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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자신의 은혜를 알기를 원하신다

[단고]

by trustwons


* 단고(端攷) - 옳음에 깊이 상고하다.

2. 자신의 은혜를 알기를 원하신다


삶 속에서 인간은 신(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할 때마다 신에 대한 경외심이 일어나는 것이다. 진정한 신은 자신의 은혜를 인간들이 알기를(깨닫기를) 원하신다.

(2009.10.30. 묵상)


그렇다. 인간들은 누군가에게 은혜를 받기를 바라고 있다. 하물며 어린아이도 부모나 어른들에게서 은혜를 바라고 있다. 아니 은혜라고까지는 말하지 않더라도 친절함, 베풂 등에서도 아주 조그마한 것이라도 은혜를 바라는 마음을 항상 갖고 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면, 당연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인간은 유일하게 신의 은총을 위해 태어났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다.

성경에서 살펴보면,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은 모든 것을 창조하실 때에 말씀으로 창조하셨다. 즉 빛이 있으라 하니 빛이 나타났으며, 또한 땅에 풀과 각기 종류대로 식물도 말씀하시니 그대로 되었다고 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하늘에 광명, 해와 달과 별들도 이루라 하시니 그대로 되었다고 한다. 그들로 징조와 사시와 일자와 연한을 이루도록 하셨다. 그뿐이겠는가? 물에는 생물(물고기) 그리고 하늘에는 새들로 있게 하셨다. 거기에다 바다와 하늘에 그들로 충만해라, 번성하라 명령하시니 그대로 이루었다고 한다. 거기에다 땅 위에도 육축과 짐승들로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유일하게도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는 말씀으로만 창조하시지 아니하셨다. 그분은 협력자들과 함께 인간을 만들자 하시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와 공중과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다.”(창 1:26)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창 2:7)

여기에서 우리는 깨닫게 된다. 하나님은 사람만은 유일하게 흙으로 빚져서 만드셨다는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신(하나님)은 사람이 살 곳을 만드셨는데, 에덴동산이었다. 동산이라 하니, 자그마한 동산인 줄 생각할지 모르겠다만, 그렇지 않다. 그 모든 생물들, 하늘의 새와 바다의 물고기와 땅 위에 동물들과 각종 기는 것들도 함께 하는 동산인 것이다. 그리고 거기에 사람을 두고, 또는 이끌어 살게 하셨고, 그 동산에는 신의 은혜가 충만하여서 모든 것이 충만하였다고 생각해야 할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라 사람들(아담과 여자)에게 동산을 가꾸고 다스리게 하셨다. 그 에덴동산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자세히 설명을 하셨다. 그 땅에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 좋은 나무가 나게 하셨으며, 에덴에서 발원하여 동산을 적시고 네 곳으로 흐르는 강, 비손 강, 기혼 강, 힛데겔 강, 유브라데 강이 흐르는 것을 상상해 보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모른다. 그것도 그냥 강의 흐름이 아니라 비손 강에는 금이 있다 하니, 그것도 정금으로 되어있다는 것이다. 기혼 강은 흐르는 모양이, 구스 땅에 둘렸다고 한다. 그렇게 아름다운 경관을 이룬 곳에 그 사람들로 살게 하셨다는 것이 아닌가? 그뿐만이 아니라, 동산에 각종 나무의 실과도 풍만하여서 그지 수고하여 먹을 것을 찾아다니지 않아도 되고, 각종 과실이어서 지루하지도 않으며, 골고루 즐길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졌음을 말이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에덴동산에 있는 모든 생물, 각 생물을 일컫는 이름들을 아담은 지었으니, 이를 보고 하나님은 만족하셨기에 그에게 배필이 될 사람, 즉 여자를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고 그의 갈빗대 하나를 취하여 여자를 만드시고 아담에게로 이끌었다고 한다. 여기서 ‘이끌다’라는 어원은 강제로 끌어감이 아니라 그녀로 하여금 아담에게로 오도록 하신 것이다. 여기서 또 확인할 것은, 창조자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것들은 스스로 행하도록 창조하셨다는 것이다. 즉 기계처럼, 노예처럼 창조하신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천지를 창조하신 신, 하나님의 이름은 여호와(야훼, YHWH, Jehovah), 옐로하(Hwla), 엘로힘(myhla) - 스스로 있는 자, 즉 하느님, 하나님이시게, 그의 속성에 따라 만물도 스스로 행하도록 창조하셨고, 특히 인간에게는 스스로 행할 뿐만 아니라 스스로 판단하고 결정할 수 있는 자유의지를 주셨던 것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사람에게는 소통하는 통로를 주셨으며, 이 통로로 은혜를 베푸신다는 것이다. 물론 천지만물들에게도 은혜로 다스리기는 하지만, 그들은 깨달음이 없고, 즉 인지능력이 없으며, 섭리에 따라 순응하는 존재로 창조되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유일하게도 사람에게는 깨달음이 있는 것이다. 그렇게 때문에 사람이 스스로 하나님의 은혜를 알기를 바라시며, 또한 기다리신다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은 지혜로운 자나 미련한 자라도 차별하지 아니하시며, 모두에게 은혜를 베푸신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은혜를 깨닫는 자는 자신을 지으신 하나님에 대하여 경외하는 마음이 자라게 되지만, 그렇지 않은 자는 결단코 하나님에 대하여 경외하는 마음이 자라지 못하는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셔서 이미 일어날 일과 될 일을 미리 아시기에 은혜를 깨닫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인내하시는 분이시다. 그래서 하나님은 자신을 사람에게 말하기를 ‘나는 인내하는 하나님이시다.’라고 하셨던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에게도 ‘너희는 나를 통하여 인내함을 배우라’고 하셨다. 그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나는 온유하다’라고 하시면서, 사람에게도 ‘너희도 내가 온유하니 온유하여라’고 말하셨다.

