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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대지기

by 금은달

나는 2019년에 공식적인 우울증 환자가 되었다. 비공식적으로는 언제부터 환자였는지는 모른다.


2019년에는 우울이 심해져 걸핏하면 회사에서 울기 일쑤였다. 그때 나의 별명은 수도꼭지였다. 틀기만 하면 물이 나오는 수도꼭지처럼 잠에서 깨어나 눈을 뜨면 울기 시작했다.

나는 오랜 시간 약을 먹고 상담을 받았다. 때론 종교에 심취하고 요가를 하기도 했다. 그때뿐이었다. 나아지는 것 같다는 건 망상이었다.


올해는 연초부터 심한 자살충동에 휩싸였다. 뿌옇게 겨울이 지나고 꽃이 피는 봄이 오자 자살충동은 더욱 심해졌다. 나는 매일 어떻게 죽을지 어디서 죽을지만을 생각했다. 웃긴 건 겉으로 보기에 나는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다는 것이다. 나는 밥도 잘 먹고 직장 동료들과 의미 없는 농담을 주고받으며 몇 달을 보냈다.

다음에 또 보자는 오랜 친구의 말에 웃으며 화답하면서도 '나에게 다음이 있을까' 속으로 의구심을 가졌다. 부모님은 으레 그렇듯 나의 미래를 궁금해하셨다. 결혼은 언제 할는지 집은 언제 마련할는지. 당장 내일 내가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것은 꿈도 못 꾸셨을 거다.


우울증도 만성이 되니 익숙해졌다. 나는 잘 지냈지만 항상 죽고 싶었다. 나 자신과 고요히 마주 앉는 것이 두렵다. 내 삶의 가치와 의미에 대해서 전혀 답을 할 수 없다. 어디든 시끌벅적한 곳, 화려하고 자극적이고 통합된 의미라고는 찾을 수 없는 곳. 그런 곳들에서 나의 정신과 고뇌를 모두 마비시키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는 시간이다.



병든 철학자가 되느니 건강한 백치가 되고 싶지만 인간이란 결국 자신의 방에 홀로 돌아와야 하고 죽음의 공포를 마주해야 한다. 예민한 감각이 칼날처럼 나를 찌른다. 니체가 말했다. '나는 피로 쓴 글만을 사랑한다.' 예민한 감각을 타고 태어났다는 것은 그로 인해 언제든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이고 또 유일하게 피로 글을 쓸 수 있는 자라는 뜻이다.


고통이 등대처럼 암흑을 밝힌다. 고통이 없다면 망망대해와 같은 삶에서 무엇에 의지해 길을 찾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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