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주를 쉬고 2주 만에 주말농장으로 가는 도로를 달린다. 연휴를 맞이하여 이미 많은 사람들이 도시를 빠져나가서인지 여유롭게 도로를 달렸다. 멀리 보이는 나무와 숲들이 우선 눈에 띈다. 연한 연두색과 연분홍, 하얀색 꽃으로 수채화 물감을 칠해 놓은 것 같던 산은 어느새 완연한 초록빛으로 물들었다. 울긋불긋하던 벚꽃 가로수 길은 연두색에서 초록색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초록색 숲 사이로 하얀 아카시아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꽃향기에 취할 정도다. 이팝나무를 심어놓은 거리에서는 하얀 이팝나무가 풍년을 기원하기라도 하듯이 많이 피어서 살짝만 흔들어도 우수수 떨어질 것 같다.
지난번 주말농장을 다녀온 후 가장 궁금한 것은 겨자채였다. 농장에 도착하여 먼저 겨자채에게 달려갔다. 지난번 방문 이후 미생물농약이 효과가 있다는 것을 알고 미생물 농약을 칠까 한참을 고민했었다. 하지만 ‘농약’이라는 말 자체에 마음이 꺼려져서 미생물농약도 치지 않기로 하고 대신 식초물을 주기로 했다.
“겨자채 살았네!”
“어머. 정말 살았네. 어떻게 살았지?”
“그러게, 지난번에 봤을 때는 죽을 것 같았는데...”
“벌레를 이겨냈네. 기특하다. 겨자채야! 고마워.”
워낙 벌레들이 겨자채를 많이 먹어서 살지 못할 것 같았다. 그런데 구멍이 숭숭 뚫려 있기는 했지만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튼실하게 자랐다. 작물을 자연에 맡기는 우리의 자연주의(?) 농사법을 알아주기라도 하듯 아주 싱싱하게 자랐다. 이젠 병해충 관리를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겨자채 사이에 심은 당귀 효과인지, 식초물 효과인지 알 수는 없으나 튼실하게 자라준 겨자채에게 고마울 따름이다.
겨자채 이외의 다른 작물들도 모두 파릇파릇 잘 자라고 있었다. 모종으로 심었던 청상추(두종), 적상추, 치커리, 겨자채, 당근, 깻잎, 파, 당귀가 한 구획에서 자라고 있었다. 모든 모종들이 이제 걱정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자리를 잘 잡았다. 또 다른 구획에서는 씨를 뿌렸던 쑥갓, 열무, 근대, 당근이 새싹을 틔우고 제법 채소다운 모습을 갖추어가고 있었다. 씨 뿌리기 했던 열무는 하트 모양의 손톱만 한 크기에서 10cm 정도 자랐다. 쑥갓과 근대도 6~7cm가량 자라서 어떤 채소인지 알아볼 정도다. 당근은 손가락 크기 정도로 아직 어리지만 싹이 제법 잘 올라왔다. 작물들 모두가 자신의 건강함을 뽐내기라도 하는 양 진한 초록색을 이루고 있었다.
기온이 점점 오르면서 식물들은 더 잘 자랄 것이다. 작물로 심은 채소뿐 아니라 다른 풀들도 함께 자란다. 우리 밭에도 잘 자란 채소들 사이로 잔풀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바야흐로 식물들의 계절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상의 온갖 식물들이 쑥쑥 커가고 있다.
이제부터 농부는 열심히 일해야 한다. 열심히 일하지 않으면 풀과의 전쟁을 치를 수도 있다. 조금만 게으름을 피우면 금방 풀이 작물을 뒤덮을 것이다. 풀은 작물들보다 훨씬 생명력이 좋아서 채소들의 성장 속도를 금방 따라잡는다. 풀은 작물로 가야 할 영양분이나 햇빛과 물을 빼앗는다.
풀이 작물의 성장을 방해하니 시기적절하게 김을 매야 한다. 김매기는 잡초를 제거하는 목적도 있지만 땅을 부드럽게 하고 숨구멍을 만들어줘서 식물이 자랄 때 공기의 유통을 원활하게 해 준다. 김매기는 작물의 생육을 돕고 풍성한 수확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아무리 자연주의 농법을 추구한다고 해도 사람의 적절한 손길 없이는 채소를 수확하기 어렵다.
