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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슈기 Sep 02. 2024

03. 약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약을 한번 먹어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

.

나에게는 조금 다시 나약해지는 순간이었다.

약을 꼭 먹어야 하는 걸까?

그냥 괜찮아지는 경우는 없는 걸까?

왠지 내가 버티지 못한 낙오자 같았다.


우선 선생님은 잘 왔다고 했다.

공황장애는 약물치료로만 가능하다고 말씀해 주셨다.

갑자기 감기처럼 찾아오는 질병이기 때문에

약물로 치료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세로토닌과 도파민이 잘 나오지 않는다고 했다.

뭔가 나에게 새로운 자극이 없었었나 보다.

큰 일도 겪고 충격적인 일도 겪고

나는 늘 손 떨리는 하루하루를 보냈었다.

약을 먹으면서 조금 멍해진 감은 있었지만

조금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리곤 약을 먹으니

아침에 졸음이 너무나 쏟아져왔다.

회사에 지장을 줄 정도로 약이 셌다.

반차 쓰고 점심에 출근하기도 하고

점심까지 정신을 못 차리는 순간들도 있었다.


약을 복용한다는 거는

감기 걸렸을 때 약 먹는 것과 같다지만

나에게는 조금 달랐다.

나약함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남들 다 뛰는

100m도 뛰지 못하는 사람이 된 것 같았다.


그래도 약 먹으면 좋아진다는 말을 믿고

유튜브며 책이며 이리저리 많이 찾아본 것 같다.

공황장애 한번 앓기 시작하면 계속 앓는다던데

극복한 사람은 있는지, 괜찮아진 사람들은 있는지

정상생활을 할 수 있는지

정말 많이 찾아본 것 같다.

이대로 무너지고 싶지 않았다.

극복한 사례들이 있어서 마음을 쓸어내리면서도

공황이 오면 나는 그러지 못할 거라는 불안감과 두려움이 찾아왔다.


약을 먹으니 잠은 잘 잤다.

쓰러지듯 잠들었지만

불안은 잡을 수 없었다.

술을 많이 찾았었다.

술을 먹으면 마음이 좀 편해지는 느낌이었다.

이전에도 술을 좋아하긴 했지만

매일 한 캔에서 세 캔 씩 주 3~4회는 마신 것 같다.

그때는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걸 몰랐다.


약을 먹으면서 맥주를 마셔도 괜찮다는 선생님의 말에

"가끔" 마셔도 된다는 게 아니라 정말 "자주"마셔도 된다고

착각했다


하지만 버틸 수 없는 무언가가 있었다.

어쩌면 내가 남자친구에게 의지를 하는 것처럼

술에도 의지를 한 것이 아닌가 싶었다.


이 맘 때쯤 만나던 남자친구가 있었는데

이 남자친구와 연애를 시작하게 된 이유가

"나를 누구보다 위로해 주고 챙겨줬기 때문"이었다.

그 남자친구는 힘들어하던 나를 안아주면서

내 잘못이 아니라고 말해주었었다.

참 고마운 말이었다.

약 먹고 술 마시는 나를 챙기고

나를 위로해 주었다.


남자친구에게 또 의지하며

힘든 시간들을 견뎌내고 있었다.

약은 꾸준히 먹어주었다.

처음엔 약을 받아먹는 게 충격이었지만

점차 익숙해졌고,

약이 없으면 잠을 못 자게 되었다.

약을 먹어도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잘 안 쉬어지고 악몽을 꾸고 많이 힘들었다.

그래서 선생님이 약을 늘리자고 했고

점점 늘어나는 약에

나는 점점 괜찮아질 거라는 믿음으로 나아갔다.

실제로 약을 먹으면 괜찮은 기분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미묘하게 내가 멍해지고

멍청해졌다고

(실제로 누군가가 나에게 한말이었다)

하기도 했지만

나는 내 공황증상이 없었기에 괜찮아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저녁약을 먹지 않으면 잠을 못 잤다.

잠을 못 자고 다음날 공황이 심하게 왔다.


사람들 앞에서 쓰러질 것 같고

과호흡이 오고

눈물이 나고

너무 힘들었다.


이렇게 힘든 나를 받아준 것도 그 남자친구 었다.

지금도 고맙게 생각한다.

그 친구가 아니었음 그때의 힘듬을 버티지 못했을 거다.

약을 먹으면 괜찮았다.

약을 먹지 않으면 다음날 공황이 심하게 왔다.

그러면서 나는 점점 더 불안해졌다.


이제 일생생활 못하는 거 아니야?

이제 약 없이 못 사는 거 아니야?

평생 약 먹으면 어떡하지?


불안과 걱정이 나를 좀먹기 시작했다.

약을 먹으면 괜찮다는 건

약을 먹지 않으면 괜찮지 않다는 뜻 같았다.

공황장애 극복 후기들을 보면

약도 점점 줄여나가고

정상생활을 할 수 있다고들 쓰여있고

그렇다고 말들은 했지만

그게 내 이야기일 거라고 와닿지는 않았다.

그렇게 하루하루 공황과 불안 우울에 시달리며 지냈다.

겉으로는 티를 많이 안 냈지만,

즐거운 척 사람들 앞에선 웃어 보였지만

사람들 만나는 것도 힘들고 지쳤었다.

울컥울컥 했었다

그렇게 약과 남자친구에게 의존하던 나에게

청천벽력 같은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남자친구가 싸우고 잠수를 탔는데

나를 차단한 것이었다.

나도 내가 상황이 힘들어

견디기 힘들어서 신경을 많이 못썼는데

어느 순간 나를 차단하고

차단한 이유가 새 여자친구를 만나서였다.

그렇게 환승이별을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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