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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슈기 Sep 16. 2024

05. 나는 극복할 수 없을 거야

공황장애는 점점 더 심해져 갔다.

이별을 하고 나서

내가 얼마나 그 친구에게 의지를 했었는지 깨달았다.

공황이 왔을 때 더 느꼈다.


물론 헤어질 이유는 충분했다.

그래도 나에겐 괜찮다고 말해줄 누군가가 필요했다.

의존은 약으로 갔다.

혼자 병원에 가서

약을 늘려서 받아왔다.

증상이 좋아지지 않아서였다.

병원에 갈 때마다 선생님께 물어봤다.

"저 정말 좋아질 수 있나요?"

선생님은 좋아질 거라고 말해주셨다.

하지만 늘어가는 약봉지와

불안함과 걱정은

나를 잡아먹었다.


파도처럼 나를 덮었다.

약이 없으면 다음날 공황이 심하게 왔다.

그게 너무 두려워서 약을 꼭 먹고 잤다.

약이 없으면 버틸 수 없었다.

이런 내가 극복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조차 하지 못했었다.

오히려 극복해도 또 반복되면 어떡하지가 나를 지배했다.

파도는 나의 이불이 되었고

불안은 나의 베개가 되어 나를 감쌌다.

머리에 떠나지 않는 불안과 우울,

그리고 나를 덮는 깊은 생각들

매일 나를 찾아와 감미롭지 않은 자장가를 불러주곤 했다.


병원에 갈 때

좋아지다가 다시 안 좋아지고

약을 늘리고

약을 늘리고

나는 약에 의지하고


심장이 빨리 뛰면 너무 불안해졌다.

또 공황이 오는 건가?

심박수가 조금만이라도 높아지면

불안해서

바보같이 들리겠지만 애플워치도 샀다

쿵. 쿵. 쿵

이 소리가 나에게는

쿵쿵쿵

으로 들렸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소리였다

쿵쿵쿵

언제 공황이 올지 모르니 불안했다.

12월 부산에 일이 있어서 3박 4일로 출장을 간 적이 있었다.

3박 4일 동안 2층, 3층에서

떨어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쿵쿵쿵

심장이 빨리 뛰었다.

'떨어지면 바로 죽을까?'

그리고 일적으로 스트레스받아서 약을 이틀 치를 먹어버렸다.

그런데도 잠을 잘 수 없었다.

심지어 약을 두 개나 먹어버리는 바람에

마지막날 약이 모자랐었다.

그렇게 마지막날은 밤을 뜬눈으로 새울 수밖에 없었다.

쿵쿵쿵

쿵쿵쿵

쿵쿵쿵

.

.

머리가 핑 돌았다.

속이 뒤틀렸다.

점심을 먹었는데 속이 아파서 약을 먹었다.

토할꺼같은 기분이 들었고,

쓰러질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비행기를 타기 직전

화장실로가

다 속을 비워내고

내 몸 안에 있는 물도 비워냈다.

자그마한 화장실 한 칸에서

엉엉 울었다.

그러곤 괜찮지 않은 마음을 움켜쥐고

괜찮은 척 화장실 밖으로 나왔다.


사람들 눈을 쳐다볼 수 없었다.

아무렇지 않은 척하고는 있지만

허공을 바라보았다.

다행히 아빠가 데리러 와주셨다.

공항에서 집까지 오는 약 30분 거리를

운전하는 아빠의 옆에서

내 안에 쌓여있던 짜디짠 물을 쏟아냈다.

봉투를 입에 대고 숨을 쉬었다.

봉투가 부풀어 오를 때 내 검은 감정을 불어넣고

다시 내 안으로 넣는 기분이었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한참을 울고

약을 한꺼번에 먹고

잠에 들기를 기다리고 기다렸다.

그렇게 잠에 겨우 들었었다.

.

.

지금 생각해 보면 스트레스 때문에 더 그랬던 것 같다.

부산에 가기 전부터 가기까지의

스트레스

부담감

억압감

뭔지 뭐를 불안감

나는 약을 먹는데도 그랬다.


내가 공황장애가 심하다고 다시 한번 느낀 순간이었다.

나는 공황장애와 우울증을 앓았고

나는 극복할 수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극복할 수 없을 거라

또 생각했다.


나는 정말 좋아질 수 있을까?

여전히 높은 곳만 가면 뛰어내리고 싶고

스트레스를 받으면 공황이 오고

잠을 못 자거나 약을 먹지 않으면

다음날 공황이 오는 이런 내가

극복할 수 있는 문제일까?


죽고 싶다고 드는 생각은 언제까지 해야 하는 걸까?

생각을 참 많이 했었다.


일하는 것도 눈치 보이면서 잘하지 못했고

이걸 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잘 모르겠었다.


물론 일을 잠깐 쉬면 또 잠시 괜찮아지는 듯했다.

이게 또 문제가 되었다.

일이 끝나고 잠시 쉬면 괜찮은 줄 안 내가

새로운 일을 받아버려서

나를 괴롭혔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공황과 우울증이 있는 상태에서 돈을 쫓아갔었다.

나를 회복할 시간을 주지도 않은 채

돈이라는 물질에 손을 뻗으며 달려가고 있었다.

상처투성이인 채로


같이 일하는 분이 쉬라고 말을 했을 때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동시에 부담감이 내려앉았다.

부담감을 가득 안은 채 끌고 가던 내 몸뚱이는

쉬면서도 불안해했다.

무언가 해야 할 것만 같았다.

불안이 야기한 일들이었다.


아는 분이 교회를 가자고 했다.

자신도 왜 사는지 몰랐을 때

하나님을 만나고 의미를 찾고 좋아졌다고 했다.

공황과 우울로 치덕치덕 붙어있는 나는

교회조차 갈 수 없었다,

사람 만나는 게 두려웠다.


사람들을 만나면 내가 내가 아닌 것 같은 기분이었다.

어색한 자리에 앉은 광대 같았다.


공황과 우울증은

나를 잃어가게 만들었다.

사람들을 보면 울컥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쏟아질 것 같고

일하는 게 벅차고

사람들의 말을 못 알아듣겠었었다.

마치 외국인들의 파티에 초대된 불청객 같았다.

                     

같이 일하는 사람 중 한 명이

나에게 왜 이렇게 바보가 됐냐고 말했다.

마치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 취급을 했다.

나는 거기에 또 쳇바퀴 돌리듯

열심히 정상범주까지 올라가려고 달리고 달렸다.

경주마 같았다.


나 자신은 보지도 못하고 달리기만 하는 경주마,

사람들을 쫓아가려고 발버둥 치는 경주마,

달콤한 각설탕을 먹으려는 경주마


약을 그렇게 먹고 정신과 몸이 아픈데도

나는 경주마처럼 달리기만 했다.


다 불안 때문이었다.

불안이 나를 좀먹어 아픈 나를 더 달리게 만들었다.

뛰고 달리면서 더 상처받는데

정상적인 생활을 못하면 어떡하지?

이대로 일상생활을 못하면 어떡하지?

하는 마음들이 나를 경주마처럼 달리게 만들었다.

그 마음들은 내가 극복하지 못할 거라고

무한반복적으로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런 반복적인 악순행 속에서

나는

그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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