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만난 이웃 할머니에게 반갑게 인사했다.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응 별일 없어. 다 좋아. 암이 퍼진 것 말고는. 호호호.”
백 마디의 유언보다 짧고 강렬한 유머다. 유머는 태생적으로 고통 속에서 더욱 아름답게 피어나는 꽃인가 보다. 행복은 성취보다 누구나 겪는 고통을 슬기롭게 극복하면서 찾아오기 때문이다. 이때 유머는 신앙, 예술 등과 함께 고난에 대처하는 훌륭한 방어기제로 작동한다.
캐나다의 유명한 코미디언 짐 캐리는 유머가 마치 반창고 같다고 말했다. 유머가 세상을 구원하지 못하지만, 세상을 잘 견딜 수 있게 만드는 힘이 있다고. 그는 부친이 실직하고, 약을 달고 사는 어머니를 위해 코미디를 시작했다. 열여섯 살에 고등학교를 중퇴한 후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코미디 클럽에서 스탠드업 코미디언으로 활동했다. 열아홉 살에 빈털터리였던 그는 영화 한 편당 2,000만 달러를 받는 부자가 되었다. 그는 말했다.
“내 코미디의 원동력은 절박함이다.”
키가 152센티미터에서 성장이 멈춘 로트레크가 어느 날 정물화 한 점을 완성했다. 어두운 배경에 형체를 드러낸 <커피포트>가 그것이다. 그런데 커피포트에 다리가 달렸다. 낯익은 모습이다. 오른쪽 그의 캐리커처와 비교해 보면, 그 정체를 단번에 알 수 있다. 바로 로트레크의 자화상이다. ‘커피포트’는 몽마르트르의 매춘부들이 그를 부르던 별명이기도 했다. 따라서 이 그림은 그의 해학이지만, 자조적이어서 연민이 느껴진다.
잘 알려진 대로 로트레크는 프랑스의 유서 깊은 귀족 가문 출신으로 근친혼의 희생자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이종사촌이었다. 화가의 친할머니와 외할머니가 친자매였다는 뜻이다. 그는 뼈가 잘 부서지는 희귀한 유전질환 ‘농축이골증’을 앓았다. 열세 살, 열네 살에 두 다리가 골절 사고를 당하면서 더 이상 키가 크지 않았다.
그는 “내 다리가 조금만 더 길었더라면, 결코 그림을 그리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하곤 했다. 바꿔 말하면, 그림만이 그의 존재 이유였다. 서른여섯 살에 자살과 같은 죽음을 맞이했지만, 다행히 그에겐 뛰어난 재치와 유머가 있었다. 자신의 개인적 상처를 숨기고 짓궂은 농담도 웃어넘겼다.
어느 날 그림을 그리던 그가 연필을 놓고 일어섰다. 한 친구가 "아저씨, 지팡이 놓고 갔어요!"라고 소리쳤다. 로트레크는 다른 누구보다도 크게 웃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대한민국 사회에서 사진을 찍을 때 웃는 모습을 발견하기 어려웠다. 웃는 모습이 남들에게 가볍게 보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유럽도 마찬가지였다. ‘치아를 드러내며 웃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이며, 자연이 우리에게 치아를 덮으라고 입술을 주었으니, 치아를 절대로 드러내지 말아야 한다고 가르쳤다. 프랑스혁명 당시 인권선언의 창안자들은 28개월에 걸친 토론 중에 고작 408번, 평균 이틀에 한 번꼴로 웃었다. 이성이 그들을 지배해야 한다는 것이 이유였다.
유머 감각이라는 말은 1840년에 영국에서 처음 사용되었다. 그리고 1870년 무렵부터는 유머 감각을 바람직한 자질로 보기 시작했다. 미국의 26대 대통령 시어도어 루스벨트가 이를 드러내고 활짝 웃은 최초의 정치인일 것이다. 영화 <패치 애덤스(1999)>의 실재 인물인 미국 내과 의사 헌터 캠벨 애덤스는 웃음을 통해 환자를, 세상을, 그리고 자기 자신을 치료했다. 그는 말한다.
“웃음은 15개의 안면 근육을 동시에 수축하게 하고, 몸속에 있는 650여 개 근육 가운데 230여 개를 움직이는 ‘자연적인 운동’이며, 몸의 저항력을 키워주는 명약이다.”
실제로 그는 1시간 동안 코미디 프로 시청 후 혈액에서 백혈구량이 증가하였고, 코르티솔양은 줄어들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백혈구는 세균에 저항하고, 코르티솔은 면역 기능 둔화와 스트레스 상황에서 분비된다. 또 체내 독성 물질과 싸우는 자연 살해 세포(NK, natural killer cell)의 활동 영역도 넓어졌다.
요즘 대한민국 사회는 정치적으로 매우 섬뜩, 살벌하다. 적과 아군밖에 없다. 거친 말을 거르지 않는다. 대화는 말의 의미보다 감정이 먼저 받아들이게 되는 경우가 빈번하다. 따라서 이것은 배설이다. 정직한 메시지를 온화한 태도로 전달하기 위한 훌륭한 도구, 즉 유머가 필요할 때다.
유머는 부정적인 분위기를 단번에 전환하는 힘이 있다. 그러나 만만한 문제가 아니다. 유머의 핵심이 ‘타이밍’으로, 구성상 펀치 라인(punch line, 극적인 마무리)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농담하는 사람이 1.5배 이상 더 많이 웃는다고 한다. 자, 이제부터라도 훈련을 시작하자. 뇌는 행복해서 웃는지, 웃어서 행복한지를 구분하지 못한다. 그러니 억지스러운 유머도 괜찮다. TV를 켠다. 그런데 그 많은 채널 중 코미디 프로를 찾기 어렵다. 우리가 사는 세상이 앞으로도 당분간 각박하리라는 예감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