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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제의 참뜻을 깨치려는 범부에게

by 노인영

지인 중에 행정고시 수석 합격자가 있다. 그는 연수를 마친 후 통일부를 자원했다. 당시로선 뜻밖이었다. 1970~80년대는 행시에 합격한 엘리트들이 다투어 재무부에서 역량을 뽐내고 싶어 했을 때였다. 그에게 까닭을 캐묻지는 못했다. 하지만 나는 그를 '군자'라고 생각했다. 그는 차관을 마지막으로 대과 없이 정년퇴직했다.



영국 라파엘전파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의 <오디세우스와 세이렌(1891)>이다. 트로이 전쟁이 끝나고 귀향길에 오른 오디세우스 일행이 세이렌이 사는 섬을 빠져나가는 장면을 묘사했다. 세이렌(Seiren)은 경보(警報, siren)의 어원으로, 여인의 얼굴과 새 모양을 한 바다 요정이다.

세이렌은 노랫소리로 뱃사람들을 홀려 죽인다. 오디세우스는 그 고혹적인 노래를 듣지 못하도록 사전에 밀랍으로 부하들의 귀를 막도록 했다. 그림에서는 그것도 모자라 헝겊으로 선원들의 머리를 꽁꽁 싸맸다. 마녀 키르케가 알려준 방법이었다. 그러나 정작 오디세우스는 세이렌의 목소리가 궁금했다.

그는 부하들에게 자기 몸을 돛대에 묶고, 아무리 풀어 달라고 애원해도 절대 풀어주지 말 것을 당부했다. 이 점이 매우 중요하다. 오디세우스 자신도 세이렌의 마법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사실을 알고 행한 조치였다. 마침내 일행 모두 무사히 섬을 빠져나갔다. 그런데 배 앞엔 커다란 눈동자가 그려져 있다. 의미는 안 가르쳐주려고 한다. 숙제다.


그림에서 세이렌은 ≪오디세이아≫ 원전과 달리 여럿이다. 그리고 사내의 가슴을 뛰게 하는 미모도 아니다. 그래서일까? 배 중앙에서 노 젓는 선원은 난간에 앉은 세이렌이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고 있음에도 반응이 떨떠름하다. 재밌다. 하지만 이 점은 핵심이 아니다. 세이렌의 마법은 고혹적인 노랫소리에 있기 때문이다. 중세 이후에야 세이렌은 관능적인 상체를 드러낸 인어로 묘사되었다.


공자가어(孔子家語>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옛날 노나라의 한 과부가 폭풍우가 몰아쳐 집이 무너지자, 이를 피하고자 이웃에 사는 홀아비 집으로 찾아갔다. 그런데 홀아비가 문을 열어 주지 않았다. 그러자 과부가 “그대는 어찌 유하혜와 같지 않은가?’”라고 물었다. 이때 홀아비가 이렇게 답변했다.


“유하혜는 할 수 있지만, 나는 못 한다. 그러니 나는 장차 나의 하지 못함을 가지고 유하혜의 할 수 있음을 배우겠다.”


유하혜는 노나라의 현자로, ‘좌회불란(坐懷不亂, 품에 안고서도 난잡하지 않다)’ 일화로 유명하다. 어느 날 그가 추운 밤, 집이 없는 여인을 발견했다. 그녀가 동사할 것을 염려한 유하혜는 집에 데려와 자기 품에서 재웠다. 그렇게 그는 낯선 여자와 하룻밤을 지내고도 음란하지 않아 훗날 지조 있는 남자로 불렸다.

그러나 홀아비는 자신이 그만 못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아예 유혹을 피하는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 흔히 유하혜처럼 자신의 충동을 억제할 수 있는 이를 가리켜 군자라 부름에 주저가 없다. 그러나 노나라의 홀아비처럼 이기지 못하면, 피할 줄 아는 사람 역시 군자다.


돛대에 몸을 묶은 오디세우스의 지혜도 이와 같다. 범부(凡夫)여! 돈, 성, 권력 등 유혹의 늪에 빠져 자신의 자제력을 시험하려 말라. 처음부터 경계를 피하는 것도 훌륭한 대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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