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부터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 나는 지금이 쉬어야 할 때라고 느꼈지만 쉴 수가 없었다. 당장 처리해야 할 메일과 전화와 서류가 쌓여있었고 힘들게 잡은 선약은 함부로 깰 수가 없었다.
점심을 먹는 둥 마는 둥하고 혼자 몰래 화장실에 가 울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고장 난 수도꼭지처럼 줄줄줄 울고 싶었지만 울 시간도 없었다.
나는 대충 얼굴을 닦고 좋은 목소리로 전화를 걸고 받았다. 다음에 언제 식사라도 하자는 빈말도 곧잘 했다.
눈덩이처럼 쌓여있던 일을 빗자루로 조금씩 치우고 나니 화가 났다. 나는 왜 마음껏 슬퍼할 자유도 없는 걸까. 슬퍼서 아픈 게 아니라, 충분히 슬퍼하지 못해서 아프다.
어른으로 산다는 건 책임과 의무로 산다는 뜻이다. 내가 하고 싶을 때 하고, 하기 싫으면 안 하고 살 수가 없다. 생물학적인 시간이 경과해서 어른이 되었다고 하고 싶은 일을 꾹꾹 참고, 하기 싫어도 억지로 해야만 하는 건 대단한 일임과 동시에 구슬픈 일이다.
사람들은 늙고 싶지 않아 한다. Forever young 영원한 젊음을 노래하는 가사들이 넘쳐난다. 젊음에는 넘치는 에너지와 육체적 아름다움도 있지만 우리가 젊음을 그리워하는 건 아직 어른이 되지 않았을 때의 그 무모함 때문일지도 모른다.
홍해파리는 회춘하는 동물로 알려져 있다. 살기 힘든 환경이라 판단되면 성체가 다시 여러 마리의 새끼가 된다. 나도 홍해파리처럼 너무 힘든 날은 아이가 되고 싶다. 알맞은 자리에 똥만 싸도 칭찬받는 우리 집 강아지처럼 가끔은 존재하는 것만으로 사랑받는 아이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