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던컨 Oct 14. 2021

7. 두 살 어린 상사를 모시고 있습니다.

나이 어린 상사를 모신 지 만 2년이 다 되어간다.

여태까지 상사는 당연히 나보다 나이가 많았었고

나도 나이가 차면 그런 자리에 있을 줄 알았는데

난 그럴 자격이 없는 건지 어쩐 건지 

나이 어린 상사를 모시며 월급루팡을 자처하게 되었다.

 

나이 어린 상사를 모시면서 많은 생각이 드는데

누가 봐도 답이 없는 사항을 임원에게 보고하는 모습을 보면 짠하기도 하지만

그렇게 답이 없는 사항을 어떻게 할 건지 간단하게 한 장으로 만들어오라고 떨어뜨릴 때면

'너는 뭐하러 그 자리에 앉아 있는 거냐?'라는 소리를 목구멍까지 치밀어 오르게 한다.

 

회사 상사라는 게 인생 선배이기도 해서

주니어 때 회식 자리에서 '형님 형님' 해대 가면서 힘들다고 앓는 소리도 해보고

나 좀 챙겨달라고 투정도 부릴 수 있었지만

시니어가 되어버린 나와  인생 후배인 상사를 보며 그저 옛날엔 그랬었지 하는 일일뿐이다.

 

그래서 상사에게는 개인적인 고민은 아예 꺼내지도 않고 업무적인 고민도 내색하지 않게 된다.

'요새 많이 힘드시지 않으세요?'

라고 살갑게 다가와도

'아니요 뭐 할만합니다.' 라며

내가 철벽을 치게 마련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불편한 점은

업무적으로 지적을 받을 때이다.

'내가 그래도 너보다 나이도 많고 업무 경험도 많아' 하며 뻣뻣하게 굴다가도 품의서에 오류를 지적하거나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을 파고 들어와서 '이럴 땐 대안이 뭐가 있죠?'라고 눈을 동그랗게 뜨게 물어보면 정말 할 말 없게 만든다.

 

그렇게 말을 못 하고 나면

'아! 왜 그런 실수를 했을까?'

'아! 그런 준비를 왜 미리 못했지?' 하는 생각에 다운이 되며 행여 그런 점이 후배들에게 영향이라도 미치게 되면 내 실수와 준비 부족에 자괴감을 느끼게 된다.

 

어떻게 그런 오류와 미비점만 쏙쏙 찾아내는지 씩씩거리다가도  

그래서 자리가 사람을 만드나 보다 하며

나이 어린 상사를 모시는 월급루팡의 생각을 적는다.

이전 06화 6. 월급루팡이지만 꼰대는 아니에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