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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은 통제할 수 있을 때 비로소 빛난다

by 노인영

“탐욕은, 쉽게 말해서, 좋은 것입니다. 탐욕은 정당합니다. 탐욕은 결과를 냅니다. 탐욕은 진화 정신의 정수를 보여주고, 관통하고, 포착합니다. 삶, 돈, 사랑, 지식 등 온갖 형태의 탐욕이 인간을 솟아오르게 했습니다.”


올리버 스톤 감독의 1987년 영화 <월스트리트>에서 고든 게코는 이렇게 말한다. 그가 말하는 탐욕 중 돈이 주는 즐거움은 찬란하고, 지속 가능한 것으로 상상하기 쉽다. 그래서 고생과 불안도 기꺼이 감수한다. 이런 기만이 인류에게 활력을 주고, 발전을 가져온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배가 부른 사자는 사냥을 멈춘다. 피를 쫓는 모기는 맛나 보이는 케이크에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이 영화에서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자본을 불리던 기업 사냥꾼 게코는 마지막에 결국, 대가를 치른다. 그의 몰락은 탐욕 때문이 아니라 ‘지나치게’ 탐욕스러웠기 때문이다.



에두아르 마네의 <아스파라거스 다발(1880)>

마네가 <아스파라거스 다발>을 그렸다. 이로써 그는 단순한 식재료 아스파라거스를 정물화 소재로 격상시켰다. 유대계 사업가이자 절친한 수집가 샤를 에프뤼시는 이 그림이 맘에 들었다. 그래서 약속했던 800프랑에 200프랑을 얹어 1,000프랑을 보내왔다. 당시 200프랑은 제법 큰돈이었다. 1888년, 고흐가 고갱과 아를에서 머물 때 화상(畵商)인 동생 테오가 두 사람에게 보내준 한 달 생활비가 150프랑이었다.

형편이 어려웠던 마네가 에프뤼시의 호의에 감동했다. 건강이 악화해 신경마비 증세가 진행 중이던 그는 파리 근교 뫼동에서 요양하며 가벼운 정물화를 그리며 지냈을 때였다. 이 그림도 46Ⅹ55센티미터 크기의 소품이다. 유머와 재치가 있던 마네가 다시 그림 한 점을 에프뤼시에게 보내면서 덧붙였다.


“먼저 보낸 다발에서 한 줄기가 빠져 있는 걸 미처 못 봤지 뭡니까?”


마네의 <아스파라거스 한 줄기(1880)>

돈은 교환수단일뿐이다. 가치중립적이다. 그러나 이런 경우, 돈도 멋진 인격이 된다. 마네는 이 작품을 완성한 후 3년이 지나 사망했다.


화폐는 기원전 3000년경 메소포타미아 지역 수메르 왕국에서 보리로 시작되었다. 보리는 곡식으로서 가치를 지녔기 때문에 교환 수단으로써 화폐의 출발은 무난했다. 이후 소금, 가축, 이어 조개, 금과 은 그리고 지폐로 발전했다. 오늘날에는 컴퓨터 자판에서 숫자를 치면 거래가 끝난다.

이 과정에서 신뢰는 필수적이다. 종이나 통장에 찍힌 디지털 숫자를 믿고 덜컥 쌀을, TV를, 집을 내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이런 면에서 돈은 유발 하라리가 ≪사피엔스≫에서 말했듯이 언어나 국법, 문화 코드, 신앙, 사회적 관습보다 더욱 마음이 열려 있을지 모른다. 그런데 문제만 터지면 많은 사람이 돈을 탓한다. 돈 자체는 아무런 죄의식을 느끼지 않는데.

돈은 재화와 용역을 비교, 교환하면서 권력이 되었다. 이후 같은 시간임에도 가치를 차별화했고, 노동을 상품으로 전락시켰다. 돈은 이렇게 역사의 전면에 모습을 드러내면서 옆자리에 탐욕과 교만, 폭력을 앉혔다. 개인 차원에서 보더라도 돈을 쓰는 그 순간, 계급과 서열, 빈부, 자존심 그리고 당시 정황 등 많은 변수가 비비고 섞인다. 따라서 많은 사람이 대인관계에서 그럴듯한 이유로 자신의 감정을 전달하지만, 상당한 부분은 돈과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갈등이 발생하고 관계의 단절, 즉 돈과 함께 사람을 잃는 경우가 빈번하다.


지금 돈의 역사나 본질을 애써 강조하려는 의도가 아니다. 다만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돈에도 없는 것이 있다는 사실이다. '만족'이다. 욕구를 만들어내고 키우는 것은 지혜를 쌓는 행위와는 반대편에 서 있다. 따라서 돈을 벌고 쓰되 가슴 설레게 하는 내적 즐거움을 찾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러면, 내가 돈의 노예가 되는 것이 아니라 돈이 나의 노예가 된다.

<포브스>에 따르면, ‘오마하의 현인’ 미국 투자자 워런 버핏의 자산 규모는 420억 달러에 달한다. 빌 게이츠 다음으로 세계에서 두 번째로 부유하다. 그런 버핏이 미국 역사상 가장 거대한 기부를 발표했다. 게이츠 재단에 300억 달러, 그밖에 여러 단체에 70억 달러를 기부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 규모는 인플레이션을 고려하더라도 앤드루 카네기와 존 록펠러의 기부보다 훨씬 크다.

버핏은 한 번의 기부로 자기 삶에 가치를 부여했다. 그는 매일 깨어 있는 시간의 3분의 1 이상을 독서에 투자한다. 다른 사람들보다 5배 이상 책을 읽었다고 말할 정도로 엄청난 독서광으로 알려졌다. 그가 한 번도 만나 본 적 없는 사람에게 지혜를 들려준다.


“읽고, 읽고, 또 읽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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