여기서 놀라운 것은, ‘인내(忍耐)’와 ‘온유(溫柔)’의 성품, 마음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는가? 하나님이 사람들의 행실을 보시고 인내하심 같이 인간의 삶에서도 고통과 곤고함이 있음에 인내하라는 것이다. 또 인내하는 힘은 온유함에 있는 것이다. 온유란 무엇인가? 선한 마음을 유지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성경에서 온유에 대하여 어찌 말하는지 보자.

“오직 온유한 자는 땅을 차지하며, 풍부한 화평으로 즐기리로다.”(시편 37:11)

“곧 하나님이 땅의 모든 온유한 자를 구원하시려고 판단하러 일어나신 때 에로다.”(시편 76:9)

“온유한 자가 이를 보고 기뻐하나니, 하나님을 찾는 너희들아 너희 마음을 소생케 할지어다.”(시편 69:32)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마태 5:5)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에베소 4:2,3)

“하나님의 위로와 네게 온유하게 하시는 말씀을 네가 어찌 작다 하느냐?”(욥 15:11)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마태 11:29)

특히 예수는 자신을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다고 하셨다. 그러시기에 예수는 끝까지 하나님의 뜻을 잊지 아니하시고 십자가에 죽음을 피하지 아니하셨던 것이다. 온유한 마음은 인내하는 힘을 갖게 한다. 또한 온유함은 선함을 지키게 한다. 특히 온유함에는 하나님이 그리하셨듯이, 인간의 존귀와 자유를 빼앗지 아니한다는 것이다. 즉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것에서 존귀함을 온유한 마음은 알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는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다’고 하시며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고 하셨다. 즉 온유한 마음은 인내를, 겸손을, 선함을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람들이 자신의 은혜를 알고 돌아오기를 기다리신다는 것이다. 어떠한 사람에게서 말인가? 바로 온유한 마음을 품는 사람을 말이다. 그런 사람은, 온유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고통과 역경을 잘 견디게 되고, 선한 마음을 잃지 않으며, 특히 사람들에게서 존귀하고 자유를 빼앗지 아니한다는 것이다. 세상에 악한 인간을 보아라! 그들은 무엇보다 인내하지를 못한다. 곧 화를 내거나 분노하거나 증오하며, 곧바로 악한 생각을 하고 행동을 하는 것을 보지 않느냐? 그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며, 알려고도 하지 않으며, 오히려 증오하고 더욱 악해질 뿐이다. 왜? 그들은 스스로 두렵고 불안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의 말씀대로 온유한 사람은 쉼을 얻으며,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고 했다.

이제 아는가? 하늘에 계신 아버지는 은혜를 베푸시면서, 이러한 온유한 자녀를 찾으시며, 돌아오기를, 깨닫게 되기를 기다리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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