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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면의 밤

by 금은달

모든 것들이 문제고 불안이고 요란스럽게 덜그럭거린다.

평안하다는 것이 일종의 마음의 상태이고 간단히 말해 일체유심조라면, 우리는 포탄이 떨어지고 아무렇지 않게 팔다리가 잘리는 지옥에서도 마음만 먹으면 천국보다 평화로울 수 있다. 그렇게 잘만 여유로웠던 인간들은 아마 적들의 총알받이가 되었거나 무심히 지뢰에 날아가 버렸거나 그것도 아니면 그냥 굶어 죽었을 것이다. 불안하지 않았던 인간들은 적자생존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고, 살아남은 인간들은 대부분 예민하고 쉽게 긴장하고 능숙하게 도망치는 개체들이라는 것이 합리적이다.

콘크리트 바닥에 살든 사바나 정글에 살든 방심하는 것을 죄악처럼 느끼는 인간들이 살아남아 지금의 인류를 구성하고 있다. 인류의 진화란 겁쟁이들의 생존일기에 불과할지도 모르겠다. 때때로 프런티어라는 돌연변이들이 나타나 세상을 좋든 나쁘든 한 번씩 뒤집어엎어버리지만 선지자들은 요절하거나 자살하거나 자신의 유전자를 남기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심지어 니체는 토리노의 말을 견디다 못해 미쳐버렸으니 말 다 했다.


희한하게도 이 미쳐 돌아가는 세상에서 발을 동동 구르면서도 살아있는 것은 어깨를 잔뜩 움츠리고 경계를 늦추지 않는 벼멸구 같은 인간들이다.

쓸데없는 생각들로 잠을 이루지 못한다. 인생 최악의 시나리오를 쓰는 데는 셰익스피어 저리 가라다. 남들처럼 멋들어지게 just kidding도 못할까. 난 왜 늘 이 모양일까. 한탄스럽게 거울을 들여다본다.

제멋대로 날뛰는 미치광이 불안 유전자가 결국 지금까지 나를 살아남게 했을지도 모른다. 무엇 하나 쉽지 않았다. 마냥 기뻐하지도 속없이 사랑하지도 못했다. 길을 걷다 잡초 한줄기에도 걸려 넘어졌다.

그래도 나는 살아있다. 희미하게 가느다랗게 존재한다. 찌그러진 그 모양대로도 충분한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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