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내 이야기는 이랬다.
어린 시절 삼 남매 중 둘째로 태어나
언니와 동생에게 많은 것을 양보하며 살아왔다.
하고 싶었던 미술공부는
눈치를 정말 많이 보면서 했었다.
"돈이 많이 드니까"
미술 재료 하나 사는데도 덜덜 떨면서 샀던 기억이 난다.
하루는 미술 선생님이
"물감 아껴 쓰지 마, 아끼면 똥 된다"
라고 말씀하셨다.
그 정도로 물감도, 미술 재료도 다 아껴 썼었다.
미술을 하고 싶지만 돈이 많이 들고
나는 생각이 너무 많았다.
그래서 미술을 좋아하고 그 누구보다 사랑했지만
미술을 제대로 하지 못했었다.
어렸을 때부터
우울증을 앓았던 것 같다.
낮아진 자존감도 어릴 때부터 있었다.
누구도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 사랑이라는 것이 나에게는 너무 어려웠다.
나에게서 사람들이 나를 사랑하지 않는 이유를 찾아내곤 했다.
"그냥" 나와 맞지 않았을 수도 있는 친구에게서도
"어쩌다" 싸운 친구에게서도
"종종" 엄마와 다투더라도
꼭 내가 문제고 내가 잘 못됐기에 그런 일이 생긴 거라
생각했었다.
모든 걸 내 탓으로 돌려야
나는 착하고 좋은 사람이 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미안하지 않아도 될 상황에서 "미안해"가 먼저 나왔고,
제대로 사과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 "물질"로 사과를 했으며
잘 못된 것을 바로 고치지 못하며 성장해 온 것 같다.
그러면서 사람들에게 사랑받으려고 노력했다.
인정받고 싶었던 것 같다.
그래서 반장을 하면서
"명예"가 주는 사랑에 빠지기도 했었다.
사람들은 지위가 있으면 그 위주로 사람들이
몰린다는 것을
알게 된 후로
반장을 도맡아서 했었다.
일이 힘들어도 상관없었다.
일은 시간을 더 투자하면 되는 거였고,
내가 더 잘하고 열심히 하면 사람들이 나를 봐주고 사랑해 줄 거라
나는 그렇게 믿었던 것 같다.
안에서 받지 못한 사랑을 밖에서 요구했던 것 같다.
이렇게 나는 한없이 부족하고 낮은 사람이었다.
물론 종종 내 낮아진 자존감을 채워주는 친구들이 있었다.
좋은 말을 해주고, 장점을 이야기해 주며
내 옆에 있어주던 친구들 덕분에
힘든 시기를 겨우 겨우
한숨 쉬어가듯 버텨온 것 같다.
내 친구가 말했다
"가장 힘들 때 힘이 되는 건 사랑하는 것이 있다는 거"라고
그 친구는 덕질을 하며 자신의 힘든 일을 버텼다고 했다.
나는 힘든 일을
나의 노동으로, 열심히 하는 모습으로
올바른 모습으로 보여줌으로써
"사랑받기 위해" 노력했다.
더 많은 사람들이 나를 칭찬해 주면,
더 많은 사람들이 나를 알아봐 주면,
더 많은 사람들이 나를 사랑해 주면,
그러면 나는 자존감이 올라가지 않을까?
참 어리석은 생각이었다.
자존감은 스스로 높여야 하는 것인데,
외부에서 나는 그걸 찾고 있었다.
밖에서 무언가를 찾다 보면
지치고 돌아오는 밤들이 많다.
나를 아껴주는 마음이 없다는 건
점점 더 짙어졌다.
그리고 나에 대해 생각하는 시간도 많이 가졌지만
나에 대한 시간을 갖는 것과 나를 사랑하는 시간은 조금 달랐다.
여러 사건들이 있었고
그 사건들로 나는 더 진흙 같은 바닥에서 허우적거릴 뿐
나를 사랑하고 세우지는 못 했었다.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이야기가
가장 힘들고 불행하다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 이야기보다
내 이야기가 보통은 가장 슬프다
직접적인 주인공이라서 그런가?
당사자의 피해와 상처는
그 누구도 헤아릴 수 없어서 인가?
나의 어두운 그늘에서 벗어나는 건 굉장히 힘든 일이었다.
남들에게는 별일 아닌 일들도
나에게는 큰 일처럼 다가오곤 했으니깐 말이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바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아르바이트는 투잡도 하고 쓰리잡도 했었다.
정말 열심히 일했다.
돈이 여유로웠으면 했었다.
학교를 다니면서도 틈틈이 일을 하고
금토일은 새벽까지 일을 하면서
돈을 벌었었다.
그래도 내 손에 쥐어지는 건 100만 원이 안 되는 돈이었다
67만 원에서 73만 원 정도 쥐어지는 돈에
이것저것 빼면 정말 쓸 돈이 없었다.
그래도 열심히 생활했다.
과대표도 하면서 학점 관리를 하고,
학교 생활도 열심히 하고 운동도 하고 알바도 하고
뭐든 열심히 했다.
그렇게 학교와 연계된 회사에 첫 취직을 했을 때,
다른 친구들보다 조금 더 연봉이 높은 곳으로 취업하게 되었다.
연봉 따라 취업을 한 것도 맞았다.
내 꿈? 내가 하고 싶은 일? 그것은
돈을 벌다 보면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나의 오만한 생각이었다.
일을 하면서 더 공부를 할걸
돈 때문에 못 간 유학이 눈앞에 아른거리고
아깝게 떨어진 편입이 아른거렸다.
