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그러려고 그런 게 아니라

by 금은달

몇 달 전에 서명했던 확인서에 문제가 생겼다. 감사실에서는 이것도 몰랐냐며 김 빠진 소리를 내었다.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계장님, 과장님도 다 아시는 내용인데요.'

했다.

감사실 직원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나를 질책하기보다는 안쓰럽다는 말투로 이번 일은 그럭저럭 넘어갈 것 같지만 다음에는 좀 더 명확한 증빙을 확인하고 서명을 해야 한다고 했다.

'어찌 됐건 문제 생기면 담당자 책임이니까요 아무도 믿지 말고 본인만 믿으세요.'

그러고 나서 통화가 끊어졌다.


첫 회사도 아니고 처음 겪는 낙동강 오리알 신세도 아니었지만 수화기를 내려놓고 나니 가슴에서 무언가 울컥 올라왔다. 조용히 일어나 화장실에 비어있는 칸으로 가 문을 닫으니 막혔던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쉼 없이 눈물이 흐르지만 어디가 얼마나 슬픈 건지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실체는 알 수 없지만 나은 줄 알았던 상처를 또 벌어지게 하였다. 차가운 물로 세수를 하고 나서 거울 속의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왜 여전히 아플까, 왜 이깟 일로 또 울고만 것일까.


어쩌면 사람은 절대 나을 수 없는 상처를 하나쯤은 가지고 사는 것이 아닐까. 상처라고 다 똑같이 아물고 새 살이 돋고 흉으로 남는 것이 아니라 무슨 짓을 해도 여전히 아프고 여전히 쓰린 그런 지독한 상처도 있는 것이 아닐까. 그래서 사람의 마음은 본디 연하고 부드럽게 만들어진 것이지 돌처럼 굳세고 단단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 했다. 마음은 원래 상처가 잘 나게끔 만들어진 것이니 다치지 않으려고 너무 가드를 올리고 살 필요도, 다치지 않았다며 너무 강한 체 할 필요도 없다. 누구의 마음인들 이렇게 쉽게 무너져 내리니까.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사람을 믿지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