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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년 만에 부산을 방문했다

by 자향자

얼마 전 이십 년 만에 부산으로 '관외출장'을 다녀올 일이 있었다. 낭만의 도시 부산. 이곳은 내게 어떤 곳일까? 20살이 갓 되자마자 친구들과 떠난 내 인생 첫 여행지다. 그런 내가 19년 만에 이곳 부산을 다시 찾게 됐다.



한편, 관외출장길에 오른 건 꽤 오랜만이다. 관외출장. 일반인에게 단어부터 생소하다. 사실 별건 없다. 공무원 자신이 속한 지자체 밖으로 출장을 가게 되면 이를 '관외출장'이라고 부른다. (반대로 지역 내의 출장은 '관내 출장'이라 부른다.)



5년 전, 세종특별시로 정책 강의를 하나 들으러 기차를 타고 관외출장을 다녀온 이후 꽤 오랜만에 출장길에 오르게 됐다. 이날 나는 왜 부산이라는 먼 곳까지 출장으로 가게 됐을까. 여기에 또 하나의 사연이 있다.



우리 팀 내에서 추진 중인 업무 하나가 다른 팀의 업무와 얽히게 되어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출장길에 오르게 된 배경이 있었다. 내가 출장길에 오르게 된 건 순전히 팀장 덕분이었다. 주 업무를 담당하는 팀을 서포트하기 위해 우리 팀장도 간다고 하니 실무자 입장에서 다른 왕도는 없었다. 오히려 가는 게 마음이 더 편했다.



조금 황당했던 건, 주 업무를 담당하는 실무자는 정작 출장길에 오르지 않는데, 이를 서포트하는 우리 팀의 팀장 그리고 실무자인 나는 출장길에 오르는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볼멘소리를 한다고 사실 달라질 건 없다.



기왕 벌어진 상황을 최대한 즐기기로 했다. 오랜만에 바깥공기를 쐬러 가는 일에 일말의 설렘도 있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기차 안에서 밀린 독서를 할 수 있음에 감사한 부분도 있었으니 말이다. 촌놈이 오랜만에 KTX를 탈이라도 생겼으니, 꽤 괜찮다고 생각했다.



출장의 목적을 무엇이라 생각하는가? 상대방과 협의하면서 해결책을 찾아가는 것이 아마 주된 목적일 것이다. 이를 위해 선행되어야 하는 일 하나가 있다. 바로 문제 해결을 위해 문제에 대해 사전에 충분한 이해가 바탕이 되어야 한다는 것.



출장길에 오르기 전, 주된 업무를 맡고 있는 팀의 요청사항을 최대한 반영해 브리핑 자료를 만들어 상대방 측에 전달했다고 들었다. 당일 협상 테이블에 앉을 상대측은 미리 자료를 훑어보고 협상 테이블에 앉는 것이 내 기준의 상식이다.



그런 그날, 상대방 측에서 우리에게 보여준 태도는 가관이었다. 자료는 훑어보았는지 의논을 할 생각은 있긴 한 건지, 답을 마치 정해놓은 것 마냥, 일관된 주장만 펼치는 그를 바라보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정도의 대화를 위해 이곳 부산까지 온 건가’



공들여 만든 자료는 보기나 하는 건지 횡설수설하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부산으로의 출장을 결정한 나 자신이 후회스러웠다. 정말 초라하기 짝이 없는 출장이었다. 허무했다. 이 하루를 위해서 야근을 하고, 하루를 통으로 뺐다니 이건 뭐가 잘못돼도 단단히 잘못됐다.



살아가면서 중요시 생각하는 덕목이 있다. 바로 '신의'다. 예의가 엿보이는 이에겐 최선을 예의를 밥 말아먹은 이에겐 오히려 갑절의 예의를 취하고 그 인연을 빠르게 종결짓는다. 마지막에 어버버 하면서 끝마무리를 하던 그 사람의 어쭙잖은 말투가 생각난다. (뭘 알고 말하기나 하는 건지. 풉.)



그날의 출장길에서 인생을 또다시 배웠다. ‘나는 다른 누군가에게 어떤 사람이었는가. 그리고 믿음이란 걸 줄 수 있는 사람이었던가.' 그게 아니라면 그런 사람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날 나는 회사로부터 한 발자국 더 물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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