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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편지 ② 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다?

by 노인영

철학자, 기호학자, 미학자, 역사학자이기도 한 움베르토 에코는 추리 소설 ≪장미의 이름≫으로 전 세계 지식인의 찬사를 받았다. 그의 개인 도서관에는 5만 권 이상의 현대 도서와 1,500권의 희대 및 고대 서적을 보유하고 있다. 그는 책과 관련하여 이렇게 말했다.


“책을 사서 책장에 꽂아만 두어도 그 책이 머리에 옮겨간다.”


책은 그 자체로 영혼을 정화한다는 의미다. 반면, 독서하는 동안엔 자기만의 세계, 자의식이 생긴다. 이것은 굳이 남녀를 구분해서 따질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중세 유럽 사회에서는 “소녀들은 수녀가 될 뜻이 없으면, 읽고 쓰기를 배우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라고 생각했다. 부도덕한 행동의 책임을 글에 전가하는 태도로, “책 읽는 여자는 위험하다”라는 편견을 잉태했다.


장 오노레 프라고나르의 <책 읽는 여인(1769?)>

프라고나르는 가볍고 세속적이며 관능적 주제, 즉 로코코 시대를 대표하는 화가다. 그랬던 그가 붓을 빠르고 거칠게 사용하여 <책 읽는 여인>을 그렸다. 하지만 소녀의 사랑스러움을 해칠 정도의 붓질은 아니다.

그녀는 머리를 단정히 올려 리본으로 묶은 채 햇볕이 잘 드는 곳에 앉았다. 노란색 드레스와 목의 하얀 주름 장식이 빛을 더하는 가운데 책을 읽는다. 쿠션을 등에 대고 왼손을 긴 의자 팔걸이에 편안히 걸친 채 독서 삼매경이다.

그녀가 읽는 책은 새끼손가락을 둘 곳이 없을 정도로 작다. 당시 유행하던 크기다. 책은 볼테르의 풍자 소설 ≪캉디드≫로 추정한다. 이 그림 하나로 프라고나르에 대한 그간의 퇴폐적인 이미지가 개선될 만하다. 하지만, 이 그림은 당시 여성들의 독서와 관련한 시대상을 대변하지 못한다.


이에 적절한 그림은 보두엥의 <독서>이다. 화장실(Toilet) 안 여인을 담았다. 당시 화장실은 오늘날과 개념이 다르다. 18세기 귀부인 침실 옆에 만들어진 개인적인 공간으로, 이곳은 외출 전 치장하거나 서재 혹은 외부 인원의 접견실로 사용했다.

피에르 앙투안 보두엥의 <독서(1760)>

한 상류층 여성이 병풍 앞 안락의자에 졸린 듯 나른해진 몸을 비스듬히 기댔다. 책을 읽다가 그 내용에 심취하여 상상을 이어가는 모양새다. 그런데 가슴이 모두 드러나고, 왼손이 드레스 안으로 들어가 있다. 수음이 의심된다.

“에이, 정말?”이라며 못 믿어하는 사람은 그녀의 오른손 위아래를 살펴보시라. 기타와 잠든 강아지가 쾌락을 상징한다. 병풍 위 액자 속 원숭이 두 마리가 사랑을 속삭인다. 그리고 여인이 보던 책은 클로드 크레비용의 호색 소설로 추정된다.


소설은 18세기에 등장했으며, 사회적 엘리트들이 독서의 즐거움에 눈을 떴다. 그러나 젊은 여성들이 좋아하는 소설은 '쓰레기'로 가득 차 있고 '도덕적인 독'과 '육체적인 정열'을 불러일으킨다고 비난받았다. 이 말은 1872년 미국의 홀리스 리드 목사가 악을 규탄하면서 했던 말이다. 소설에 관한 유럽 사회의 편견과 파급력은 헨리크 입센의 ≪인형의 집(1879)≫에서 확인할 수 있다.

100년 전 프랑스 사회의 삐뚤어진 시선도 이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관대하진 않았다. 당시 영국 신문 <브리티시 크리티컬 리뷰>에서도 여성이 가정에서 소설을 읽을 때는 아버지의 감독 아래 읽도록 권고했다. 결국, 보두엥의 <독서>는 “책 읽는 여자가 위험하다”라는 속설을 증명하듯 허구의 세계에 깊이 빠진 여성의 연약한 지성을 풍자한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그림 속 오른쪽 지구의와 지도, 두꺼운 책이다. 이성을 상징한다. 당시 유럽 전역에서는 계몽주의 사상이 담긴 ≪백과전서(총 35권)≫가 큰 충격을 던지고 있었다. 이 책은 종교적 관용과 사상의 자유가 종국적으로 승리를 거둘 것이라고 예견했다. 따라서 교회와 절대 왕정의 분노를 샀으며, 책이 나올 때마다 반복적으로 출판 금지되었다.

그러나 계몽주의 시대의 이성은 남성 몫이었다. 여성에 대한 비하는 여전했다. 프랑스에서는 여성 노동이 증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성의 사회적 지배력에 대해서는 비판적이었다. 이에 앞장선 인물이 의외로 ≪백과전서≫의 집필자 중 가장 박식하고 재치가 있던 장바티스트 르 롱 달랑베르였다.

프랑스 대혁명의 정신적 지주인 장 자크 루소조차 “여성은 정치에서 제외되어야 하며, 집에서 아이들 기르는 데 전념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영역 분리’ 이데올로기는 대혁명기를 지나 나폴레옹 시대에 더 진전되었다.


1789년, 마침내 영국 부엌방에서 소설을 읽던 하녀가 시를 처음 썼다. 엘리자베스 핸즈가 쓴 <암논의 죽음>이 그것이다. 여성의 독서, 그것은 남성이 아니라 책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는 행위다. 자율적 존재라는 뜻으로, 향상된 여성 지위를 반영했다.

오늘날 책 읽는 여성은 매력적으로 비친다. 하지만 본질적인 면에서 여성의 독서는 이전과 동일한 행위다. 그렇다면, 남성들의 독서가 인지적 성숙으로 이어지면서 시나브로 나타난 현상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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