냥.. 음 배달시켜 먹을래?" 그 때 수현의 머릿속에 한 생각이 스쳤다. 배달 주문하면서 전화로 직업 인터뷰, 괜찮지 않을까? 시간도 절약하고. 우리가 손님이니까, 나름 당당하게 요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좋아. 그럼 족발 어때? 우리 계속 시키는 데 있잖아. 파족. 거기서 좀 많이 시키고, 우리 단골인 거 말씀드리면서 인터뷰 부탁드리자. 전화로. 자전거 타고 다니는 거 좋긴 한데. 오늘은 힘들어서." "형, 진짜, 천재야? 나도 오늘 너무 귀찮았어. 그.. 근데, 나 좀 전화 무서워가지고. 형이 좀 해주면 안되나." "야, 이게 내 숙제냐. 네 숙제니까. 그럼 스피커폰으로 하고, 너도 같이 좀 해봐." 민재는 걱정되는 얼굴이었지만 곧 용기를 내었다. "아.. 알았어." 수현은 몸을 일으켜 세워 냉장고에 붙어있던 족발집 메뉴판 자석을 집어들었다. "뭐 먹을지 고민하고 있어봐."
부산의 7월 날씨는 집 안에만 있어도 땀이 줄줄 나게 했다. 어제는 너무 늦게 들어오기도 했고, 설렘에 뒤척이다 씻는것을 깜박했다. 수현은 전화로 족발을 시키고 인터뷰 요청까지 허락받고 샤워실로 들어갔다. 수현의 몸은 부산 사람같지 않게 얄쌍하고 희었다. 수현의 부모님은 옛날에 병약해 보이기까지하는 수현의 건강을 걱정했다. 그래도 지켜보니 잔병치레는 안 하고 골골대지는 않은 모양이라 지금은 아무도 걱정하지 않는다. 말랐지만, 자전거는 자주 타서 그런지, 마른 상체에 비해, 허벅지 근육과 엉덩이는 비교적 탄탄했다. '내 몸을 봐 줬으면 좋겠어.' 수현은 민재를 떠올렸다. '형 몸은 어떨까. 가슴 커 보이던데. 어깨도 넓고. 진짜 인기 많겠다. 내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조금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다.' 뜨거운 물을 맞으면서 수현은 고개를 뒤로 젖혔다. 그대로 입을 벌려 양치를 했다. 그리고는 다시 발 쪽으로 고개를 떨궜다. '형이랑.. 아, 형은.. 날 다 좋아해줄까. 내가 알몸으로 앞에 서 있어도. 날 좋아해줄까. 형은 어떤 몸을 좋아할까.' 몇 분이 더 지나고, 수현은 욕조에서 나와 타월로 몸을 닦았다. 갈아입고 나오고 침대에서 뒹굴거리던 중, 초인종이 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