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리뷰] 성해나 「혼모노」를 읽고
2024년 젊은 작가상 수상작품집에서 「혼모노」로 성해나를 처음 읽었다. 당시 대상작이었던 「이응이응」과 함께 손꼽히게 기억에 남는 작품이었다. 그러다 박정민 배우의 추천으로 단편집 「혼모노」가 유명세를 타며 단편집으로 다시 읽어보았는데 수록된 다른 작품들도 모두 좋았다. 그래도 역시 가장 마음에 든 것은 혼모노였다.
다른 모든 예술분야와 마찬가지로 문학도 시대의 흐름을 민감하게 탈 수밖에 없는 분야다. 시대가 향하는 곳을 짚어내는 작품이 주목받는다. 그렇다고 자신만의 방향 없이 흐름을 쫓고자 한다면 성공하기 어렵다. 작가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시대의 흐름과 맞물리는 운이 따라야만 작품이 성공을 거둔다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혼모노」는 그런 작품 중 하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진짜와 가짜. 혼모노와 니세모노. 성해나는 그 둘을 극명히 대비하며, 그 둘을 가르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을 계속 던진다. '나'는 이웃집에 들어온 신애기의 등장 후로 '니세모노'로 취급받지만 작품의 말미에 이르러서는 진짜와 가짜를 구분짓는 외부의 잣대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진다. 피투성이 발로 작두를 타는, 자의로 춤추는 그를 감히 가짜라고 할 수 있을까? 과거 그는 신내림에 거부하지 못해서, 나중에는 부모의 성화에 못 이겨 작두를 탔지만 이제는 아니다. 가짜의 자리로 밀려났을 때 역설적으로 그는 진짜가 되어 굿판을 펼친다.
점점 정교해지는 AI의 발전으로 이제 진짜와 가짜의 경계가 흐려지는 시대가 왔다. 사진도 영상도 더는 믿을 것이 못 되며, 영원히 인간의 영역일 줄만 알았던 예술마저도 침범당한지 오래다. 정교한 가짜의 세계가 온 것이다. 나와 완전히 같은 가짜가 있다면 진짜는 무엇인가. 나를 나로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시대가 안겨준 물음을 「혼모노」가 짚어낸다.
작품이 가진 메세지의 탁월함과 별개로도 잘 짜인 작품이다. 혼모노, 니세모노를 운운하는 장수할멈의 말투도 맛깔지고, MZ무당 신애기의 오락가락하는 모습(신이 들렸을 때와 그렇지 않을 때)과 딸뻘 되는 신애기에 휘둘리는 나이든 박수무당 주인공의 치열하고 슬픈 경쟁의식도 재미있다. 특히 마지막 클라이막스 장면이 강렬하여 작품 전체를 끌어올리는 느낌을 받았다. 주인공이 초대받지 않은 굿판에 짐을 바리바리 싸들고 불청객으로 등장하며 고조되던 긴장감은 신애기와 경쟁하듯 작두춤을 추며 폭발한다. 작두에 베이고 칼에 베여 피를 흘리면서도 멈추지 않는 춤과 악사들이 만들어내는 귀가 쨍한 음악소리까지 생생하다. 마치 굿판에 함께 발을 들인 것 같은 현장감이다. 지칠 기미가 없던 신애기가 결국 주춤하는 장면에서는 짜릿한 해방감마저 느껴진다. 수록된 다른 단편들은 결이 조금 다르다고 느껴졌지만 「혼모노」만은 가히 '넷플릭스 왜 보냐'는 평이 지나치지 않는, '재미'가 있는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