일을 해서 돈은 벌지만
학자금대출을 갚아야 해서, 돈을 조금이라도 모아야 해서
나는 돈을 쓰는 것보다 모으고 아꼈다.
여행 한번 가지 못하고
월차 한번 제대로 쓰지 못하고
첫 회사를 퇴사하게 되었다.
주변에서 미래를 위해 투자하라고 밀어서
귀 얇은 나는 또 유학이란 꿈에 환상을 가지며
그만두게 되었다.
유학 SVA에서 추천서를 써준다는 이유 하나였는데,
결국엔 가진 못했다.
워낙에 학비도 비싼 학교 고, 준비하는데 돈도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가장 후회하는 일 중 하나다.
만약에 만약에
내가 유학을 갔더라면
지금 삶은 달라져있을까?
유학의 꿈을 접고
다른 꿈을 꾸었던 것은 광고 쪽이었다.
한창 광고천재 이제석 님의 영향력을 받기도 했다.
광고 쪽으로 가서 크리에이티브한 하나의 "예술"에 몸을 담그면
나의 무언가를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렇게 광고 쪽을 공부하고,
다음 회사를 들어갔고
광고 회사에서 3개월 동안 손에 꼽을 정도로 쉬며
주말 포함 6주 동안 한 번도 쉬지 못한 적도 있었다.
그러면서 몸에 병이 났고,
음식만 먹으면 토를 했다.
급격하게 살이 빠지면서 13kg이 빠지면서
몸이 너무 안 좋아
병원에 갔더니, 큰 병원에 가라고 했다.
다른 병원에 가도 똑같이 큰 병원으로 가라고 했다.
큰 병원에 가보니 병원에서
유착현상이 심해서
장기들이 염증에 눌어붙어있다고 하고
골반에 염증수가 차서 염증들 때문에 걷는 게 힘들었을 거라고 했다.
병원에서 진단을 받고
3개월 진료를 받으며 회사를 쉬었다.
그리고 회사로 돌아갔다.
다른 사람들이 왜 다시 돌아가냐고 했지만
아직 1년을 다니지 않았던 나는
회사에 1년도 버티지 못한 사람으로 남고 싶지 않았다.
아픈 몸으로 회사를 악착같이 버텼지만,
결국 1년 채 되지 않아 병이 재발해 그만두게 되었다.
그리고 회사에서 나가는 분 따라 간 회사에서는
내가 입사하는 것에 대해 이야기가 제대로 되지 않을 채
나를 데려간 사람과 회사 대표님의 입장차이로
나는 낙동강 오리알이 돼버렸었다.
1달 넘게 일한 것에 갑작스러운 상황이 되어버렸고,
턱없이 부족한 급여 문제로
다른 회사로 이직하게 되었다.
그런데 그 회사도 큰 문제가 있었었다.
나에게 세후 얼마를 주겠다는 약속을 하고 데려간 회사였는데,
스타트업에 이것저것 문제가 많았었다.
결국 나에게 돈을 주지 않고
일은 일대로 다 시키며
고용노동부까지 가게 되었었다.
회사가 나랑 맞지 않나? 싶었다.
가는 회사마다 이상했고,
가는 회사마다 평탄한 생활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 간 회사는 꽤 큰 회사였는데
이 회사에서도 스카우트 제안으로 들어가게 되었었다.
그리고 열심히 한만큼 사람들에게 인정도 많이 받았지만,
그만큼 시기질투도 많이 받았다.
결국 1년 3개월이라는 시간을
상사의 직장 내 괴롭힘과 함께
끝을 내렸다.
정말 나는 회사랑 맞지 않나?
내가 열심히 하면 안 되는 건가?
나는 왜 이렇게 실패만 겪을까?
다른 사람들은 앞으로 나아가기만 하는데,
나는 왜 이렇게 무너지기만 하는 걸까
이런저런 생각들이 정말 많이 들었었다.
그리고 대기업에 입사하게 되었었는데,
그곳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회사에 잘 적응하지 못했다.
이렇게 회사들을 다니다 보니
회사를 다니는 게 맞나 싶었다.
회사를 다시 다닐 생각을 하니 겁부터 났었다.
하지만 그래도 마지막으로
아는 분이 스카우트 제안을 해주셔서
그곳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거기서 처음엔 잘 맞춰드리고
잘 일 했다고 생각했는데,
공황이 오면서 회사 업무가 조금 힘들어졌었다.
그리고
상사분이 나는 '당연히' 휴지를 가지고 오고
본인이 이야기하면 웃어야 하는
그런 직원으로 바라보았다.
그게 몹시 힘들었다.
항상 내가 웃고 밝으면 사람들은 처음엔 좋아했다.
하지만 그게 나중엔 독으로 돌아왔다.
나는 그래서 내가 웃으면 안 되는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언제나 그렇게 느껴왔다.
회사에서는 적당한 선을,
내 적당한 웃음을
거리를 두는데도
내가 밝은 모습을 보이기라도 하면
그것이 꼬투리가 되는 것 같았다.
참 나는 그게 슬펐다.
난 함부로 웃으면 안 되는 사람이 된 것 같아서
속상했었다.
이렇게 일들도 힘든데
사랑은 더 힘들었다.
친구문제들은 더 더 힘들었다.
원래 인간관계가 가장 어렵다고들 하지 않는가.
나에겐 늘 쉬운 것이 없었었다.
그래서 나에게 공황이 찾아오고 우울증이 깊숙이 왔나
생각이 들었다.
공황은 제대로 웃지 못하는 나에게 찾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