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에게 좋은 사람이어야 했다.
그 사람
지옥같았던 공황을 겪었던 부산 출장때
일을 하면서 알게된 사람이었다.
처음엔 인사치례로 시작한 연락이
꾸준한 연락이 되고
같이 밥을 먹기로 했었다.
사람들을 만나기 힘들어했던 나는
왠지는 모르겠지만 이 약속은 지키고 싶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신기하다.
만나서 이야기를 하는데
생각보다 대화가 즐거웠다.
대화를 하다가
일찍이 가봐야 한다는 그의 말에
아쉬워 다음 약속을 잡았다.
"신촌에 맛집 있는데 같이 가요"
자연스럽게 다음 약속도 잡게 되고
두번째도 시간은 빨리 흘렀고
일찍 들어가봐야 한다는 그의 말에
아쉬움이 많이 묻어
세번째 만남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세번째 만남때 따뜻하게 손을 잡아주며
자연스럽고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주었다.
"우리 만나볼래요?"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두가지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첫번째는 설렘이였다.
두번째는 내가 괜찮을까? 였다.
공황장애와 우울증으로 헤어지고 나는 남자친구에게
새빨개진 가로선이 그어진 손목으로 힘들게 만들었었다.
이런 내가 새로운 사람을 만나도 괜찮을까?
고민이 많았다.
또 확신이 안섰다.
'만났다가 금방 헤어지면 어쩌지?'
걱정이 들었다.
"저도 너무 설레고 좋은데 아직 서로에 대해 잘 모르는 거 같아요"
첫번째 거절이었다.
사실 나는 거절이라기보단 대답을 미룬거였는데,
그는 명확한 표현으로 거절이었다고 했다.
그 다음 약속은 내가 가족여행을 갔다와서
만나기로 했었다.
여행 내내 고민했던것 같다.
공황장애 증상에 걱정하는 엄마와 언니,
약 없으면 잘 수 없는 나,
그리고 약을 안먹으면 공황이 오는 나,
이런 나를 받아 줄 수 있을까?
헤어지면 공황이 또 찾아 올텐데
내가 감당 할 수 있을까?
걱정 투성이였다.
그리고 네번째 만남에서
나는 이 사람과 오래 만나고 싶다는 이야기를
결혼이라는 단어를 선정해서 이야기를 꺼냈다.
"저는 결혼을 하고 싶은데 결혼 생각이 없어보이셔서 그게 마음에 걸려요"
"그런 이유라면 시작하지 않는게 맞는 것 같아요"
서로 아쉬움에 버스정류장에서 30분은 이야기했다.
그리고
한 번 더 생각해보고 다시 말했다.
그 사람 왈
그때 끝났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나는 정말로 진지하게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내가 공황이 있기 때문에,
내 손목에는 아직도 자국들이 남아있었기에
다시 내가 안그을거라는 자신이 없었기에
공황이 왔을때 그 사람이 실망할까봐
정말 많이 생각했었다.
그리고 만난 다섯번째 만남에서
내가 고민한 이유에 대해 이야기해줬다.
"저랑 만나려면 아셔야 하는게 있는데
제가 공황장애가 있어요"
"그거 감기같은거잖아요 괜찮아요"
물론 현대인들의 감기라고도 불리는
우울증과 공황,
나에게는 조금 더 심했지만
공황장애를 이해해주는 그 사람이 너무 예뻐보였다.
그 사람은 나에게 좋은 사람이길 바라는 마음으로
만나보자고 했다.
연애를 시작하고
정말 공황이 올때 옆에 있어주고
약을 챙겨주고
다정하게 대해주었다.
내가 공황장애가 있다는것에 확실히 인지하고
많이 찾아봤다고 했다.
그것만으로도 나에겐 큰 감동이었다.
물론 데이트가 사람 많은데는 힘들고
데이트 중간 중간 공황이 찾아와 힘들어 하기도 했지만
나름의 추억들을 많이 쌓았었다.
남자친구와 처음 싸운건
네번째 만남때 이야기 나왔던
"결혼 문제" 였다.
남자친구는 합리적인 이유가 있는 비혼주의자다.
그런데 나는 불안을 품고 살아 "안정적"인걸 원하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결혼을 원해했었다.
남자친구는
"결혼시장이라는 것도 시기가 있는데
그 시간을 빼앗고 싶지 않아요
결혼을 하고 싶다면 지금 헤어지는게 맞는 것 같아요"
라고 말했다.
나는 헤어지고 싶지 않았다 .
헤어짐을 말하는 순간
불안과 공포가 나를 덮쳤다.
공황이 찾아왔다.
남자친구의 이야기가 일리가 있었다.
하지만 나에게 스며들듯 소중해진 그 사람을
떠나 보낼 만큼 결혼이 중대한 요소는 아니었던것 같다.
공황이 좀 괜찮아지고 말했다.
"결혼 안 해도 괜찮아요
근데 이렇게 헤어지고 싶지는 않아요"라고
이미 나에게 좋은 사람인 이 사람과 더 즐거운 추억을 만들고 싶었다.
결혼보다 나는 그게 더 중요했다.
결혼의 사건은 일단락 되었고,
우리는 다시 행복하고 알콩달콩한 커플이 되었다.
행복한 추억을 쌓아가는데 많은 중점을 두었었다.
그는 공황과 우울증으로 힘들어하면
바로 전화해주고, 달려와주고, 안아주었다
병원도 바꿔보자고도 말해주고
공황과 우울증을 치료하는데
정말 많은 도움을 주었다.
하지만 나는 전혀 괜찮아지지 않았다.
약을 먹는데도 잠에서 깨는 횟수가 늘었었다.
잠이 잘 안오기도 했었다.
그러면서 술 먹는 횟수가 점점 늘었었다.
양도 늘었었다.
맥주한캔 까면 4캔은 기본으로 마시고
기절할때까지 술 마시는 걸 멈추지 못하고
술 안마시면 잠 안온다고 하면서
마시는 술의 양은 꽤나 됐었다.
우울함에 마셨던것도 있었던것 같다.
그리곤 필름은 언제나 끊겼었다.
그렇게 나는 점점
자기파괴적인 모습들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마치
새빨개진 내 손목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