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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르름 May 26. 2024

아픔 하나가 내 마음과 일상을 망가뜨리지 않게 하기

봉지에 담아놔요. 이 것도 내 건데


저는 굉장한 염세주의자였어요. 그런데 염세주의자에서 어느 날 갑자기 눈을 번쩍 뜨니까 낙관주의자로 변해있는 것이 아니에요. 그건 아주 뿌리 깊은 병이에요. 뭐 완치가 안될 수도 있죠. 거기서 오늘 당장 나오려고 한다면 그건 불가능해요. 그러니까 그런 생각은 아예 마시고 실제로 제가 많이 다치면서 배웠는데 매일매일 그 통증을 피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하루하루가 너무 힘들고요. 통증을 이렇게 껴안을 수 있는 내성을 기르는 것도 한 방법이에요. 저는 마음에 방이 한 칸이라고 단칸방이라고 이야기를 많이 하는데 마음에 방 한 칸만 방 한 칸이 모자라면 서랍이라도 하나 장만을 해서 버릴 수는 없으니 통증이나 이별이나 뭐 아니면 자기를 갉아먹는 컴플렉스나 이런 것들을 넣어두는 조그만 서랍 아니면 봉지 그거 하나 마련해 놔요. 통증 하나가 마음을 다 흩뜨려 놓고 다른 일이 안 되게 그렇게 되거든요. 그러니까 그것만 피하면 돼요. 통증은 없을 수도 없고 없앨 수도 없고 하니까 담아놔요. 그냥. 이 것도 내 건데. 그리고 나중에 보면 거기서 심지어 향기도 나요. 괜찮아요. 그런 것들이 자기를 풍요롭게 만들 거예요.

- 찌그러진 우리 삶을 위로하는 김창완의 편지, '찌그러져도 동그라미입니다' 저자 김창완 -


마음에 방 한 칸 마련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지 시도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흔히 생각은 통제할 수 없는 사건이라 몸을 움직여서 해결해야 한다고 하지 않던가. 그럼에도 감정이 일상을 망가뜨리지 않게 하라는 말, 당장 해결되지 않더라도 조급해하지 말라는 말은 우리의 마음을 움직인다.


피하지 말고 앉고 가기. 수용하기. 받아들이기. 말만큼 쉽지가 않아 오늘도 나는 고군분투한다. 이 세상에서 중요한 것들은 내가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이 무력감, 허탈감으로 끝나지 않고 오히려 그래서 아름다운 것이라고 느끼기까지 나에겐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까. 우리가 아름답다고 느끼는 예술작품들은 우연의 찰나를 포착한 것들이 많다고 S는 말했었다. 발버둥 쳐봤자 괴로울 뿐이니 그냥 그대로 흐름과 같이 떠가자(나도 그러고 싶다).


해맑은 웃음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분이어서 그런지 가수 김창완의 고백이 그래서 더 큰 의미로 다가온다. 나 또한 나 자신이 염세주의자가 아닌가 생각한 적이 많았다. 그리고 나의 통증은 여전히 피하고 싶고 껴안기가 어려워 하루하루가 쉽지 않다. 내 안에 방을 만들고 서랍을 만들고 봉지를 만들고 그 안에 넣어 놓자. 일단 넣은 후엔 몸을 움직이고 다른 일을 하자. 자꾸 그 안을 들여다보고 싶을 때는 더 소중한 것들을 생각하자. 나에게 항상 영감과 위안과 안식처가 되는 존재를 떠올리자. 언젠간 내 봉지에서도 향기가 나게 된다면 장미향이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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