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한 지 3년이 넘어갈 무렵이었다. 우리는 맞벌이 부부였고 둘 다 동물을 좋아했기에 결혼하기 전부터 언젠가는 강아지와 함께 살자는 막연한 생각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그 욕심보다 아이가 우선이었다. 우선은 아이를 낳고 아이가 어느 정도 자라서 강아지에 대한 인식이 있을 때 강아지를 데려오고 싶었다. 그래야 강아지도 아이도 우리도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10년 후의 미래를 상상했을 때 아이 한 명과 강아지 한 마리와 함께 단란한 가족을 꾸리는 것이 꿈이었다.
하지만 계획과 달리 아이는 와 주지 않았고 어쩌면 우리의 미래에 아이가 없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자 강아지와 함께 살고 싶었다. 그때부터 ’ 포인 핸드‘라는 앱을 하루에도 수십 번 들여다보며 정말 할 수 있을까를 수없이 스스로 물었다. 남편은 강아지를 키워본 경험이 있었고 나는 집 안에서 반려동물을 키워본 적이 한 번도 없었기에 확실한 답변이 나오지 않는 한 함부로 생명을 집에 들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만약에 강아지를 키운다면 이라고 가정했을 때 떠오르는 강아지의 이미지는 하얗고 어린 남자 강아지를 키우고 싶었다. 그러다 어느 날 조건 범위에 딱 맞는 강아지를 앱에서 발견했다. 그리고 남편에게 무작정 이 아이를 만나보고 싶다고 했다.
유기견 보호소는 우리 집과 가까웠지만 그날은 하필 눈이 많이 와 도로가 마비된 날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은 한걸음에 유기견 보호소로 가주었다. 처음 가본 유기견 보호소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열악한 환경에 끝없이 늘어선 철창 속에 강아지들이 엄청 많았다. 개체 수가 많아 관리가 힘들어 보였고 악취도 심했다. 아이들이 갖고 있는 물그릇은 깨끗하지 않았다. 게다가 좁은 철창 속에 엉덩이 붙일 곳도 없이 불편해 보였다.
우리는 관리인에게 안내를 받아 더 깊숙이 들어갔다. 골목골목으로 철창을 지나 만난 그 아이는 우리를 발견한 후 끊임없이 점프하며 짖어 대고 있었다. 주변에서 들리는 다른 강아지들의 짖음과 심한 악취, 그리고 암울한 환경에 너무 혼란스러웠다. 이렇게나 수많은 강아지들이 기약 없이 여기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이 너무 안 좋았다. 그리고 한참을 멍하니 서서 그 강아지와 눈을 마주쳤다. 강아지는 조금도 쉬지 않고 짖으며 점프하고 있었다.
“이 강아지 입양 문의가 많아요. 데려갈 거면 오늘 데려가시고 아니면 다른 분에게 입양시킬게요”
그분의 의도는 아니었겠지만 마치 마트 문 닫기 전에 주는 떨이 상품 같았다. 머리를 무언가로 강하게 얹어 맞은 듯한 충격과 귀가 떨어져 나갈 듯이 짖어 대는 녀석의 모습에 정신이 혼미했다. 그 순간 수없이 머릿속으로 생각해오던 질문을 다시 한번 나에게 던졌다. 나는 정말 강아지를 책임질 수 있을까?
그날 고민 끝에 우리는 둘이서 집으로 돌아왔다. 도저히 내 질문에 대답을 할 수가 없어서. 대답을 할 수 없다면 나 말고 좋은 사람에게 가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남편과 나는 끊임없는 대화 뒤에 강아지를 키우지 않기로 최종 결론 내렸다. 우리의 생활패턴에 강아지와 함께 할 수 없는 것이 많았고 강아지를 키우다 이별의 순간이 온다면 겪게 될 슬픔의 무게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30년 동안 다짐해 오던 결심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그 후 나는 매일같이 들여다보던 '포인 핸드'앱을 지웠고 우리는 더 이상 강아지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 우리 둘만의 시간을 더 가지고 여행을 다녔고 맛있는 음식을 먹었다. 가족 구성원의 수를 늘리고 싶었지만 마음대로 되는 건 하나도 없었다.
강아지와 함께 산다는 건 생각보다 정말 많은 책임과 준비를 해야 한다. 단순한 호기심이나 순간의 감정으로 생각해야 할 문제가 절대 아니다. 그 아이의 10년 어쩌면 그 이상을 함께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용기로도 부족하고 어려운 문제다. 이제는 인식이 많이 좋아졌지만 아직도 평생을 마당에 묶여 사는 강아지가 많고 식용이나 물건처럼 생각하고 샵에서 강아지를 구매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다. 나 하나쯤이야 라는 생각으로 강아지를 구매한다면 그 강아지 한 마리로 인해 작게는 10마리, 크게는 100마리의 견생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인간의 행동 하나로 작은 생명의 평생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면 반드시 고쳐야 하는 악행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이 소중한 만큼 이 세상에 소중하지 않은 동물은 없고 인간이 동물을 함부로 대할 권리는 당연히 없다. 강아지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어떤 동물보다도 인간에게 조건 없이 무한한 사랑을 주는 존귀한 존재다. 그 작고 소중한 존재들이 앞으로는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
비록 그때의 나는 고민 끝에 강아지를 키우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이 이 글을 읽는다면 신중하지만 행복한 결론을 내리길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