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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쫌생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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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던컨 Dec 01. 2021

버스전용차로에서 발이 저렸습니다.


빨간 후미등이 빼곡히 들어찬 고속도로에 갇혀 있다 보면 시원하게 뻗어나가는 버스전용차선에 올라타 볼까 하는 유혹을 느끼지 않은 운전자는 없으리라 생각한다.  


차종과 탑승인원에 따라 전용차선 주행 여부가

결정되어 내 인생 첫 번째 차 카렌스와 두 번째 차 QM5는 생김새부터 적용 대상이 아니었기에 전용차선은 언감생심 꿈도 못 꿔봤었다.  


두 번째 차 QM5는 정말 충동구매였는데

신모델인 QM6를 보러 영업소에 갔다가 재고떨이 할인과 전시차 할인까지 해서 2천만 원 남짓에

새 차를 살 수 있다는 영업사원 말에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고 계약을 해버렸었다.

구매 후 6개월이 안되어 단종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하루가 다르게 커 나가는 아이들의 차가 좁다는 불평을 핑계 삼아 아빠는 3년 만에 다른 차로 한 눈을 팔기 시작했다.


차가 좁다고 난리니까 정말 큰 차로 바꾸자 해서

카니발 9인승을 인생 세 번째 차로 들였다.

아이들은 160도 가까이 꺾이는 의자에 눕고 나서는 더 이상 좁다는 불평이 없었고 나 역시 가족친화형 신형 RV를 타게 되어서 뿌듯했는데 가장 큰 쾌감은 6인 이상 탑승을 하면 고속도로 버스전용차선을 내달릴 수 있는 것이었다.


처가 식구들까지 6명이 탑승하게 되면 주말 나들이 고속도로가 꽉 막혔더라도 두렵지 않았다.

버스전용차선이 내 차선 인양 찾아들어가 엑셀레이터를  밟으며 속도를 올리기 시작하면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일반 차선 승용차들이 불쌍하게 여겨지는 순간이었다.

'아유 저러다가 언제 가냐? 쯧쯧'

내뱉으며 으쓱함에 취해 카니발 9인승의 장점을 동승한 가족들이 듣는지 마는지 상관하지 않고 떠들어대곤 했다.

 

그러던 지난 추석 연휴였다.

서울 도심에 갈 일이 있어 판교 톨게이트에서 고속도로에 올랐는데 약속시간까진 한 시간이 채

안 남았고 도로는 보나 마나 꽉 막혀있고

탑승자는 우리 네 식구뿐이었다.

이대로라면 약속시간을 훨씬 넘겨 도착할 테고

시간 강박 중증 단계인 아빠는 차선을 넘나들며 가다가 급기야 버스전용차선에 올랐다.

'그래 조금만 타고 가거야' 하며 운전을 했다.  

집사람은 늦어도 되니 일반차선으로 가자고 했지만

이미 2~3km를 씽씽 달려 속도에 맛이 들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가겠다며 억지를 피웠다.


정체로 유명한 달래내고개 양재 IC로 넘어 오는 순간 빼곡히 들어찬 자동차 사이에 경찰차가 보였다.

버스전용차선을 달리던 아빠는 가슴이 철렁해져서

재빨리 일반차선으로 파고들고는 원래 여기에서 다는 듯이 시치미를 뚝 떼고 주행했다.

막혀도 천천히 가야지 하면서 다시 준법정신을 불러일으키고 있을 때 아까 멀리서 보였던 경찰차는 어느새 옆 차선에서 같은 속도로 달리고 있었다.

경찰차 안 경찰관과 눈이 마주친 순간 모든 걸 응하기로 마음 먹었다.


'후후! 창문 내리세요 몇 분 타고 있나요?'

경찰차 마이크로 음성이 들리긴 했지만 입모양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네 명이요'

나는 마치 식당 종업원이 '몇 분이세요?'라고 물을 때 대답하듯이 다소곳 대답했다.

얼핏 본 집사람은 그러게 아까 일반차선으로 빠지자고 했잖냐고 왜 자기 말을 안 듣냐며 화와 핀잔이 섞인 짜증 언을 시작하고 있었다.


'뒷 창문도 내려보세요'하는 요청에

당황해서 눈이 동그래진 아이들이 경찰관과 눈맞춤을 하고 있음이 앞에서 운전하는 내게 연상이 되었다.


'갓 길로 차 대세요' 하는 지시를 받고 나서 우측 깜박이를 켜고 갓 길로 향했다.

범인 연행에 협조하듯이 막힌 도로는 홍해바다 갈라지듯 진로를 열어주었다.


갓길에 차를 대고 운전면허증을 경찰관에게 제시한 후 4만 원짜리 벌금을 안내받기까지 5분이 채 안 걸렸다.

벌금 안내서를 꼬깃꼬깃 접으며 가족들을 돌아봤을 때 원망 가득한 여섯 개의 눈동자가 만드는 침통한 분위기는 영영 잊지 못할 기억이다

사회규범을 지키고 모범을 보여야 할 아빠가

아이들 앞에서 떳떳하지 못한 행동을 저지르고

또 처벌 장면을 목격하게 한 점이 부끄럽고 또 부끄러웠다.


꽉 막혔던 도로는 이내 정체가 풀려 달리기 시작했고 약속시간보다 이르게 도착해서 집사람의 분노는 한 번 더 터지고 있었다.

 

가족 앞에서 못 볼 꼴을 보였다는 수치심이 잦아들 무렵 경찰차가 어떻게 우리 차를 지목했는지 생각하게 되었다.

진출로가 없는데도 버스전용차선에서 부득부득 일반차선으로 끼어드는 카니발은 제가 발이 저려 누가 봐도 '여섯 명이 안 타고 있습니다.'라고

외치는 꼴이었다.


험한 세상 쉽게 쉽게 살아가려면 깡이 있어야 한다고 하는데 그런 깡다구 하나 없는 아빠는 고분고분 살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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