김매기를 잘하는 방법은 적절한 도구를 사용하는 것이다. 농기구 중에 호미는 매우 유용한 도구이다. 호미는 모종을 심거나 씨 뿌리기를 할 때 작은 구덩이를 만들어 작물을 심을 때 편리하다. 김매기 할 때도 호미만큼 유용한 농기구를 찾기 어렵다.
호미는 지난 코로나 시국에 해외 가드너에게 큰 인기를 누렸다. 미국 쇼핑몰인 아마존에서 호미가 우리나라에서 판매하는 가격의 5배인 16,000~28,000원 정도에 팔렸다고 한다. K-농기구의 편리성과 위력을 뒤늦게 알아본 것이다.
김매기의 달인은 호미를 잘 활용한다. 처음 호미를 사용해 본 사람은 어떻게 김매기를 해야 할지 모른다. 남편도 그랬다. 나는 어릴 때 농사짓는 부모님 곁에서 일손을 돕고 자랐기 때문에 호미가 익숙했지만 남편은 처음 주말농장을 시작할 때만 해도 서툴렀다. 내가 몇 번 시범을 선보이기도 했다. 지금은 호미 사용법을 터득해서 어려움 없이 잘 사용한다.
손으로 일일이 제거하기 힘든 잔풀은 호미로 땅을 살살 긁어주기만 해도 된다. 호미로 긁어낸 풀들을 모아서 버리지 않고 밭에 그대로 두어도 더 자라지 않는다. 잔풀이 다시 자란다고 해도 염려할 정도는 아니다. 풀이 좀 더 자랐을 때는 뿌리 채 뽑는 것이 좋다. 그런데 땅이 딱딱하게 굳어 있으면 풀이 뽑히지 않고 중간에 줄기만 뚝 끊어지기도 한다. 그럴 때 호미로 땅을 살짝 파서 뽑아내면 된다.
김매기는 농사지을 때 가장 많은 비용과 일손이 들고 힘이 드는 작업이다. 도시농부에게는 비용은 들지 않지만 힘이 든다. 그러나 도시농부는 그 힘든 노동을 자처한 것이니 기쁜 마음으로 해 낸다.
잔풀을 제거하고 난 후 적상추와 청상추, 치커리와 겨자채를 뜯었다. 채소들이 아직은 어리지만 워낙 잘 자라기 때문에 뜯어주는 게 좋다. 잎채소는 큰 것부터 차례로 솎아 수확을 하면 일찍부터 먹을 수가 있다. 손바닥 반절 정도밖에 되지 않는 작은 상추였지만 금방 봉지에 가득 찼다. 첫 수확이라고 할 수 있다. 저녁에 가족들과 함께 할 삼겹살 파티를 떠올리며 즐겁게 상추를 뜯었다.
씨 뿌리기 했던 채소 중에서 열무는 솎아주기를 했다. 일부는 뽑아서 빈 땅에 옮겨 심었고, 나머지 한두 줌 정도는 나물로 먹으려고 봉지에 담았다. 씨 뿌리기 채소에서 ‘솎음’은 한꺼번에 무더기로 자란 채소를 뽑아주는 것이다. 솎아주기 할 때는 튼튼하게 자란 작물은 남기고, 웃자라거나 병충해를 입은 것을 먼저 솎아내면 된다. 솎아주기는 작물에게 공간을 확보하여 햇볕과 공기를 골고루 받게 하고, 영양이 잘 흡수되도록 하여 작물의 생육을 좋게 해 준다.
솎음한 채소를 버릴 것이 아니라면 작물의 크기가 10cm 정도 자랐을 때 솎아주는 것이 좋다. 너무 작으면 옮겨 심을 때 잘 자라지 못하고, 나물로 해 먹기에도 좋지 않다. 솎아주기는 작물이 자라는 동안 3~4차례 하면 되는데, 작물에 따라 적절한 간격을 주면 된다.
솎음할 때 사람이 욕심과 미련을 내려놓지 않으면 작물이 웃자라고 약해진다. 그러니 적절한 솎음은 작물을 위해서도 사람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
사람도 너무 가까우면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것과 같다. 채소든 사람이든 적당히 거리를 두고 각자가 굳건하게 바로 서는 것이 가장 좋은 성장법이라는 이치는 같은 것 같다.
한시간 반정도 일을 하고 나니 얼굴이며 등에 땀이 흐른다. 이정도 노동은 어렵지 않지만 오월의 햇살은 따가웠다. 그래도 오월의 햇살 아래서 무럭무럭 자라는 채소를 보니 미소가 절로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