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남도 여행 중 경남 하동 ‘최참판댁’을 찾은 적이 있다. 대한민국 대표 대하소설 ≪토지≫의 무대가 바로 이곳이다. 멀리 내려다보이는 평사리 벌판, 주인공 서희는 이 잃어버린 가문의 땅을 찾는 것이 평생의 목표였다. '천 것' 길상과 혼인을 결심하면서까지. 과연 한국인에게 땅은 무엇일까? 아니, 요즘은 ‘아파트란 무엇일까?’라고 질문을 바꾸어야겠다.
낮은 예금 금리에 비해 아파트 가격이 천정부지로 상승한다. 청년들에겐 내 집마련의 꿈이 사라졌을 뿐 아니라, 예금만으로는 '앉아서 돈을 도둑맞는' 형국이다. 자연스럽게 예금이 아닌 방법, 즉 부동산이나 주식으로 자산 형성을 모색하게 되었다. 영끌, 누가 일러 이를 투기라며 나무랄 수 있겠는가? 안타까운 현실이다. 공부나 일에 매진해야 할 나이인데···.
잔소리를 대신하여 하노 벡이 쓴 <부자들의 생각법> 한 토막을 소개한다. 기회비용과 관련한 내용이다.
10년 전에 4억 4천만 원을 주고 집 한 채를 샀다. 이제 그 집을 팔려고 한다. 시세를 알아보니 대략 5억 1천만 원을 받을 수 있다. 그런데 4억 7천만 원에 사겠다는 사람이 나타났다.
이 사람에게 집을 팔면, 3천만 원을 버는 걸까, 아니면, 4천만 원을 손해 보는 걸까?
정답은 '집이 팔리지 않는 한 집에 묶여 있는 돈은 그대로다.'
이 그림은 런던국립미술관이 아끼는 소형(119x70cm) 2인 초상화다. 화가는 풍경화를 그리고 싶었다. 그러나 당시 풍경화는 격이 떨어진다고 여겨 인기가 없었다. 궁여지책으로 풍경화에 초상화를 결합했다.
스물두 살 앤드루스와 열여섯 살 아내 프랜시스 카터가 결혼 2년 차를 기념하여 그들 소유지 1,200만 제곱미터 앞에서 자세를 취했다. 푸른 새틴 드레스 자락을 펼치고 다소곳이 앉아 있는 부인과 달리 엽총을 든 사냥복 차림의 앤드루스에게서 자신감이 풀풀 난다.
멀리 구름이 지평선에 맞닿았다. 서드베리 근처 오브리스에 있는 벌판에는 추수가 끝나고 황금빛 옥수수 낟가리가 가지런히 쌓였다. 울타리 안 양들이 풀을 뜯는 평화롭고 목가적인 정경이다. 양은 다산을 상징하며, 울타리 안에 가두어 기르는 것은 당시 영국의 근대화된 농법이다.
그러나 광대하고 비옥한 토지에 농부나 목자가 안 보이는 점과 관련해서는 의미심장한 분석이 뒤따른다. 인클로저(enclosure) 운동 때문이라는 것이다. 15세기 영국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된 이 운동은 토지와 사람의 관계에 근본적인 변화를 불러왔다.
지역의 영주가 토지 일부를 매각할 수 있도록 허용함으로써 토지가 부동산으로, 판매 가능한 상품으로 전환되었다. 섬유와 양모 시장이 부상하면서 농지를 양의 방목지로 전환하면, 수익성이 더 커진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이루어진 변화이다.
하지만 부는 지주에게 몰렸고, 땅을 잃은 농민은 소작인에게 고용되었다. 중간착취를 당하며 근근이 연명하던 그들은 어쩔 수 없이 일손이 부족한 도시로 내몰렸다. 산업혁명의 그늘에 노동자들은 저임금에 시달리고, 사회적으로 빈곤과 범죄 문제가 대두되었다. 그러니 이 그림은 게인즈버러가 두고 온 고향을 향한 그리움이라고 할 수 있겠다.
대한민국은 불행하게도 이미 부동산이 거주 목적이 아니라 투자처로 고착화되었다. 따라서 청년에게 "삶의 허무를 느끼기 전에 지혜와 지식을 먼저 구하라"는 조언은 고답적이다. 그건 예순 살 문턱에 선 이들에게나 해줄 말이다. 다만 이 지점에서 기회비용 이외에 선진국 사람들의 한 가지 가치 변화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그들은 요즘 GNP, 1인당 GDP 등 평균에 관심이 없다. 나의 세금, 임금, 주택담보대출 이자에 집중한다. 가처분소득에 관한 관심이다. 즉 일상생활을 위해 필요한 비용을 모두 지출하고 남는 여윳돈에 집중한다. 한 번밖에 없는 인생이라는 사실을 인식한 변화이다. 대한민국에서도 임대주택으로 관심을 돌리고, 여가를 중시하는 경향이 그 징후라 볼 수 있다.
그렇다. 집은 본질적으로 기거를 위한 공간일 뿐이다. 르 코르뷔지에라는 20세기의 위대한 건축가가 있다. 가우디의 건축 주제가 신이라면, 그의 시선은 인간에게 향했다. 르 코르뷔지에는 제1차 세계대전 이후 가진 것 없는 이들을 위한 집은 어때야 하는지를 고민했다. 그리고 결론을 내렸다. ‘집은 살기 위한 기계’라고. 필로티 공법과 아파트는 이렇게 탄생했다.
이런 그의 건축 철학에서 백미는 <카비뇽(1951)>이다. 4평짜리 오두막집. 아내 이본느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그는 이곳에서 지냈다. 일흔여덟 살이 되던 해, 집 앞 지중해에서 수영을 즐기려 하다가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대중에게 “4평이면 충분하다”라는 메시지를 남겨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