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 정유정 「영원한 천국」을 읽고
정유정 작가의 스릴러는 항상 성공이다. 대부분 두꺼운 분량의 장편인데도 언제나 군더더기가 없고 속도감이 빠르다. 다음 장을 넘기게 하는 힘이 있다. 재미있게 읽었던 「내 인생의 스프링 캠프」, 「종의 기원」, 「28」, 「완전한 행복」, 그리고 이번 「영원한 천국」도 그랬다.
이번 작품은 작가의 말도 인상 깊었다.
욕망과 추구는 인간이 가진 특성이자 마지막까지 간직할 본성이라는 것. 그러니까 이 소설은 '견디고 맞서고 끝내 이겨내고자 하는 인간의 마지막 욕망'에 대한 이야기다. 자기 삶의 가치라 여기는 것에 대한 추구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 욕망과 추구의 기질에 나는 '야성'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 우리의 유전자에 태초의 야성이 숨 쉬고 있다는 것을. - p.523 작가의 말
「영원한 천국」뿐만 아니라 정유정 작가의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말이다. 정유정 작가의 등장인물들에겐 언제나 날 것의 야성이 있다. 음울하고 어줍은 것만 같던 경주조차도 절체절명의 순간에는 있는 줄도 몰랐던 야성을 발휘한다. 살고자 하고, 쟁취해내고자 하고, 맞서려는 인간의 본성이다. 정유정 작가는 수많은 인간 본성 중 그 찰나의 빛을 포착해내어 휘몰아치는 이야기의 구심점으로 빚어내는 재주가 있다.
책의 엔딩 이후 경주는 어떻게 되는 것일까. 해상이 빼내어오는 데 실패했으니 이제 영원히 극장 안을 떠돌게 되는 것일까. '신이 나를 조롱하는 것 같다'던 경주의 독백이 생각난다. 모르고 한 말이지만 뜻밖에도 정확한 통찰이다. 경주가 살고 있는 삶은 애초에 그렇게 설계된, 설계되지 않은 극이니까. 다만 그 극의 감독이자 세계의 신이었던 해상의 손마저 떠나 백지의 영역으로 쏘아졌으므로 더는 극이라고 할 수도 없게 되었을 뿐이다. 본인이 극장인 줄 모르며 설계된 것도 없다면 실제 인생과 다를 바 없다.
아버지와 동생, 동료, 아내마저 잃고도 혼자만 계속해서 나아가는 경주의 삶은 영원한 고난과 투쟁의 반복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천국보다는 지옥에 가까운 것 같은데, 제목을 '영원한 천국'이라 한 것은 정유정 작가의 반어법일까, 아니면 다른 의미가 있을까. 정유정 작가는 우리의 삶을 천국으로 볼까, 지옥으로 볼까?
경주의 삶이 천국인가, 지옥인가 하는 의문에 대한 답이 처음에는 '영원히 끝나지 않는다'는 점에 달려 있다고 생각했다. 끝이 없다면 뭐가 됐든 그게 바로 지옥이 아닐까 해서. 하지만 조금 더 생각해보니 애초에 천국과 지옥이라는 것은 영원을 내포한 개념이다. 그러므로 영원함의 여부로 둘을 구분지을 수는 없을 것이다. 삶이 천국이라면 영원한 삶도 천국이고, 삶이 지옥이라면 영원한 삶도 지옥이 아닐까. 실제로 작중에서는 수많은 정재계의 유명 인사들이 영원히 살겠다는 목적만으로 가진 모든 것을 뒤로 하고 롤라로 이주했다. 늘 그랬듯이 누군가에게는 삶이 천국이고, 누군가에게는 지옥인가 보다. 경주는 지금까지는 지옥 같았는데, 엔딩 이후로는 본인이 바랐던 대로 뭔가 달라질 수 있을까.
스토리도 탄탄하고 몰입력 있는 데다 삶의 의미에 대해 물음을 던지는 작품이다. '롤라'라는 SF적 요소를 가미하여 더욱 생각을 깊어지게 한다. (그러고 보니 '롤라'라는 이름에는 무슨 뜻이 있을까? 검색해 봐도 잘 모르겠다.) 스릴러 장르에서 갖춰야 할 모든 덕목을 갖춘 책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